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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들

큰 구원, 구원의 창시자, 시험과 고난당하신 자(히 2장)

 큰 구원, 구원의 창시자, 시험과 고난당하신 자

히브리서 21 ~ 18

 

히브리서는 구약과 신약의 연결고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대속의 죽음을 그의 제사장직과 연결하며, 새 약속과 옛 약속과의 관계성에 관해서 구약을 설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의 특징은 구약의 인용이 많고 유대교적 사상과 성향이 강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종말론적 대제사장으로 이해합니다. 진정한 믿음이 무엇인지 정의를 내린 후 성도의 바른 믿음생활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큰 구원 (1~3)

세상을 살다 보면 흘러 떠내려가는 것이 우리의 작은 믿음입니다. 이러한 작은 믿음이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꼭 붙들려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님이 주신 구원이 얼마나 큰 구원인지를 깨닫고 소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이 값싼 구원이 되어버린다면, 자연히 우리의 마음은 세상을 향해버립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주신 구원이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큰 구원이라면 우리는 목숨을 걸고 이 구원을 지키고, 이 구원받기 위해 사력을 다할 것입니다.

*구원의 무게가 얼마나 중한지 깨닫는 예화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영원한 생명을 얻는 구원.

사실 사람은 영적인 동물이기에 세상 물질적인 것에 만족하지 못합니다.

단적인 예로 왜 재벌과 같은 사람들이 자살을 합니까? 세상 물질적으로는 아무런 부족할 것 없는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영적인 것에 채워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영혼구원이 얼마나 귀한지 안다면, 세상 물질적인 것에 좌지우지 되지 않습니다.

누가복음 19장 삭개오를 보십시오. 삭개오가 예수님께 고백합니다.
주여!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예수님이 삭개오의 고백을 듣고 이렇게 말슴하십니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구원이 임하면 영혼이 살아나고, 물질적인 것에서 자유하게 됩니다.

삭개오가 10억이 있었다면 그 절반인 5억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겠다는 말입니다.

여러분이라면 이렇게 하실 수 있겠습니까?!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그런데 영혼구원의 기쁨,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삭개오는 그렇게 하겠다고 선포하고 결심합니다. 예수님을 통해 영혼 구원의 큰 기쁨을 맛보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일은 교회 역사에서 보면 너무나 많습니다.

사도 바울도 세상 좋은 것 포기하고 사도의 길로 갑니다.

윌리엄 보든 선교사도 미국 대부호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예일대학과 프린스턴 대학원을 나왔습니다. 앞길이 창창한 젊은이였습니다. 그는 무슬림 선교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이집트에서 아랍어를 공부하던 중 25세의 나이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의 묘비명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고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 그는 일어나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으며,

형제 사랑에 대한 특별한 마음을 품고, 주님을 섬기는 마음속에 열정이 불타오르며,

소망으로 기뻐하며, 고난을 인내하며, 기도에 힘쓰며, 성도와 교통하며,

다른 이들을 공경한 그의 삶은 주님 안에서의 믿음 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구원의 창시자, 예수 그리스도 (9~10)

잠시 동안 천사들 보다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죽음의 고난 받으심으심으로 말미암아 영광과 존귀로 고난을 쓰신 예수,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신 예수,

그 예수를 통해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늘 종의 자리에 얽매여 있을 것이나 그로 인해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고, 주의 형제가 되는 영광스러운 은혜를 맛보게 되었습니다.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17~18)

우리 주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 지는 성육신 사건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를 우리가 믿을 수 있는 이유는 예수님은 이 땅에 육신을 입고 태어나셨고, 인생의 고통을 겪으셨고, 우리가 당하는 시험보다 더한 시험도 당하시고, 배신도 당하시고, 무시와 멸시도 받으시고,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의 고통도 받으셨습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짊어져야할 무거운 짐을 손수 겪어보신 것입니다. 그 높고 높은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말입니다. *겪어본 사람만 안다.... 우리 주님이 겪어보셨다!

이것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모릅니다. 아파본 사람만이 그 아픔을 압니다. 마약이나 알콜 중독에 빠졌다가 예수를 만나 새사람이 된 사람만이 그들을 전도할 수 있습니다. 성 다미엔 신부는 나병환자들을 전도하기 위해 스스로 나병환자가 되었습니다.

우리 주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인간이 되셨습니다. 그보다 더한 사랑과 기적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