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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들

디모데후서 3장 10~17절 설교(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청년헌신예배 설교                                                                                           디모데후서 310~17

오늘이 청년부 헌신예배 이지만, 헌신하라고 해서 헌신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강요해도 그런 건 얼마 가지 않습니다. 그런데 헌신해야하는 이유를 발견했을 때, 내가 왜 헌신해야 하는 지를 깨달았을 때, 그 때 자발적으로 헌신하게 되는 것입니다. 청년이라고 다 헌신하는 것도 아닙니다. 청년이니까 헌신해야하는 것도 아닙니다.

사회에서는 다 포기한 세대라고 말하는 청년세대입니다. 어찌보면 불쌍한 세대입니다. 그런데 청년이니까 헌신하라는 것은 사실 말도 안되는 이야기입니다. 정말 헌신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을 깨달았을 때입니다.

철없고 뭣모를 때는 부모에게 반항합니다. 대듭니다. 따집니다. 그런데 부모님의 사랑을 정말 가슴 절절이 깨달았을 때 그 때는 부모를 공경하고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부모님이 나를 위해 이렇게 사랑해주시고, 희생하시고, 헌신하셨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을 때 마음에 감동이 일어나고 순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얼마 전 아버지와 속깊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제가 물었어요.

아빠~ 아빠는 언제가 가장 행복하셨어요?” 그러자 아버지가 그러시더라구요.

내가 능력있어서 너희들에게 뭘 해줄 수 있을 때 그 때가 가장 기뻤다

자신이 행복할 때를 물었는데 그렇게 이야기하시는 거에요. 본인이 어디 여행가고, 무엇을 하고, 밭을 사고 논을 살 때 가장 행복한 것이 아니라, 자식들에게 뭔가를 해줄 때 가장 기뻤다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아버지의 손을 꼭 잡았습니다. 너무 감사하더라구요.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하나님 아버지가 우리를 이처럼 사랑해주십니다. 예수님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는 제자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누가복음 12장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백합화를 생각하여 보라 실도 만들지 않고 짜지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큼 훌륭하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들풀도 입히시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자녀인 너희를 하나님께서 먹이시고 입히시지 않겠느냐? 좀 믿어라! 우리 하나님이 먹이시고 입혀주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이 이처럼 우리를 사랑해서 지금 이 자리에 앉혀주시고,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시고, 말씀을 듣게 하신 것입니다.

세상의 수십억의 인구 중에 지금 이 같은 자리, 같은 교회에 다니고, 믿음으로 끈을 이어주셔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이 얼마나 신기하고 놀라운 일인지요. 하나님이 이처럼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이 사랑에 감동해서 헌신하십시오. 자존심으로 헌신하는 거 얼마 못갑니다. 누군가에게 보이려고 헌신하는 거 얼마 못갑니다. 칭찬받으려고 헌신하는 거 얼마 못갑니다. 그런데 정말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해서 헌신하면 하늘나라 갈 때까지 헌신할 줄 믿습니다. 그 사랑으로 헌신하는 우리 청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는 새롭게 은혜를 체험하고 경험한 신입생들과 스스로 준비한 임원들입니다.

여러분! 해본만큼 자기 것이 되는 것입니다. 경험해본 사람만이 그 기쁨과 은혜를 아는 것입니다. 헌신과 순종이요. 섬김과 봉사요. 나눔과 베품이요.

해본 사람만이 그 기쁨을 압니다.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그런 기쁨이 아닌 십자가의 기쁨이 있습니다. 너무나 힘든 십자가, 아무도 지고 싶지 않는 십자가, 무거운 십자가. 요즘 교회는 너무 연약해져버렸습니다. 정말 믿음이 있는 건지 의심스러운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닙니다.

