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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들

하나님을 경외하라(전도서 3장)

기쁨으로 선을 행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라!”

전도서 31~ 15

 

겨울이 오고 해서 이사한 후 처음으로 집안 구조를 바꿔봤습니다. 거실에 있던 티비를 안방으로 넣고, 방에 있던 애들 책장을 거실로 옮겼습니다.

 그렇게 집안 구조를 바꾸니까 신기하게 가족의 생활패턴이 바뀌었습니다. 예전에는 안방은 거의 쓰지 않고 거실에 주로 있었는데 이제는 다들 티비가 있는 따뜻한 안방에만 들어가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구조를 바꾸니까, 자리를 바꾸니까 자연스럽게 변화가 찾아온 것입니다.

우리의 영적인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내부에 우선순위를 조정한다면 자연스럽게 생활이 달라집니다. 늘 하던대로만 지내지 마시고, 찬양대도 들어가보고, 교회에서 봉사도 좀 하시고, 헌금위원도 해보십시오. 뭔가 변화를 주면 반드시 여러분의 삶이 변화될 것입니다.

 

사람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습니다. (12-13)

사람이 가장 행복할 때는 언제일까요?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자신의 존재가 쓸모있고, 선을 행했을 때입니다. 그렇다면 선을 행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도덕적으로 윤리적인 선을 말하는 것일까요? 단순히 구제하는 것을 말하는 것일까요?

어떠한 물음 앞에서 우리는 성경속에서 그 답을 찾아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별히 예수님은 이에 관해서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봐야 합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심판의 기준이 나옵니다. 그것은 곳 선을 행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2535~40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선을 행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실제적인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 시절에 집사들의 할 일은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복음을 전하는 일이었고, 하나는 어려운 이들을 구제하는 일입니다. 말로써 복음을 증거하고, 행함으로 어려운 이웃에게 선을 행하는 일입니다.

종교개혁자 존 칼빈은 스위스 제네바에서 목회를 하는데 그가 했던 일이 기독교강요와 같은 기독교교리를 정리하는 일과 함께 <제네바 종합 구빈원>을 세워서 빈민과 환자들을 방문하여 돌보는 구제하는 일을 병행했습니다. 존 칼빈은 집사 직분이 오로지 가난한 자를 돕는 일에 헌신하는 사역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또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기뻐하며 선을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의무적으로, 어쩔 수없이, 마지못해 하는 것이 아니라, 기뻐하며 자발적으로 선을 행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기쁨으로 선을 행하시길 바랍니다. 인생에서 이보다 더 귀한 것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마지막 때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어떻게 행했느냐를 우리 하나님 앞에서 헤아리는 날이 반드시 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사람의 본분입니다.

오늘 말씀 14절 말씀

무릇 하나님의 행하시는 것은 영원히 있을 것이라 더할 수도 없고 덜할 수도 없나니 하나님이 이같이 행하심은 사람으로 그 앞에서 경외하게 하려 하심인 줄을 내가 알았도다

우리의 인생에서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고, 도저히 우리 힘으로 어쩔 수 없을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 엎드립니다. 죽음과 질병 앞에서도 우리는 하나님 앞에 엎드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신실하시던 권사님이 계셨는데 갑작스럽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것이 도저히 머리로는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부르시면 가야된다는 것은 분명히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존전 앞에 섰을 때, 미약하고 부족하고 죄많은 우리들은 엎드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야곱이 홀로 돌베게를 베고 잠을 자다가 꿈속에 하나님을 뵈옵고, 벧엘을 세워 하나님 앞에 엎드립니다. 모세가 불타는 떨기나무 앞에 신을 벗고 엎드립니다. 다윗은 시편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리니 땅의 모든 끝이 하나님을 경외하리로다”(67:7)고백하며 엎드립니다. 이사야가 거룩한 하나님 앞에 엎드려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고백합니다.

베드로가 변화산상에서 예수님을 바라보고, 엎드려 주여! 내가 주님과 모세와 엘리야를 위해 초막 셋을 짓겠나이다 고백합니다. 사도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 빛되신 주님을 만나 눈이 멀어버렸습니다. 그 후에는 주님만 바라보며 사는 인생, 주님 앞에 철저히 엎드린 인생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여 하나님 앞에 엎드린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을 찾고 계시고, 그런 사람들을 사용하십니다. 여기 모인 저와 여러분들이 그러한 하나님 앞에 엎드린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알고, 하나님 말씀 앞에 철저히 순종하는 귀한 인생이 되기를 바랍니다.

전도자는 결론처럼 전도서 1213절에 말합니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할렐루야!

헛되고 헛된 세상 가운데 가장 존귀한 인생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인생입니다.

부디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라도 기쁨으로 선을 행하시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인생을 사셔서 이 땅 가운데서는 부귀영화를 못누리더라도 나중에 하늘나라 가서 우리 주님의 얼굴을 뵙는 천국인생을 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이시간 우리가 말씀을 들었습니다. 나 자신의 입과 배를 채우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고, 나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삶을 살았던 것을 고백합니다.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제라도 말씀 따라 기쁨으로 선을 행하게 하시고,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도 주님을 대하는 심정으로 살게 하옵소서.

주님! 오늘 주의 전에 나왔습니다. 주님 앞에 엎드리게 하시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주셔서 일평생 주의 종으로 순복하며 주의 말씀 대로 행하는 귀한 인생들이 되게 하옵소서.

훗날 천국에서 주님 뵈올 날을 기대하며, 지금의 고난과 가난과, 역경을 견디게 하시고,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그 주님의 사랑 가운데 거하는 귀한 하루가 되게 하옵소서.

거룩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