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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들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라(고후 10장)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라

고린도후서 101 ~ 18

고린도후서는 사도 바울이 3차 선교여행을 하면서 마게도냐(빌립보)에서 쓴 편지입니다. 에베소에서 머물면서 사역을 하고 있다가 고린도교회에 고린도전서를 보내고 나서 답장을 더 빨리 받고자 하는 마음으로 바울이 마게도냐까지 올라와서 편지한 것이 고린도후서입니다. 고린도전서를 보낸 후 답장에서 고린도교인들이 바울의 편지대로 믿음 생활하겠다고 하니까 너무 기뻐하면서 보낸 편지가 바로 고린도후서입니다.

고린도후서는 눈물로 쓴 바울의 편지인 것이죠. 그래서 인지 바울의 자서전적인 요소가 가장 많이 들어가 있는 것이 바로 고린도후서입니다.

육신에 따라 행하는 자가 아닌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라(1~7)

바울은 때로는 담대하기도 하지만 유순한 성격의 소유자임을 스스로 밝히고 있습니다. 너희를 대면하면 유순하고 떠나 있으면 너희에 대하여 담대한 나 바울은..”

바울 스스로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할 때면 참 유순하지만, 그들을 떠나서 편지로 대할 때면 힘이 있고, 담대하다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질서를 잡는 일에는 거침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도 거침이 없습니다.

이종철 목사님이 바울의 생애에 관한 책을 썼는데 그 제목이 거침없이 담대하게입니다. 이 말은 사도행전 제일 마지막 2831절에서 따온 말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바울은 딱 보면 왜소하고 소심해보이고 나약해보이는 사람이었습니다. 육신을 따라 외모를 볼 때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의 내면과 생각, 행동은 거침없이 담대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담대하고, 미지의 영역을 향해 나아가고, 지도 밖으로 행군하는 그런 복음의 사도, 이방인의 사도가 되었을까요? 왜 지금도 수많은 선교사들이 이름모를 땅에 가서 복음을 증거하고 교회를 세우고 있을까요? 그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꽉 차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복음으로 꽉 차 있었습니다. 이래서 사람은 그 속에 무엇으로 가득차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안에는 무엇이 차있습니까? 복음입니까? 육신에 생각입니까? 하나님의 능력입니까? 나는 안된다는 패배의식입니까?

믿음의 선진들을 보면, 늘 안좋은 여건 속에서, 상황과 환경 속에서 믿음 위에 굳게 서서 승리의 찬가를 불렀습니다. 희망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모세는 홍해 앞에서 하나님의 지팡이를 들고 믿음으로 발걸음을 내 딛었습니다.

여호수아는 가나안의 거인과 같은 이들을 향해 믿음으로 돌진했습니다.

다윗과 골리앗, 850명의 바알선지자와 싸운 엘리야, 기드온의 300용사

다 적었고, 약했고, 부족하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승리했습니다.

여러분 안에 이러한 하나님의 능력을 채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상이 우리의 밥입니다. 세상은 아직도 하나님의 능력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죽음을 이기셨습니다. 늘 먹지 않으면 안되는 우리지만, 우리 안에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복음으로 채운다면, 먹지 않아도 배부르고, 작아도 강한 능력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왜소해보여도 정의의 길을 향해, 복음의 길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간다면 위대한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오직 주께서 칭찬하는 자가 되자 (18)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자니라 사람은 누구나 스스로를 보호하고, 자신을 자랑하려는 본성이 있습니다. 팔이 안으로 굽습니까? 바깥쪽으로 굽습니까? 팔은 안으로 굽습니다. 가족들, 혈연, ‘에 대한 무의식적인 자기 사랑이 깔려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통은 자기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게는 냉정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믿는 사람들로서 칭찬받는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때로는 세상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요구하는 도덕적인 수준이 높을 때가 있습니다. 그것이 부담이 되고, 족쇄가 될 때도 있습니다. 그런 것에 신경 안쓰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나 다 칭찬받고 싶기 때문입니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누구보다도, 그 무엇보다도 우리 주님께서 칭찬해주는 것이 최우선이라는 말입니다.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가 최고의 사람입니다.

누구나 인간적인 허물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양보심이 많고, 착하고, 관대하더라도 주님께 칭찬받는 일에 있어서는 양보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장공 김재준 목사님 쓴 글에 보면, “기도에 욕심장이가 되자고 하는 말이 나옵니다. 하나님 말씀과 기도에 욕심장이가 되어야 합니다. 욕심이 있어야 합니다. 베드로가 주님의 수제자가 된 이유는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욕심이 있어서입니다. 무엇에 욕심을 내고 있습니까?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그 일에 욕심, 열심, 열정을 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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