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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들

출애굽기 15장 19~21절 설교(미리암의 노래)

미리암의 노래

출애굽기 1519~ 21

성경에 보면, 몸으로 춤추며 찬양하는 사람 하면 누가 있을까요? 다윗 왕. 그렇다면, 넌센스 퀴즈 하나 내겠습니다.

성경 인물 중 시험만 쳤다하면 모두 100점을 받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미리암

다윗 보다 먼저 하나님을 춤추며 찬양했던 한 여인이 바로 모세의 누이 미리암입니다.

모세의 인생을 미리 알았는지 어쨌는지 모르겠지만, 미리암이 성경에 보면 크게 세 가지 이야기가 나옵니다.

첫 번째가 갈대상자에 어린 동생 모세를 넣고 나일강에 띄웠을 때 어떻게 되나 하고 쫓아갔던 사람이 누이 미리암이었고, 바로의 딸에게 갈대상자가 발견되었을 때 달려가서 유모를 구해다 드릴까요? 하고 모세의 친엄마 요게벳을 데리고 온 똑똑한 누이입니다.

그리고 출애굽기 15장에 나오는 미리암의 노래가 있구요. 그리고 민수기 12장에서 모세가 구스(에티오피아) 여자를 취한 것을 비방했다가 나병에 걸리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미리암을 볼 때 리더쉽이 있는 여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동생 모세가 어떻게 되는지 볼려고 강을 쫓아 내려갑니다. 바로의 딸이 아기 모세를 발견했을 때 재치 있게 다가가 히브리 여인 중에 아기에게 젖을 물려줄 유모를 데려다 주겠다고 합니다. 그러고서는 어머니를 모시고 오는 거에요.

모세는 미리암의 재치로 인해 친모와 붙어서 안정된 유아기 시절을 보내고, 히브리 남자는 죽을 수 밖에 없는데 살아나게 됩니다. 거기다가 최고의 여건인 이집트 궁전에서 왕자로 키워져서 최고의 학문과 언어, 문화를 습득하게 됩니다.

그래서 인지 오늘 본문 말씀 출애굽기 1520장에는 아론의 누이 선지자 미리암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우리 1520절 말씀 같이 읽겠습니다.

아론의 누이 선지자 미리암이 손에 소고를 잡으매 모든 여인도 그를 따라 나오며 소고를 잡고 춤추니

출애굽 사건 구원의 감격과 기쁨을 회복하라!

* 출애굽은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가장 큰 구원의 사건!!

출애굽의 대미를 장식하는 것이 미리암의 노래입니다. 선지자 미리암이 소고를 잡고 제일 먼저 나와서 춤을 추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출애굽 사건에 대한 기쁨의 춤입니다.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는 춤입니다. 인간이 정말 기쁠 때 나오는 게 춤이라고 합니다.

자녀가 서울대 합격했다고 생각해보세요. 어깨춤이 덩실덩실 쳐지지 않습니까?! 애들처럼 순수한 사람이 없는데요. 장난감 하나 사줘보세요~ 끌어안고 뽀뽀하고 난리가 아닙니다. 이리 저리 뛰어 다니면서 좋아합니다. 기뻐서 어쩔 줄 모릅니다.

기쁨의 가장 최고의 표현은 춤입니다. 그래서 다윗 왕이 왕의 체면이고 뭐고 하나님 앞에서 옷이 벗겨지든지 말든지 그렇게 춤춘 것입니다. 하나님께 너무 감사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춤추며 찬양할 수 있길 바랍니다. 왜 우리가 이렇게 찬양드려야 하는지 아십니까?

스바냐 3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하나님께서 우리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십니다. 기쁨에 겨워 어쩔 줄 몰라하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신다고 하십니다. 기쁨에는 전염성이 있습니다. 누가 웃으면 나도 따라 웃게 되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이처럼 기뻐하시기에 우리도 하나님을 바라볼 때 기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을 섬기실 때 기쁨에 겨워 춤을 추십니까? 하나님께 기도하실 때 교제와 기대의 기쁨이 있습니까? 주님 처음 만났을 때의 그 구원의 감격과 기쁨이 있습니까? 성경에 보면 이러한 사람 중에 한 사람이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전서 112절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 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바울이 이방인의 사도가 된 것은 오직 주님의 은혜에 감격했기 때문입니다. 자격 없는 자에게 자격을 준 것이고, 도저히 구원받을 수 없는 죄인인데 구원받게 된 것입니다. 도저히 합격할 수 없는 사람인데 합격을 한 것입니다.

