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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창세기 12장)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창세기 121~ 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외에 성경에서 가장 위대한 믿음의 본보기를 보여주고 있는 사람은 족장 아브라함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그가 믿음으로 나아갔던 모험을 따라가며 그의 승리를 본받고, 그의 실수를 피할 수 있다. 아브라함은 때때로 우리가 그렇듯 실패했다. 그러나 그의 삶은 대부분 신실한 순종으로 이루어졌다. 하나님이 그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든지 아브라함은 자신을 부르신 하나님이 그에게 능력도 주실 것이라 믿었고, 믿음으로 하나님께 순종했다. 아브라함이 그에게 주어졌던 제한적인 약속들만을 가지고도 믿음으로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었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통째로 가지고 있는 우리는 더욱 더 그래야 하지 않겠는가! 아브라함을 통해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믿음으로 반응하는 것을 배우자.

 

1) 알 수 없는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할 때(1)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나아갈 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11:8). 칠십오세의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나 하란에 머물다가 다시 가나안을 향해 출발했다. 당시에 여행은 그 곳에 대한 자세한 정보도, 정확한 네비게이션도 있지 않았지만,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조차도 우리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를 알고, 계획을 세우더라도 우리의 예상대로 모든 것이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미래를 결코 알 수 없다. 아브라함은 알 수 없는 미래를 향해 나아가라는 부르심을 받았을 때 믿음으로 순종했다.

2) 뒷자리로 물러서야 할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창 12장에서 친척들도 두고 떠나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아브라함과 사라는 롯을 데리고 여행을 계속했다. 그리고 나중에 롯이 문제를 일으켰다. 애굽에서 바로는 아브라함과 롯에게 수많은 가축떼를 선물로 주었고, 결국 그들의 재산이 문제가 되었다. 왜냐하면 가축에게는 먹을 풀과 마실 물이 늘 필요했고, 그 지역에는 두 사람의 가축들이 먹을 풀과 물이 충분하지 않았다.

롯이 성숙하고 영적인 사람이었다면 제단에서 아브라함을 만나 제사를 드리고 기도한 다음, 경건한 삼촌의 뜻을 따르며 문제를 해결하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먼저 나서야 했다. 그리고 그는 믿음의 사람이었기 때문에 뒷자리로 물러서서 롯이 먼저 선택할 수 있게 해주었다. 롯은 눈에 보이는 것을 추구하며 살았고, 아브라함은 온 땅이 자신에게 속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믿음으로 살았다. 롯은 애굽과 같은 소돔을 바라보았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그를 위해 예비하신 하늘의 도성을 믿음으로 바라보았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보다 앞서 가시고 모든 영광을 받으신다면, 설사 앞서 나가기에 합당하지 않은 사람 뒤로 우리가 물러선다 할지라도 크게 달라질 것은 없지 않겠는가?

세상의 가치로 봤을 때 물댄 동산 같은 소돔 앞에 있을 때일수록 뒷자리로 물러 서야할 때임을 기억해야 한다.

3) 기다려야 할 때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며, 하나님이 계획하신 목적을 이루어 나가기를 바라신다. 우리는 믿음으로 나아간다. 그러나 또 믿음으로 기다린다. 그리고 기다림은 나아가는 것 못지 않게 중요하다.

창세기 15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영적 지도자들이 영혼의 어두운 밤이라 말하는 경험을 하게 하셨다. “캄캄함이 임하므로 심히 두려워하더니”(12). 그 결과 그 위대한 믿음의 사람이 두려움과 불안과 혼란에 빠졌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께 왜 자신과 사라에게 약속하신 아들을 주시지 않는 것인지 여쭈었다. 하나님은 당신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들을 다시 확인해주시는 음성을 들을 수 있을 만큼 조용하고, 하늘의 별들을 볼 수 있을 만큼 어두운 밤을 우리가 경험하게 하신다. 하나님은 그 밤에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시고, 그 당시 열 개의 이방 나라들이 점유하고 있는 땅이기는 했지만, 그 땅에 대한 소유권을 아브라함에게 보장해주셨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아브라함과 사라는 조바심을 내기 시작했고, 사라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자녀를 주실 수 있도록 하나님을 돕기 위해 자신이 나서서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16). 믿음의 삶은 책략이 없는 삶이다. 아브라함은 단호하게 반대했어야 했다. 사라는 롯이 이웃으로서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스마엘이 그녀의 가정 안에서 어떤 삶을 살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아브라함은 어둠 속에서 하나님을 신뢰했다. 그러나 이제 빛 속에서 하나님을 의심하게 되었다.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은 성장하는 믿음에 없어서는 안 될 요소다. 하나님 보다 앞서 달려가면서 자신에게 있는 자원들을 의지하는 것은 문제만 야기시킬 뿐이다.

4) 우리가 사랑하는 것을 희생해야 할 때(22)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셨고 하나님의 때에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웃음이라는 뜻의 아들 이삭을 주셨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고 요구하신 것은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러한 가혹한 요구를 하셨을까?

그 요구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는 가장 큰 시련이었다. 그러나 시험을 통과할 수 없는 믿음은 믿을 만한 믿음이 될 수 없다. 이러한 시험은 우리의 믿음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확인하는데 도움이 된다. 성경에 잘 알려진 것처럼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아들을 원하셨던 것은 아니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마음을 원하셨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을 하나님께 되돌려드려야 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살아가면서 지켜야 할 기본적인 원리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면서 이삭을 바쳤다. 그리고 마치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것처럼 그를 되돌려 받았다(11:17-19).

하나님이 당신이 소유하고 있는 가장 소중한 것을 요구하실 때 믿음으로 드리라. 그리고 그것만이 짐이 아니라 복으로 다시 되돌려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5) 죽음을 맞이해야 할 때

아브라함은 175세까지 살았고, 그것은 그가 한 세기 동안 하나님과 동행했음을 의미한다. 그는 믿음으로 살았던 것처럼 죽을 때에도 하나님이 그를 부르셨던 날부터 자신의 시선을 고정해왔던 영광스러운 도성에 들어가게 될 것을 기대하면서 믿음으로 죽었다(11:13-16). 그러나 죽기 전 그는 이삭이 훌륭한 아내를 맞이하고 그와 그 이후 세대들에게 필요한 재물을 소유할 수 있기를 바랐다. 장래 세대를 생각하는 사람들은 복된 사람들이다. 아브라함은 그의 후손들에게 훌륭한 본보기를 남겨주었다. 아브라함이 다음 세대를 생각하고 영적으로 그리고 물질적으로 그들을 위해 준비했기 때문에 우리에게 구세주와 성경이 전해지게 되었다. 이삭과 야곱과 유대 민족 전체는 아브라함의 믿음 때문에 복을 받았고, 하나님은 당신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으로 알려지도록 설계하셨다. 참 믿음은 환경을 이기고 세대를 통해 이어지며, 결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스튜더트-케네디가 이런 말을 했다. 믿음은 증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믿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결과가 따른다 해도 순종하는 것이다

우리가 죽음을 맞이할 때 가진 재산을 움켜쥐며, 다 쓰지 못하는 안타까움으로 침울한 채 죽을 것인가, 아니면 다음 세대에게 다 물려주고, 나눠주며, 이제는 다 이루었다여한이 없다는 평안한 마음으로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 우리의 죽음도 생각해볼 일이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처럼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때로는 과감히 떠나고, 버리며, 부정적인 것들을 떨쳐 버리고, 새로운 소망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주옵소서. 정말 사랑하는 것들까지도 내려놓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당대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를 위해 영적인 유산, 믿음의 유산을 물려줄 수 있는 믿음의 부모가 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존귀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