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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들

지체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삼하 12장)

지체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사무엘하 121-14

 

오늘 말씀은 그 유명한 밧세바 사건 이후에 일어난 이야기입니다. 다윗은 우리아를 죽음으로 내몰고, 우리아의 아내인 밧세바를 취합니다. 그리고 밧세바가 아들을 낳게됩니다.

하나님은 이 아들을 낳았을 때 나단이란 선지자를 다윗에게 보냅니다.

다윗이 아들을 얻었을 때 너무나 기뻤을 것입니다. 아이를 낳아보면, 얼마나 기쁘고 신기한지 모릅니다. 일이 손에 잡히지가 않습니다. 일끝나기가 무섭게 집으로 달려가게 됩니다.

아마 다윗도 자신의 아들이기에 마음이 즐겁고 기뻤을 것입니다. 아기가 천사같은 눈동자로 자신을 보며 씩~ 웃는다면, 안웃는 어른은 없을 것입니다. 다윗도 다른 일은 다 잊어버리고, 눈 앞에 보이는 자신의 아기만을 바라보고 즐거워했을 것입니다.

바로 그 때 하나님은 나단을 보냅니다. 자신이 범죄한 것은 다 잊어버리고, 아기만을 바라보고 기뻐하고, 밧세바를 얻었다고 기뻐하는 다윗에게 하나님이 선지자를 보낸 것입니다.

나단이란 뜻은 양심, 주는 자라는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이 악하게 행동하자 나단이란 회초리로 때립니다. 범죄한 줄도 모르고 기뻐하는 다윗의 양심을 일깨워주는 것입니다.

이 모습 속에서 하나님이 다윗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보게 됩니다. 사랑하기에 악한 행동을 할 때 바로 고쳐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죄가 죄인지도 모르고 행하는 아이들에게 분명하게 알려주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양심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조차도 이 양심이 작용해서 악한 것 앞에서 마음에 찔림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 오은영 선생님 -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자녀교육에 있어서 참 유명한 프로그램 중 하나가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라는 프로가 있습니다. 아마 아이를 키우면서 누구나 한번쯤은 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특히 남자아이를 훈육할 때는 아이가 정확하게 집중해서 들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아이가 잘못했을 때는 그 즉시 아이의 양팔을 붙잡고, 아이의 다리도 움직이지 못하도록 한 다음에 그 아이가 어떠한 잘못을 했는지 그 두 눈을 똑바로 보고 알려줘야 한다고 합니다. 그냥 흘려 말하면 아이는 듣지도 않을뿐더러 교육적인 효과도 없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지금 다윗의 양팔을 붙잡고 나단이란 선지자를 통해 정확하게 이야기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우리가 잘못했을 때 지체하지 않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만약 우리가 죄를 저지르고, 잘못을 했을 때 아무 말이 없다면, 오히려 그게 더 무서운 것입니다. 더 죄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언가를 잘못 하고 있다면 말해주어야 합니다. 예배 드릴 때 우리가 예배에 성공하고 있는지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온전히 하나님을 바라보는 예배를 드리는 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어느 순간 세상 가운데 마음을 빼앗겨 버리고, 예배도 습관처럼 드리게 되고, 찬양도 마음을 다해 힘껏 부르는 것이 아니라, 대충 부르고 있지는 않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때로는 우리의 마음을 상하게 하실 때도 있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해서라도 다시 예배하고, 돌아오게 하십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을 치시고, 다윗에게 나단을 보내고, 우리의 인생에 고난과 환란을 주시는 것입니다. 고난이 어떻게 축복이 되고, 유익이 될 수 있을까?

시편 11967, 71절 말씀입니다.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어쩌면 고난이 우리를 주의 길로 인도하기 위한 하나님의 채찍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아직도 포기하지 않으시고 사랑하신다는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돌아오라고 우리를 부르시는 확실한 싸인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하루를 살아가면서 늘 우리를 부르시고, 지체하지 않으시는 그 하나님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으며, 하나님의 응답하심을 경험하는 그 은혜가 저와 여러분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양심과 욕심” /손계 차영섭

 

양심은 씨앗이나 뿌리요

욕심은 줄기나 가지이네

양심은 하늘에서 왔고

욕심은 땅에서 생기고 사라지네

 

양심은 모든 만물에 소통하지만

욕심은 인간의 마음에서 웃자라지

우리 마음에선 항상 참과 거짓이

선과 악의 대결을 하는 고통,

 

있으면 무겁고 없으면 가볍지만

사람들은 무거워도 소유하려 하지

질그릇 같은 욕심을 깨버리면 되는데

삶이란 게 어디 그런가?

 

산 위로 오르면 양심의 푸른 세계요

산 아래로 내려오면 욕심의 도시라

다 알지만 산 위로 오른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쉬운 일인가!

 

기도하겠습니다.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다윗에게 나단선지자를 통해 양심을 일깨워주시듯 우리에게 양심이란 선지자를 주셔서 우리의 삶 가운데 죄악에 빠지지 않도록 멈춰주시니 감사합니다. 때로는 말로써 상처입고 사람이 싫어질 때가 있지만, 매와 회초리 그 너머의 본질적인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깨닫는 은혜를 주옵소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지체하지 않으시는 그 하나님을 보게 하옵소서.

거룩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