바울이 그 구원에 감격해서 복음 전도하면서 다닌 킬로수가 2만 키로라고 합니다. 산을 넘고 걷고, 배타고, 돌아다닌 거리입니다. 지금처럼 비행기가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우리 주님이 쓰시는 분들을 보면 구원에 감격하는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구원받은 은혜를 누릴 때 나를 살리신 그 분을 위해 목숨을 걸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을 위해 불꽃처럼 타오르고 싶다는 생각이 샘솟게 됩니다. 오늘 이 시간 그러한 구원의 감격을 다시금 누리고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과의 첫사랑을 기억하면서 어쩔 줄 모르며 눈물 흘리고 손들고 찬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미리암은 출애굽 구원 사건을 통해 감격했기에 가장 먼저 소고를 들고 하나님께 춤추며 나아갔습니다. 다른 그 누구에게 시키거나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본인이 몸을 통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찬양을 올려드린 것입니다.

큰 그림을 그리며 기도하고 찬양하라!

이 구원사건은 사실 개인적인 구원이 아닙니다. 민족적인 구원입니다. 큰 그림을 그리고 앞장 서서 나간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을 한 번 보십시오. 우리의 기도제목을 보십시오. 얼마나 편협하고 작습니까? 그냥 가족들, 자녀들, 개인기도제목, 나를 위해서 그렇게 기도하잖아요. 무엇을 위해 찬양하고 기도하시겠습니까? 우리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633절 말씀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너희는 여호와를 찬송하라! 재차 반복한 미리암

21절 말씀에서 미리암이 화답한 내용이 나옵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찬송하라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이 말씀은 미리암이 처음 한 말이 아닙니다. 이미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이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했습니다.

출애굽기 151절 말씀 한 번 보겠습니다.

이 때에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이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니 일렀으되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미리암이 똑같이 따라서 노래한 것입니다. 다시 반복해서 노래한 것이죠.

이스라엘 자손이 수천년이 흐르도록 찬송하고 고백하고 암송하고 예배하는 내용이 바로 이 출애굽 신앙입니다. 그들의 정신사 속에 계속해서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역사적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 사실을 어떻게 해석하는지는 바뀔지 모르지만, 그 사실 자체는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이 엄청난 구원사건을 일으키신 하나님을 찬송하고 높이라는 말씀입니다. 신앙생활 하다보면 자꾸 답답하고 벽에 부딪친 것 같고, 제자리 걸음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십자가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때 그렇습니다. 나를 위해 십자가 지시고 죽으셨다는 그 예수님의 사랑이야기가 하도 자주 들어서 이제는 감흥이 없습니다. So What? 그래서요? 이제 그만 좀 했으면 하고, 뭔가 새로운 것을 들었으면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요. 우리는 다시 십자가로 돌아가야 합니다. 다시 십자가를 붙들어야 합니다. 우리의 교만이 자라고, 우리가 먹고 살만해졌다고 목소리 높일 것이 아니라, 그럴 때 일수록 우리는 십자가로 돌아가야 합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유대인들의 교육 방식은 다른 게 아니라 계속해서 반복교육이라고 합니다. 계속 듣고 말하고, 또 듣고 말하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무늬만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십자가를 우리의 마음 속에 새겨야 합니다.

피아니스트 세이모어의 뉴욕 소네트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습니다. 피아니스트 세이모어 번스타인의 삶의 이야기를 영화로 그린 내용입니다. 한국전쟁에도 참전해서 2016년에 방한하기도 했습니다. 거기에 나온 한 제자가 한 말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냥 한두시간 콘서트 홀에 와서 피아노를 감상하다 가지만, 그 한 시간을 위해 하루 4시간에서 8시간 동안 몇 달 동안을 연습했기에 그렇게 공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정한 십자가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매일 십자가를 붙드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이 사순절 기간이 훈련기간입니다. 이 훈련 없이는 벽은 깨어지지 않습니다. 변화는 찾아오지 않습니다. 성숙은 결코 없습니다.

미리암이 재차 여호와를 찬송하라고 선포하고, 강조했듯이 출애굽 사건을 기억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하라고 했듯이 우리는 다시금 십자가를 붙드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힘들다고 중간에 포기하면 안됩니다. 왜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없겠습니까? 왜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없겠어요?

미리암은 다시 우리의 마음에 불을 붙이고 있습니다. 다시 하나님을 바라보고, 다시 하나님을 찬양하고, 다시 십자가를 붙들고, 우리를 구원하신 그 하나님을 기억하라고 노래합니다. 오늘 이 밤에 다시 구원의 감격이 회복되고, 구원받은 기쁨으로 살아나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