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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들

행복한 삶(누가복음 12:29~34)

행복한 삶

누가복음 1229- 34

여러분에게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게 있습니다. “여러분! 행복하십니까?” 여러분! 진정으로 행복합니까?”

제가 궁금해서 나라별 행복지수를 한 번 찾아봤습니다. 찾아보고 깜짝 놀랬습니다! 왜 깜짝 놀랬냐면, 행복한 나라라면 당연히 유럽의 영국이나 프랑스, 스위스, 미국 같은 나라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입니다.

행복지수 1위인 나라는 남태평양에 있는 바누아투라는 나라였습니다. 2위는 콜롬비아, 3위는 코스타리카, 그럼 우리나라는 몇위쯤 될까요?? 102위 중국은 31, 일본은 95위, 미국: 150, 영국: 108, 러시아: 172위 이렇게 통계가 나왔더라구요.

참 신기한 게 잘살고 부유한 나라,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며 살 수 있는 나라일 수록 행복지수가 낮았단 사실입니다. 반대로 바누아투라는 남태평양에 있는 조그만 나라는 GDP 2900달러 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였습니다.

이 통계가 보여주는 것은 경제적으로 부유한 나라가 꼭 행복한 것은 아니다 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부자인 사람도 반드시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아무리 가난한 사람도 반드시 불행한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행복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부유하고, 가난하고를 떠나서 행복한 사람은 자신의 삶에 만족할 줄 알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거기에 행복의 비밀이 있습니다. 불행한 사람은 끊임없이 자신의 집 밖을 내다보며 자신의 집으로 갖고 올 더 좋은 것들을 찾습니다 그러한 것들 때문에 끊임없이 근심하고 걱정하게 됩니다. 이미 자신의 집에는 좋은 차와 좋은 집과, 좋은 옷들과 맛있는 음식들이 가득한데도, 다른 곳에 눈을 돌리며, 더 좋은 것은 없는 지 열심히 찾고 있는 사람이 바로 불행한 사람입니다. 반면에 행복한 사람은 자신이 가진 작은 것에 만족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비가 안새는 집과, 낡았지만 자신의 몸에 꼭 맞는 옷을 입고, 맛있진 않지만 건강을 지켜주는 음식들을 먹으며 미소짓고, 만족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집에서 함께 사는 가족들을 보면서 흐뭇해하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바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좋은 환경뿐만 아니라 좋은 사람들과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음에 참 행복하고, 감사합니다. 행복이 하나님이 주신 것임을 알 때 감사할 수 있고, 구원이 하나님이 주신 선물임을 알 때 감격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누가복음에 있는 말씀입니다. 누가복음은 가난한자의 복음서라고도 하는데요. 왜냐하면 마태나 마가복음과는 달리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 세리와 창녀, 목자들, 죄인들의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누가복음 만의 특이한 점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다른 신약성경의 저자들은 마태나 마가나 바울이나 다 유대인이었지만, 누가는 이방인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이방인의 눈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바라보고 기록된 것이 바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입니다.

당대의 기성종교가 흔히 소외시켰던 여자들이나 목자들 사마리아 사람들을 무대의 중심으로 초대합니다.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님이 당시의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무시당하고, 소외당한 그들을 어떻게 안아주고, 위로해주며, 구원하셨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오늘 우리가 읽은 누가복음의 핵심 중에 하나입니다.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예전에 못먹고 살 때는 먹을게 없어서 하루 끼니를 걱정하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예전에는 소위 보릿고개라고 하는 말이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쌀이 떨어지고 먹고 살기 아주 힘든 시기를 일컫는 말입니다. 그래서 만나면 하는 인사가 식사하셨습니까?” 라는 인사입니다.

먹고사는게 살아가는 데 가장 기본적인 문제입니다. 우리가 초등학교 사회시간에 배우죠~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세 가지를 한 단어로 하면, 의식주!!입니다. 인간이 기본적으로 생활하는데 옷과 음식과 머물곳이 있어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옛날 사람들은 먹고 사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아마 여기에 앉아계신 분들 중에도 지독한 배고픔으로 인해서 어려움을 겪어보신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요즘은 너무나 먹을게 많아서 뭐 먹을까 뭐 마실까? 고민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너무나 먹을게 많고 풍족해서 흰 쌀밥이야 매일 먹는 거니까, 이제 그 고마움과 가치를 잃어버렸습니다. 이제는 음식물을 버리는데도 돈이 들어가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 배고프던 옛 날과 너무도 풍족한 오늘 날의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근심하고, 고민하고 걱정하는 것입니다. 배고프든 배부르든 걱정과 근심은 늘 우리를 따라 다닙니다. 걱정과 근심이 그칠 날이 없습니다. 이것은 꼭 먹는 것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일터에서도 일이 잘 안풀려서 걱정이요. 집 안에서도 애들 학비 감당해야 하지, 몸은 왜 이렇게 아픈지 건강할 날이 없습니다. 말은 안해서 그렇지 완전 종합병원이 따로 없습니다. 안 아픈 곳이 없습니다. 몸 성가셔서 걱정입니다. 돈이 없어서 걱정입니다. 옷장에 옷은 가득하지만, 입고 나갈 옷이 없어서 걱정입니다.

