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설교들

요한복음 7장 14~18절 설교(누구의 영광을 구하는가)

누구의 영광을 구하는가

요한복음 714-18

14 이미 명절의 중간이 되어 예수께서 성전에 올라가사 가르치시니

15 유대인들이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 사람은 배우지 아니하였거늘 어떻게 글을 아느냐 하니

16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

17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

18 스스로 말하는 자는 자기 영광만 구하되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참되니 그 속에 불의가 없느니라

 

1. 유대인 명절 - 그 중간에 가서 가르치신 예수님

요한복음에 보면 예수님께서 명절 때마다 성전에 3번 올라가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우리가 읽은 요한복음 7장에서는 초막절이 되어 예수님께서 성전에 올라가신 이야기를 합니다. 초막절은 유월절, 칠칠절과 함께 유대 3대 절기 중에 하나입니다. 장막절 이라고도 하는데 유대 달력으로는 715일부터 22일까지, 한 주간을 명절로 지킵니다.

초막절의 의미는 보통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하던 때 광야의 초막, 장막 생활을 회상하며 기념하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포도, 올리브 등을 추수하는 수장절로 추수 후 하나님께 감사하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똑똑한 것은 참 역사를 회상하고 기념해서 끝까지 하나님 신앙을 이어 온다는 것입니다.

2. 유대인들의 반응 - 본질적인 것에 마음을 두라!

오늘 말씀 1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명절 중간에 성전에 올라가서 가르치셨다고 말씀합니다.

14-15절 말씀 같이 읽겠습니다.

14 이미 명절의 중간이 되어 예수께서 성전에 올라가사 가르치시니

15 유대인들이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 사람은 배우지 아니하였거늘 어떻게 글을 아느냐 하니

초막절이 8일간인데 명절 중간에 성전에 올라가셨다면 아마 한 4일쯤 지난, 718일쯤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요한복음 2장에서 예수님은 유월절에 한번 올라가셔서 성전정화 작업을 하시고, 7장에서 초막절에 두 번째로 성전에 올라오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의 반응이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떠나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요한복음의 전체적인 중심 주제는 너희가 예수님을 믿느냐? 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요한복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629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14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1631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

 

예수님은 이러한 믿음에 관한 수없는 가르침을 제자들에게 유대인들에게 이야기 합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의 반응은 15절과 같습니다.

유대인들이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 사람은 배우지 아니하였거늘 어떻게 글을 아느냐 하니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대신 ? 예수는 배우지 않았는데 어떻게 글을 알지?’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한 내용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학력, 예수님의 겉모습, 예수님의 인간적인 스팩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마치 강원도 저 두메산골에서 영어토익 만점자가 나온 것 같은 시선으로 예수님을 놀라워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예수님 앞에 있는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 본질에는 관심도 없고, 오로지 비본질에만 관심을 갖습니다.

하나님 전에 나온 우리는 어떻습니까?! 교회에 와서 예배와 하나님 말씀 보다도, 교회에서 일어난 이슈나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오지는 않았습니까?!

오늘 이 말씀을 듣는 여러분은 사람이 아닌 하나님 말씀에 집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비본질적인 것보다도, 본질적인 것, 바로 하나님 믿는 믿음에 관해서 듣고, 복음에 관해서 귀를 기울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에 우리의 마음을 모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목사님 머리하셨더라. 넥타이가 멋있더라. 교회 밥이 뭐가 나왔더라 뭐 이런 이야기 보다는 하나님이 지난 주에 어떤 은혜를 주셨는지,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예수님의 가르친 교훈 - 하나님 아버지의 뜻과 교훈이다.

우리가 두 번째로 생각해 볼 것은 예수님의 대답입니다. 이 말씀 속에서 우리가 믿음의 사람인지 아닌 지를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16-17절 말씀

16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

17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

요한복음에서 계속해서 하시는 말씀이 16절 말씀입니다.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 / 예수님은 자기 스스로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434-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517-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828-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인자를 든 후에 내가 그인 줄을 알고 또 내가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

예수님은 자기의 가르침이 자기의 것이 아니요, 하나님 아버지의 교훈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

17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서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직접 해보고 그 교훈을 따르려고 하면 그 교훈이 하나님에게서 왔는지 내 스스로 말한 것인지 알 수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데살로니가전서 516-18절 말씀)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마가복음 834)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가복음 1814)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질 것이요,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질 것이니라

일흔번씩이라도 일곱 번 용서하라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러한 것들을 한 가지라도 실천해보고자 하면, 쉽지가 않습니다. 자기의 자존심도 버리고, 자기를 부인하지 않으면 실천할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자기에게 죄를 짓고, 미운 그 사람을 일흔번씩 일곱 번을 용서할 수가 있습니까?

