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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들

그리스도의 편지(고후 3장)

그리스도의 편지

고린도후서 31 ~ 18

고린도후서는 사도 바울이 3차 선교여행을 하면서 마게도냐(빌립보)에서 쓴 편지입니다. 에베소에서 머물면서 사역을 하고 있다가 고린도교회에 고린도전서를 보내고 나서 답장을 더 빨리 받고자 하는 마음으로 바울이 마게도냐까지 올라와서 편지한 것이 고린도후서입니다. 고린도전서를 보낸 후 답장에서 고린도교인들이 바울의 편지대로 믿음 생활하겠다고 하니까 너무 기뻐하면서 보낸 편지가 바로 고린도후서입니다.

고린도후서는 눈물로 쓴 바울의 편지인 것이죠. 그래서 인지 바울의 자서전적인 요소가 가장 많이 들어가 있는 것이 바로 고린도후서입니다.

그리스도의 편지가 된 고린도교인들 (1~3)

지금은 잘 편지를 쓰지는 않지만, 편지를 쓰려고 하면, 손글씨로 생각하고, 마음을 담아 쓰기 마련입니다. 글씨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몇 번이나 고쳐쓰고 버리고 하는게 편지였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편지를 통해 여러 교회를 돌보고, 가르치고, 믿음으로 살 수 있도록 인도했습니다. 소위 문서 선교를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교인들을 향해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이야기합니다. 이 얼마나 축복인지 모릅니다. 편지를 따로 쓸 것도 없이 너희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가 보내신 편지라는 말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너희를 만나서 이야기 나눌 때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의 편지를 읽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먹으로 쓴 편지는 곧 지워지지만,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너희들은 살아 생동하는 그리스도의 편지라는 말입니다.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 (6)

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율법 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

우리가 성경을 대하고, 말씀을 들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냥 성경에 나온 글을 읽는 것이면 금방 잊어버립니다. 하지만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의 말씀을 듣는다면, 그것은 다른 차원입니다. 그 말씀은 우리의 심비에, 마음판에 새겨지는 말씀입니다.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의 마음판에 무엇을 새기고 살아가시겠습니까? 오직 예수 그리스도! 그 한 분만이 우리의 가슴판에 새겨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자기 멋대로 사는 방종이 아닌 성령님께서 주시는 참 자유함..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유를 선물로 주십니다. 그렇기에 이스라엘을 애굽의 종의 자리에서 자유로운 약속의 땅으로 출애굽시켜주셨습니다.

우리 주님도 수많은 병의 노예에서, 배고품의 노예에서, 관계의 질곡에서 해방시켜주시고, 참 자유를 허락해주십니다.

지금은 너무나 자유로운 시대이지만, 바울 당시에는 노예가 있었고, 계급이 있었던 시대입니다. 말하는 것도, 입는 것도 자유가 없었습니다.

복음이 우리 안에 작동하고,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실 때 우리 안에 자유롭게 그 누구도 어찌할 수 없는 기쁨과 자유가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832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해주십니다. 사망의 몸에서 자유케 해주십니다. 세상의 짓눌린 것에서 자유롭게 해주십니다. 열등감에서 자유롭게 해주십니다. 이 세상에 못먹고 못살아도 하나님 나라에서는 귀히 여김받는 참 자유를 주십니다. 이러한 자유의 소중함을 깨달은 사람은 자유를 얻기 위해 가장 소중한 목숨을 버리기도 했습니다.

얼마 전에 김제 아리랑문학마을에 갔는데 도마 안중근 의사에 관한 이야기를 보고, 하얼빈역을 60% 형태로 만들어 놓은 것을 봤습니다. 거기에 안중근 의사 어머니가 사형전 아들에게 보낸 편지가 적혀 있었습니다.

네가 만일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은 것을 불효라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딴 맘 먹지 말고 죽으라. 옳은 일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걸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다.

어미는 현세에서 너와 재회하기를 기대치않으니 다음 세상에는 반드시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되어 이 세상에 나오너라.“

안중근 의사는 조선인 전체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리기까지 한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인류 전체의 자유와 구원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무엇을 위해 목숨을 걸고 살겠습니까? 예수 믿는 구원의 삶을 위해 우리가 그리스도의 편지로서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뭇 사람들이 우리를 볼 때 예수 그리스도를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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