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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들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누가복음 1장)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누가복음 145-56

사람이 오래 기억하려면 키워드가 있어야 합니다.

한 성도님 댁에 심방을 갔는데 그 분이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예전에 강원도에 계신 목사님이 매번 9988234를 알려주셨대요~

무슨 이야긴가 했더니 99세까지 88하게 살다가 2-3일만 아프고, 하늘나라 가자!

뭐 이런 이야기였습니다. 9988234... 그런데 딱 그냥 한번 들었는데 그게 잘 잊혀지지가 않더라구요

이렇듯 숫자나 키워드를 딱 잡고 있으면 전체적인 것들이 그대로 생각나게 됩니다.

믿음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찬양이 나오게 됩니다. 길가다가도 만원짜리 한 장만 주워도 그 날은 뭔가 될 것 같고,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지 않습니까?

한 여자집사님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남편이 기분이 안좋아서 찡찡해있었다고 합니다. 가게 앞에서 남편이 새차를 하고 있는데 그 마음을 어떻게 풀어줄까 고민하다가 새차하고 있는 그 근처에 오천원짜리를 한 장 휙 던져두었답니다.

그러자 남편이 새차하다가 그 오천원을 발견한 거에요. “~ 돈 주웠다~ 여기 돈이 떨어져 있네~”그 때 여자 집사님이 옆에서 그랬답니다. “~ 오늘 뭔가 좋은 일이 있을 것 같네~ 돈도 줍고..” 남편은 아무것도 모른 채 기분이 확~ 좋아져서 콧노래를 부르며 새차를 했다고 합니다.

하물며 우리의 인생을 구원하시고 영생의 축복을 주신 예수님 만났는데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할렐루야! 찬양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믿는 사람은 찬양합니다

오늘 말씀은 마리아의 찬양하는 이야기입니다. 엘리사벳의 간증을 듣고, 자신에 일어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마리아가 입술을 열어 찬양합니다.

우리 누가복음 146절부터 55절까지 말씀 다시 한번 같이 읽겠습니다.

마리아가 가로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영원히 하시리로다 하니라

우리가 찬양 부를 때 영혼의 찬양을 하나님께 올려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냥 악보 보면서 음정 따라서 부르는 것과, 영혼의 찬양은 다릅니다. 정말 노래를 잘불러서 부르는 찬양도 물론 은혜가 되지만, 내 마음을 다한 찬양을 하나님은 기뻐 받아주십니다.

오늘 이 마리아의 찬양을 읽는 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나만의 찬양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오직 하나님과 나만 아는 그런 찬양을 부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편은 다윗이 하나님을 향해 고백하는 믿음의 찬양입니다. 찬송가를 보면 그 가사 하나 하나가 다 자신만의 믿음의 찬양입니다.

찬송가 405장 노예상 하다가 회심한 존 뉴턴의 어메이징 그레이스~“나 같은 죄인 살리신

찬송가 384장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가 작사한 내 주는 강한 성이요

여러분은 자신만의 찬양이 있습니까? 하나님을 향한 고백이 있습니까?

믿음의 사람은 찬양할 수 밖에 없습니다.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받은 은혜가 너무 커서 찬양할 수 밖에 없습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 찬양합니다!”

누가 시켜서 한 것도 아니고, 나 자신만의 찬양을 하나님께 올려 드립시다!

마리아처럼 하나님께 영혼의 찬양을 올려드리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찬양도 믿음의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인천에서 개척교회 하시던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요즘도 개척교회 하기가 쉽지 않은데요. 개척교회 하다보면 별의별 사람들이 다 온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중에 한 사람이 교회와서 그 착한 목사님한테 간이라도 빼줄것처럼 잘하다가 나중에 사기를 친 겁니다. 삼천만원이란 거금을 사기를 쳐서 이제 목사님이 길거리에 나안게 생겼습니다. 빚을 져서 이제 갚겠다고 신문돌리고, 우유 배달하고, 그렇게 해서라도 목회를 하는데요. 하나님한테 뭐 해드릴게 없었답니다. 그래서 생각한게 인천 어느 공원에 가서 색소폰으로 하나님께 찬양을 드려야 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혼자 처량하게 찬양을 하는데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개척은 했는데 사람은 안오지, 사기는 당해서 경제적으로는 어렵지~ 인생을 포기할 법도 한데 그 목사님은 그러한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거에요.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그런 상황속에서 어떻게 이렇게 찬양을 부를 수 있을까?!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말씀 가운데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 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고후 4:8-9)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 6:9-10)

 

할렐루야! 우리는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는 자입니다. 왜요?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해주실 줄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케 하는 자입니다. 왜요? 예수님이 우리의 전부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입니다. 왜요?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우리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 되기 때문입니다.

찬양은 믿음의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모든 상황속에서도 찬양하는 것입니다. 기쁠 때도 찬양하고, 슬플 때도 찬양해야 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제가 마리아처럼 믿음의 찬양을 올려드리길 원합니다. 찬양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주님 바라보며 찬양하게 하시고, 우리의 입술에 찬양이 끊이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