이렇듯 걱정과 염려는 늘 우리를 따라다니면서 괴롭힙니다. 잘되도 문제요, 잘 안되도 문제입니다. 사업이 잘되도 저 돈을 어떻게 지킬까 고민하게 되고, 돈이 없어도 문제입니다. 아무리 고민하고 고민해도 내 손에서는 해결이 안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현실입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생수와도 같은 답을 주십니다.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될 줄을 아시느니라 / 오직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너희가 먹을 것 입을 것을 걱정하는 것은 그만두고, 더 중요한 것, 더 본질적인 것을 구하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게 바로 하나님 나라입니다. 내 살 일만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더불어 잘 살 수 있는 하나님 나라를 구하라는 것입니다. 거기에 생명이 있고, 구원이 있고, 행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행복을, 하나님 나라를 우리를 위해 기꺼이 주신다고 이야기합니다. 거저 주신다는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얻는 방법을 알려주시는데요.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적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 아멘!!

우리가 가진 것들을 나누어 주라는 것입니다. 우리 입만 채우는 것이 아니라 옆 사람도 도와주고 배고픈 사람도 좀 도와주며 살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나누고 돕고 구제하는 일을 하면 그것이 우리가 가진 모든 근심걱정을 떨쳐버리고 하늘에 보물을 쌓는 일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돈 때문에 / 내가 가진 소유 때문에 걱정하지 말고, 하늘에 보물을 쌓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목회자들이 자주 가는 곳이 있습니다. 장례식장입니다. 거기에 가보면 많은 것들을 보고 들을 수 있습니다. 한 번은 좀 부유한 집의 장례식장을 갔습니다. 고인이 유산을 남겨놓고 가셔서 형제들끼리 큰 소리로 싸우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고인을 병치레 했던 막내가 더 받아야 된다. 장남이 더 받아야 된다. 사업해야 하는 둘째가 더 받아야 된다. 장례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그러한 다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경제적인 부요가 행복의 필요충분 조건이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진정으로 행복하고 싶습니까? 그럼 오늘 예수님의 말씀에 귀기울이셔야 합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남을 도우며 살아보시기 바랍니다. 자기 스스로 고민하고 걱정하기보다도 주변에 더 어렵고 힘들어하는 이들을 도와주면 거기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전 행복한 삶을 살고 싶습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도 다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길 원합니다. 배고픈 거지도, 조그만 아이도, 나이든 할머니 할아버지도, 아파서 누워있는 환자도 모두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바램은 종교적인 것을 떠나 너무나 인간적인 것이고, 인간의 본질적인 것입니다.

이제 한 편의 시를 함께 나누고 말씀을 맺겠습니다.

헤르만 헤세의 행복해진다는 것이란 시입니다.

인생에 주어진 의무는 다른 아무것도 없다네. 그저 행복하라는 한 가지 의무뿐.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세상에 왔지. 그런데도 그 온갖 도덕, 온갖 계명을 갖고서도
사람들은 그다지 행복하지 못하다네.
그것은 사람들 스스로 행복을 만들지 않는 까닭.
인간은 선을 행하는 한 누구나 행복에 이르지.

스스로 행복하고 마음속에서 조화를 찾는 한. 그러니까 사랑을 하는 한...
사랑은 유일한 가르침. 세상이 우리에게 물려준 단 하나의 교훈이지.
예수도 부처도 공자도 그렇게 가르쳤다네.
모든 인간에게 세상에서 한 가지 중요한 것은
그의 가장 깊은 곳 그의 영혼 그의 사랑하는 능력이라네.
보리죽을 떠먹든 맛있는 빵을 먹든 누더기를 걸치든 보석을 휘감든
사랑하는 능력이 살아 있는 한 세상은 순수한 영혼의 화음을 울렸고
언제나 좋은 세상, 옳은 세상이었다네

때론 수천마디 말보다도 깊은 침묵이 우리의 영혼을 울릴 때가 있습니다.

행복한 삶, 그것은 우리의 욕구와 욕심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사랑을 우리의 삶 속에서 살아날 때 비로소 우리에게 주어지는 선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