휴가 때 수요예배를 서초동 사랑의 교회로 갔습니다. 교회 건물과 규모에 놀랐습니다. 밖에서 볼 때는 좀 크구나 생각했는데 들어가보니까 교회 안에 에스컬레이터가 있어요. 무슨 신세계 백화점 같아요. 고급스럽고, 의자는 또 얼마나 좋은지, 음향시설과 조명은 최고입니다. 좌석 수도 1,2,3층으로 되어 있어서 정말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앉아서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비상구를 봤는데 거기에 안내판이 붙어 있어요. 서초역 3,4번출구.. 교회에서 나가는 곳이 지하철이랑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인지 상상이 가세요?

예배를 드리려고 본당에 앉았는데 근데 수요예배라 그런지 사람들이 별로 안왔더라구요. 자리가 텅텅 비었습니다. 사랑의 교회도 이제 다 됐나보다. 그냥 눈으로 어림잡아 예배드리는 숫자를 세봤습니다. 그런데 한 천명 정도 되더라구요. 워낙 예배당이 넓으니까 별로 없어보였는데 숫자가 천명정도 되요. 천명하니까 많아보이죠? 전교인의 몇 프로인지를 생각해보세요. 그냥 전체 교인을 3만명 잡고 천명하면, 3.3% 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주일예배 숫자와 수요예배 숫자가 엄청난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간섭받지 않고, 그냥 예배만 드리고 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소히 말해 썬데이 크리스천이에요. 교회에서 봉사하고 섬기지 않아요. 편한 자리만 찾아다니고, 말씀 좋다는 목사님 찾아다니고, 자신이 두 손으로, 두 발로, 땀과 피로 헌신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십자가 지기를 싫어하는 것입니다.

조용히 교회 예배 몇 번 나오는 분들한테 이름과 전화번호 좀 달라고하고, 등록하라고 하면 그 다음부터 교회 나올까요? 안나올까요? 코빼기도 안비쳐요.

이게 교회의 현실입니다. 옥한흠목사님이 이런 말씀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십자가의 기쁨을 아는 것은 마치 다이빙하는 사람들과 같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바다에 들어갈까 말까 배전에서 망설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파도가 치니까 무섭기도 하고, 물에 빠져 죽을까 겁나기도 하니까 오락 가락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다 속을 한 번 들어가 본 사람들은 그 바다 속이 얼마나 신비하고, 오묘하고, 또 다른 세상인지를 안다는 것입니다. 그 바다를 들어가본 사람들만이 그 기쁨을 체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들어가보기전에는 못하는 거에요. 마찬가지로 십자가를 질 때 주시는 하나님의 엄청난 기쁨과 차원이 다른 감동과 축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은혜, 십자가의 기쁨, 십자가의 능력, 십자가의 위로, 십자가의 소망, 들어가봐야지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말만 들어서는 몰라요. 그냥 티비로 봐서는 알수가 없습니다.

이번에 한 청년이 하는 이야기를 듣는데 참 마음에 감동이 되었습니다. 예전의 제 모습이었거든요. 집회 때 소리지르면서 기도하는 통성기도를 하는데 그게 거부감이 들고, 마음이 복잡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기도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어 부르짖으며 기도하게 되었다는 거에요. 정말 교회 나온지 얼마 안된 청년의 입에서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까 얼마나 감동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셋째는 믿음의 선배들입니다.

오늘 말씀 속에서 바울이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하고 있는 말은 바울이 디모데에게 보여주고 가르친 모든 것들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너가 배웠던 일, 너가 체험하고 확신 한 일, 그 일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성경, 말씀을 기준으로 삼고 살라는 것이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눈 본문 말씀입니다.

디모데에게 그런 믿음의 선배가 있었습니다.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믿음을 전승했고, 디모데는 바울을 본 받아서 믿음의 삶을 살았습니다. 지금 우리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냥 쉽게 되는 일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교회가 세워진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초대 교부 중에 터툴리안이라는 분이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교회라는 나무는 세 가지 액체를 먹고 자란다. 수고의 땀, 기도의 눈물, 순교의 피다

한 마디로 피땀흘린 헌신위에 교회가 세워지고 자란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우리 청년들의 피땀으로 더 자라나고 강건하게 세워지는 교회가 되길 바랍니다. 그런 새벽이슬 같은 청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