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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들

다윗의 탄원(시편 140편)

다윗의 탄원

시편 1401-13

 

세계적인 극작가 세익스피어가 역경에 관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역경이 사람에게 주는 교훈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다.”

세상을 살다 보면 누구나 곤경의 순간을 겪기 마련입니다. 그런 과정을 반복적으로 겪게 되면 불운하다거나 불행하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선배들은 인생에서 역경과 고난은 피할 수 없는 과정이라고 말합니다. 러시아 작가 톨스토이도 인생은 학교다. 인생의 학교에서 실패는 성공보다 더 훌륭한 교사다.”라고 말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고난과 역경을 성장의 기회로 삼는 자세가 있다면, 지금의 불행과 아픔을 가장 빨리 벗어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시는 다윗의 시입니다. 다윗도 좋은 시절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고난이 있었고, 역경의 세월이 있었습니다. 10년을 도망자 신세로 지냈습니다. 때로는 살기 위해 침을 흘리면서 미친척도 해야 했습니다. 전쟁에 나가 승리하고 돌아와서도 사울의 질투로 인해서 마음고생을 했습니다. 일 잘해놓고도 욕먹는 경우입니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욕은 욕대로 먹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그런 기억이 있으면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다윗에게도 그런 기억이 있었고, 자신을 해하려 하고, 트집 잡아서 싸우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1401-3절 말씀 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와여 악인에게서 나를 건지시며 강포한 자에게서 나를 보전하소서 저희가 중심에 해하기를 꾀하고 싸우기 위하여 매일 모이오며 뱀같이 그 혀를 날카롭게 하니 그 입술 아래는 독사의 독이 있나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다윗은 하나님께 자신의 탄식과 마음을 쏟아놓습니다. 나를 건지시고 지켜주실 분은 하나님 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 시편 139, 140편을 읽으면서 한가지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첫째는 탄원할 때가 있다는 것은 행복한 것이란 사실입니다.

다윗은 탄원할 곳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마음을 쏟아놓을 때가 있었습니다. 바로 하나님입니다. 자신의 인생의 주인되신 하나님께 탄원했습니다. 하나님께 말하고, 기도하고, 간구했습니다. 때로는 악인을 향해 좀 갚아달라고 보응해달라고 호소했습니다.

문득 이 시편 내용을 읽으면서 다윗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생각해보면서, 그래도 다윗은 토로할 곳이 있어서 행복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말할 곳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자신의 마음을 진솔하게 꺼낼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이 행복입니다. 힘들고, 악한 감정들을 마음에 쌓아두고, 말도 안하고 참고 참다보면 병이 나기 마련입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냥 담고 있지 마십시오. 하나님 앞에 쏟으십시오. 말하십시오. 탄원하십시오. 하나님이여~ 부르짖으십시오.

예전에 병 나으신 분들 보면, 그렇게 통성기도 많이하고, 부르짖고 자신의 응어리진 것들을 다 쏟아내고 나면, 혀가 풀려서 말도 하고, 암덩어리들이 사라지고, 굳었던 몸이 풀리는 것들을 경험하고는 했습니다.

하나님께 탄원할 때 그러한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께 탄원할 때 축복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응어리진 것이 풀립니다. 암덩어리가 사라질 줄 믿습니다. 굳었던 것이 부드러워질 줄 믿습니다.

 

2. 다윗은 하나님에 관해서 정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12-13절 말씀

내가 알거니와 여호와는 고난당하는 자를 신원하시며 궁핍한 자에게 공의를 베푸시리이다 진실로 의인이 주의 이름에 감사하며 정직한 자가 주의 앞에 거하리이다

다윗은 하나님에 관해 우리가 고난당할 때 도우시고, 궁핍한 자에게 공의를 베푸시는 분이라고 고백합니다.

예전에 읽은 책 중에 제목이 참 기억에 남은 책이 있습니다.

툴리안 차비진이 쓴 책인데요. 나는 하나님을 아는가, 하나님도 나를 아는가

라는 책입니다. 하나님에 관한 우리의 인식에 대해 묻고, 또한 과연 나 자신은 하나님이 알고 있는 사람인가 되묻는 그런 책제목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누구나 내가 만난 하나님 체험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하나님 입장에서 기억될만한 성도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 스스로의 구원의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이 있어야 하면서 동시에 성경 속에서 말씀하고 있는 그 말씀의 하나님, 구원의 하나님, 창조의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온전히 하나님을 알았다고 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전자에 치우치다 보면, 그냥 내가 믿는 하나님, 나의 믿음의 인식의 틀, 내가 아는 지식의 틀 안에 있는 하나님을 제멋대로 믿으며 생활하게 되고,

후자에 치우치다 보면, 성경 속에만 나오는 역사의 주 하나님, 지식적으로만 아는 하나님, 나의 삶과는 전혀 상관없는 하나님이 되어버립니다.

다윗은 오늘 말씀을 통해 고백합니다. 나의 고난 가운데 찾아오셔서 구원해주시는 하나님, 내가 궁핍한 가운데서도 공의를 베푸셔서 채워주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을 고백하고 있습니.

구약에서도 신약에서도 우리 하나님은 가난한자, 궁핍한자, 병든자, 나그네, 고아, 과부를 선대하시고, 이 세상가운데 공의를 실천하시는 구원의 하나님입니다.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를 긍휼히 여겨 주시고, 살려주십니다.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은 단순히 우리가 쳐 놓은 울타리 영역 안에 머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믿음의 지경을 넓혀야 합니다. 하나님 만나는 체험을 하고, 진정으로 하나님이 알아주는 사람은 한계를 넘고, 벽을 뚫고, 지도 밖으로 행군하게 되는 것입니다. 복음의 영향 아래 있다보면, 복음이 우리의 삶을 이끌어 간다면, 우리는 잠시도 머물수가 없습니다. 복음은 수류탄입니다. 수류탄은 잘 훈련된 군인이 던져도 터지고, 동사무소 방위가 던져도 터집니다. 복음을 전하기만 하면, 그곳에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만난 그 놀라운 구원의 하나님을 전하십시오. 다윗처럼 그 하나님을 붙드십시오.

우리이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의 그 사랑과 구원을 기억하시면서, 날마다 주님의 옷자락을 붙드는 거룩한 주님의 백성들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