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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들

[책추천] 책만 보는 바보

책만 보는 바보(이덕무와 그의 벗들 이야기)

이전에 소개한 책 <비슷한 것은 가짜다>하는 책과 상통한 면이 있는 책이다. 연암 박지원 선생에게 영향을 받기도 했던 이덕무에 관한 책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저자 안소영씨와 그림 강남미 씨 두 사람이 만든 책이다. 중간 중간 그림이 들어가 있어 보는 것이 즐겁다. 

차례를 보면 다섯가지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첫번째 이야기 / 나는 책만 보는 바보

두번째 이야기 / 백탑 아래서 벗들과

세번째 이야기 / 내 마음의 벗들 - 박제가, 유득공, 백동수, 이서구

네번째 이야기 / 스승, 더 큰 세계와의 만남 - 담헌 홍대용, 연암 박지원

다섯번째 이야기 / 마침내 세상 속으로

여섯번째 이야기 / 아이들이 열어 갈 조선의 미래는

이덕무가 얼마나 책을 사랑했는지 이 책을 읽어보면 알 수 있다. 햇빛에 기대어 책을 읽기 위해 아침 저녁으로 상을 옮겨가며 책을 보았다는 이야기.

책을 읽다보면 머릿속에 떠올려 지는 이미지를 이렇게 표현하기도 한다.

"햇살처럼 호나하게 일렁이는 글씨들은, 어느 순간부터 사람의 모습이 되고 낯선 곳의 풍경도 되었다. 때로는 나에게 말을 걸어오기도 했다. 나도 마음속으로, 혹은 소리 내어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책읽기의 이로움에 대해 적었는데 그 이야기가 그의 처지의 비참함을 깨닫게 한다. 

책읽기의 이로움. 첫째, 굶주린 때에 책을 읽으면, 소리가 훨씬 낭랑해져서 그루기가 잘 다가오고 배고픔도 느끼지 못한다. 둘째, 날씨가 추울 때 책을 읽으면, 그 소리의 기운이 스며들어 떨리는 몸이 진정되고 추위를 잊을 수 있다. 셋째, 근심 걱정으로 마음이 괴로울 때 책을 읽으면, 눈과 마음이 책에 집중하면서 천만 가지 근심이 모두 사라진다. 넷째, 기침병을 앓을 때 책을 읽으면 그 소리가 목구멍의 걸림돌을 시원하게 뚫어 괴로운 기침이 갑자기 사라져 버린다. 

독서에 대한 몰입이 가져오는 유익이라 해도 되겠다. 완전히 책읽기에 몰입했을 때 마치 세상과 동떨어져 새로운 세상에 가 있는 것 같은 느낌 말이다. 배고픈 줄도 모르고,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누가 불러도 모를 정도로 몰입해서 책을 읽을 때 나타나는 이로움이다. 현실이 비참했기에 책읽기는 이덕무에게 정말 피난처와 같았을 것이다. 

그가 책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이런 표현도 나온다. "책과 가까이 지내다 보면, 온기가 없는 무생물이 아니라 살아 있는 생명체를 대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종종 있다." 

이덕무는 가난의 비참함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집 안에 있던 책 한질<맹자>를 팔아 양식을 샀다. 그런 연후에 이렇게 글을 썼다.

"아이들의 얼굴에는 다시 핏기가 돌았으나, 나의 속은 더욱 쓰리고 아프기만 하였다. 책을 팔아서 먹을 것을 얻다니, 어느 하늘 아래 나같은 선비가 또 있을까.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이렇게 하면서까지 살아야 하나, 나에게는 책 한 질도 허락될 수 없는 사치였던가. 마음이 몹시 어지럽고 서글펐다."

아... 책 한권에 이렇게 마음 아파하고, 선비로서 자괴감을 느끼는 이덕무의 모습 속에 수많은 책을 사놓고도 보지 않고 꽂아 둔 나의 사치가 한심하게 여겨졌다. 이미 장식품으로 전락해버린 고귀한 책들에 죄송한 마음까지 든다. 

그런 이덕무의 마음을 아는지 친구 유득공을 찾아가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자, 친구는 친구였나보다. 그 자리에서 <좌치춘추>라는 책을 뽑아 아이를 시켜 술을 사오게 하고 함께 술을 마셨다. 

저자는 그 이야기를 한 마디로 이렇게 압축했다. <맹자에게 밥을 얻고, 좌씨에게 술을 얻다.>

백탑 아래 만난 벗들의 이야기가 이후에 펼쳐지는데 학문함과 삶은 역시 좋은 친구들로 채워짐을 알 수 있다. 요즘 부부의 세계에 나온 김희애의 친구들을 보면 화가 난다. 저것도 친구라고.. 

나의 삶에 얼마나 좋은 친구들이 있는가?! 사실 이덕무의 가장 가까운 친구는 다름 아닌 책이었다. 결국 대궐까지 들어가 검서를 하는 자리까지 오르게 된다. 책만 보는 바보. 그러한 독서력을 인정받아 입궐하게 된 것이리라. 

성경에도 보면 비슷한 성경말씀이 있다. 잠언 22장 29절

"네가 자기의 일에 능숙한 사람을 보았느냐 이러한 사람은 왕 앞에 설 것이요 천한 자 앞에 서지 아니하리라"

바로 이덕무에 관한 이야기인 것 같다. 오늘도 능숙한 사람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책을 손에 집어 든다. 

그대여, 이덕무처럼 책만 보는 바보가 되어 보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