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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들

환란가운데 주신 평화(누가복음 2장)

하나님의 역사와 환란가운데 주신 평화

누가복음 21-14

1. 아기 예수 탄생은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21-3절 말씀을 보면,

이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 되었을 때에 첫 번 한 것이라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아구스도의 명령을 따라서 유대인들이 각자의 고향으로 호적하러 갑니다. 호적해서 인구조사를 하고, 인구조사를 해야 머릿수대로 세금을 매길 수 있으니까 황제 아우구스도가 로마 식민지 유대땅에 명령을 내립니다.

이 일로 인해서 예수님과 요셉, 마리아 가족이 나사렛에 잘 살고 있다가 고향인 베들레헴으로 올라가게 됩니다. 왠만하면 그냥 나사렛에서 아기를 낳았을 텐데 만삭된 몸을 이끌고 베들레헴으로 올라갑니다.

4-5절 말씀 같이 읽겠습니다.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인 고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그 정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되었더라

이 말씀을 보면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호적하러 올라간다고 나와있습니다. 왜 올라갔다고 했는 지는 지형을 보면 알수 있습니다.

갈릴리 나사렛이 해발 375m에서 베들레헴은 해발 770m정도 됩니다.

점점 올라가는 형태인데 만삭된 몸을 이끌고 마리아는 어쩔 수 없이 그 길을 간 것입니다.

거리상으로는 직선거리가 120km인데 갈릴리에서 베들레헴을 가려면 사마리아 지역을 지나는 길이 있었지만, 그 길로 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빙~ 돌아서 갔어요. 학자들은 마리아가 적어도 150-180km를 여행했을 것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만삭된 마리아를 생각해 보십시오. 하루에 걸어야 얼마나 걷겠습니까? 더군다나 마리아가 입덧이라도 있었다면, 얼마나 고생했을까요?!

마리아는 어쩔 수 없이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그 길을 걸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그 어쩔 수 없이 하는 일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작동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왜 가이사 황제 아구스도가 호적 명을 내립니까? 황제가 내린 명령 같지만, 그 뒤에는 하나님의 손이 작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리아도 어쩔 수 없이 베들레헴까지 그 먼 거리를 여행했지만. 그 길은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이요 예비하신 길입니다.

이미 하나님은 미가 예언자를 통해 예수님에 관한 말씀을 예언해주셨습니다.

미가서 52절에 나온 예언 말씀.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찌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

 

우리가 어쩔수 없이 해야하는 고난의 과정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개입하심이 있습니다.

우리의 모난 것들을 제거해주시고, 한 알의 모래알이 진주가 되듯이 다듬어 주는 과정입니다. 우리의 일생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세상의 역사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해 이 세상 가운데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두 번째는 예수님 믿으면 남다른 기쁨과 평화가 찾아온다는 사실입니다.

천사들의 목소리를 통해 그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 14절입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예수님 오심을 기뻐하는 사람들에게는 평화가 임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기쁨과 평화가 우리의 마음을 채웁니다. 예수님 믿는 사람들의 특징 중에 하나가 환란 중에도 기뻐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5장에 보면,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사도 바울은 환난을 그냥 환난 그자체로 본 것이 아니라, 환난이 주는 인내와 소망까지 내다 보았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이 끝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더 나은 본향, 하늘나라의 소망이 있습니다. 기독교가 승리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그냥 환난이 찾아왔다고 고난이 찾아왔다가 포기하고, 주저 앉고,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그 환난을 넘어서 소망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마리아가 만삭된 몸으로 산을 오를 때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만삭된 몸으로 계단 몇 개 내려오는 것도 힘든데.. 산을 오르다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들레헴까지 가서 아기 예수를 낳자, 정말 하나님 말씀대로 그대로 그리스도가 되시고, 천사들의 경배를 받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사도 바울 당시에 기독교는 엄청난 핍박을 받았습니다. 존 폭스의 <순교자 열전>이라는 책을 보면, 정말 잔인해서 읽을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목숨을 다하여 믿는 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수많은 고문과 박해, 죽음 앞에서도 신앙을 지킨 순교자들.

사자의 먹이가 되고,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 죽고, 화형을 당하고, 머리가 깨지고, 심지어는 톱으로 잘림을 당하여도 그들은 신앙을 지켰고, 믿음을 지켰습니다. 환란 중에도 찬송과 승리에 찬 평화가 순교자들에게는 있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것은 그러한 로마의 박해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는 없어지지 않고, 오히려 기독교 국가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지금도 우리의 삶 속에는 핍박과 박해가 있습니다. 고난과 죽음이 있습니다. 더 무서운 것은 칼과 창이 아닌 쾌락과 탐욕으로 인한 핍박이요 박해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깨어있지 못하고, 주저 앉아서 그 쾌락과 탐욕을 누리며 질식되어 가고 있습니다. 문명의 이기와 안락이 주는 또 다른 핍박이요 박해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죽음 앞에서도 의연한 사람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