황금만능시대, 이 풍족한 시대에 누가 십자가를 지고 싶어합니까? 교회에서도 어렵고 힘든 봉사를 누가 자진해서 하고 싶어합니까? 항상 기뻐할 수 있습니까? 쉬지 말고 기도할 수 있습니까?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까? 잘 안됩니다. 쉽지 않습니다. 이 하나님의 뜻을 그대로 삶속에서 행하려고 하면, 말처럼 교훈처럼 가르침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은 오늘 말씀에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따라 살아보아라! 그러면 그것이 내 교훈이 아니라 진정 하나님께로서 온 교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예수님은 그러한 말씀 그대로를 사셨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셨습니다. 그렇게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셨습니다.

우리 눈 앞에 놓여 있는 십자가가 있습니까? 교회 안에서 직분이라는 십자가도 있고, 하나님 말씀이라는 십자가도 있고, 사회적인 십자가도 분명히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아픈 가족이나, 자녀들이 십자가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우리도 주님의 뒤를 따라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기만 하면 됩니다.

또한 예수님과 다르게 스스로 말하는 자에 관해서 우리 주님은 18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말하는 자는 자기 영광만 구하되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참되니 그 속에 불의가 없느니라

성경에도 보면, 자기의 영광을 구하는 이들이 있고,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을 구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가룟 유다가 은 삼십에 자기 영광을 구하고 예수님을 팔아 버립니다. 아간은 시날산의 아름다운 외투와 은 이백세겔과 오십 세겔 중의 금덩이 하나를 보고, 자기의 영광만을 구하다가 이스라엘은 아이성 전투에서 패배하게 됩니다. 엘리야의 사환 게하시는 엘리야 몰래 나아만에게 은 두달란트와 옷 두벌을 받고 돌아와 문둥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사도행전에서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자기 영광을 위해 땅 판 값의 얼마를 감추었다가 베드로의 말씀을 듣고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자기의 영광을 구하는 자들의 결말은 이와 같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보면 자기의 영광을 구하는 이들이 있고,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을 구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철저히 이해타산을 따져보고, 자기에게 명예와 유익이 있으면 하구요. 손해가 될 것 같으면 잘 하지를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 본질, 예수님의 가르침에 집중하기 보다는, 비본질 - 어떻게 예수님이 글을 배웠을까? 나에게는 얼마나 이득이 될까를 따져보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 가운데 나 자신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기보다는 나 자신의 안위와 영광만을 구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며 사는 이들이 있습니다. 얼마 전에 히브리서 11장에 나온 믿음의 선진들에 관한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아브라함 이삭을 바친 이야기, 노아가 방주 만든 이야기, 가인과 아벨에 관한 이야기를 읽는데 문득 어떤 목사님이 믿음에 관해 이런 이야기가 생각이 났습니다.

믿음은 나를 찾아오신 하나님에 대한 인격적인 반응이다.”

그 한 마디 말씀을 생각하고 다시 히브리서 11장을 보니까, 정말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반응한 이야기이고, 노아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반응한 이야기 이고, 아벨이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한 이야기 였습니다. 오늘 말씀 속에서도 믿음의 인격적인 반응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살아있는 말씀은 반응이 있어야 합니다. 듣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반응해야 합니다.

물론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할 때 우리 주변에 있는 사탄 마귀들이 우리를 가만히 두지 않을 것입니다. 못하게 막으려고 안간힘을 쓸 것입니다. 시험은 꼭 봉사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 임합니다. 봉사 안하는 사람은 잘 건들지도 않습니다. 자신이 봉사를 그래도 좀 잘하고 있다 생각하시는 분들은 유념하셔야 합니다.

내가 왜 봉사를 하고 있는지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봉사한다고 누군가에게 칭찬받고 있는 사람들은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봉사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우리가 봉사해야하는 결정적인 근거는 우리 예수님이 먼저 그러한 봉사와 섬김의 삶을 사셨기 때문입니다. 그 예수님 때문에 봉사하는 것이고, 섬기는 것입니다.

저 같이 어린 목사도 나이 많으신 권사님들이 목사님~ 목사님~ 하고 불러주는 이유도 내가 잘나서 입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의 종이라 여기시기에 그렇게 불러주고 대해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주님이 먼저 우리를 위해 죽기까지 사랑하시고, 섬겨주시고,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그 사실을 잊지 마시고, 우리의 숨이 다할 때까지 봉사하고 섬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몸이 연약할 때는 기도로 섬기고 봉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금의 교회가 있기까지 엄청난 숫자의 피흘림과 순교가 있었습니다. 피흘림 없이는 사함도 없습니다.

희생없이는 영광도 없습니다. 섬김없이는 섬김을 받을 수도 없습니다. 봉사없이는 교회가 잘 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고전 10:31절 말씀 - 너희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

일평생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며 전도 여행을 했던 사도 바울을 기억하십시오. 그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얼마나 일했는지 귀신들도 바울의 이름을 알았습니다. 바울을 통해 그 많은 교회가 세워진 것은 바울이 자기의 영광 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았기 때문임을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 통해 나 스스로가 누구의 영광을 구하며 살아왔는지 돌아보고, 한 주간 새롭게 거듭나는 놀라운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