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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들

소망의 사람, 다윗(삼하 12장)

소망의 사람, 다윗

사무엘하 1214-25

매주 화요일 아침에 경건회를 합니다. 예배 때 찬송가를 부르는데 유난히 피아노 소리가 귀에 거슬렸습니다. 알고보니 조율이 안되어서 한 음이 계속 자기 소리를 못내고 있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찬양을 불러도 그 건반 하나 때문에 계속 신경이 쓰였습니다. 경건회가 끝나고 다들 피아노 조율해야 겠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문득 그 상황에서 하나님이 저에게 그런 마음을 주셨습니다. 이 새벽에 나와서 예배드리고 하나님 귀한 말씀 듣는데, 내 자신이 저렇게 조율 안된 건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리 은혜로운 찬양을 연주해도 조율 안된 건반 하나만 있어도 분위기와 반주가 제대로 되지를 않습니다. 조율 안된 건반 하나가 우리의 작은 죄 하나라고 생각한다면, 그 죄 하나 때문에 우리 인생의 소리가 틀어질 수 있다는 말입니다.

오늘 말씀 앞에 우리가 조율되는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오늘 말씀을 읽으면서도 보면, 불변하는 진리의 말씀이 있는 반면에, 가변적인 내용, 계속해서 상황에 따라 변하는 말씀이 나옵니다.

믿음은 불변하지만, 믿음의 형식은 시기와 장소에 따라 늘 바뀝니다. 다윗이 하나님께 예배하고 찬양하고, 경배하는 것은 바뀌지 않습니다. 하지만, 다윗에게 일어난 사건과 상황들은 계속해서 바뀝니다. 도망자로 10년을 지내고, 때로는 미친 척도 하고, 굴 속에 숨어지내고, 때로는 유다의 왕이 되었다고 전 이스라엘의 왕국의 왕이 되고, 전쟁하는 것마다 승리해서 수많은 영토와 재물을 얻게 되기도 하고, 밧세바 사건 이후에 얻은 아들이 태어난 지 5일만에 죽음을 경험하기도 하고, 아들 압살롬의 반역을 겪기도 합니다. 늘 상황과 인생은 변하기 마련입니다.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에게 한결 같이 변하지 않는 것이 바로 믿음이요 신앙입니다. 그것은 아들이 죽든지, 도망자 신세이든지 변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살아 있는 한 믿음생활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오늘 말씀 1216절에 아이를 얼마나 생각했는지 이렇게 나옵니다.

다윗이 그 아이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하되 금식하고 안에 들어가서 밤새도록 땅에 엎드렸으니좀 더 쉬운 새번역에는 이렇게 나옵니다.

다윗이 그 어린 아이를 살리려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를 드리면서 금식하였다. 그는 왕궁으로 돌아와서도 밤을 새웠으며, 맨 땅에 누워서 잠을 잤다

다윗은 그 아이를 위해 밤을 샐 정도로 금식하고 기도하며, 맨 땅에 엎드렸습니다.

다윗이 한 나라의 왕인데도 얼마나 그 아이에게 마음을 쏟았는지 상상이 갑니다.

사실 왕이든, 대통령이든, 국회의원이든 아이 앞에서는 그냥 아버지일 뿐입니다. 다윗은 그 아버지의 마음으로 아이를 위해 기도한 것입니다. 그렇게 마음 쏟은 아이의 죽음 앞에 다윗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오늘 말씀 18-20절입니다.

이레 만에 그 아이가 죽으니라 그러나 다윗의 신복들이 아이의 죽은 것을 왕에게 고하기를 두려워하니 이는 저희가 말하기를 아이가 살았을 때에 우리가 말하여도 왕이 그 말을 듣지 아니하셨나니 어떻게 그 아이의 죽은 것을 고할 수 있으랴 왕이 훼상하시리로다 함이라 다윗이 그 신복들의 서로 수군거리는 것을 보고 그 아이가 죽은 줄을 깨닫고 그 신복들에게 묻되 아이가 죽었느냐 대답하되 죽었나이다 다윗이 땅에서 일어나 몸을 씻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갈아입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경배하고 궁으로 돌아와서 명하여 음식을 그 앞에 베풀게 하고 먹은지라

다윗은 5일 만에 아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땅에서 일어나 몸가짐을 단정히 하고 하나님 전에 들어가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나서 음식을 먹었습니다.

보통은 그 죽음의 소식 앞에 더 슬퍼하고, 억울해하고, 울분을 토했을 것 같은데 다윗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마음 쏟고, 금식하며 기도했던 아이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몸가짐을 단정히 하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 모습 속에서 아이가 죽고 슬픔가운데 있을 때에 조차도,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는 다윗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어찌보면 참으로 냉정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평소에 별로 안좋게 생각하는 아이의 죽음이라면 모르겠는데, 자신이 마음쏟고 금식하며 기도했던 아이의 죽음임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냉정하리만치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음식을 먹으며 평상시처럼 행동합니다.

저는 다윗의 신앙을 볼 때 시편 7114절 말씀으로 생각해보곤 합니다.

나는 항상 소망을 품고 주를 더욱 더욱 찬송하리이다

다윗은 아들을 하나님께서 살려주실 수도 있다는 소망을 품고 기도한 것입니다. 이 소망이 있었기에 금식하며 맨 땅에 누워자면서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금식하는 것을 잘 못합니다. 하루에 두끼만 굶어도 죽을 것 같고, 온 몸에 힘이 없어서 잘 하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새벽기도회 끝나면 꼭 아침을 챙겨먹습니다.

그런데 5일 동안 다윗이 금식하며 기도했다고 하니까 참 아이를 향한 마음이 크다는 것을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다윗에게는 소망이 있었습니다.

소망이 있는 사람은 낙심하지 않습니다!”

누가 꿈을 이루고, 어려움을 이겨내고, 극복할 수 있는 지를 보면, 소망의 사람이 이겨내는 것을 보게 됩니다. 소망을 가지고 인내하는 것입니다. 소망을 가지고 견디는 것입니다.

소망이 있기에 지금 현실은 어둡고 암담하지만, 현실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소망의 사람의 특징이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철저히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1)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자!

히브리서 122절 말씀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예수님도 하나님 보좌 우편의 영광과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시고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우리도 우리 앞에 놓인 소망과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바라보며 잠시잠깐의 고난과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혹시 성도님들 중에 시험에 드신 분이 있습니까? 우리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예수님은 마귀에게 이끌려 40일 금식하셨고, 시험에 드셨지만, 말씀으로 이기셨습니다.

혹시 전세나 집문제로 고생하신 분이 있습니까? 우리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예수님은 인자는 머리 둘 곳도 없다고 하시면서, 여러 곳을 돌아다니셨습니다.

혹시 믿었던 친구나 사람에게 배신당하신 분이 있습니까? 우리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예수님은 3년이나 동고동락하며 같이 했던 제자 유다에게 배신당하셨지만, 그를 끝까지 친구여, 라고 부르셨습니다.

혹시 돈과 가난으로 어려움 당하신 분이 있습니까? 우리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이제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와 같이 사셨습니다.

혹시 사람들에게 무시 당하고, 조롱당해서 비참한 처지에 놓인 분이 있습니까? 우리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대제사장과 서기관, 바리새인들에게 뺨을 맞고, 침뱉음을 당하고, 조롱당하며 십자가에 못박혔건만, 우리 주님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을 바라봅시다! 슬픔많고 고생밖에 없는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여 주시고, 십자가의 삶을 사신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그 분만이 우리의 소망이요 생명입니다.

2) 소망이 끊어졌을 때 다윗은 낙심하지 않고, 위로했다!(24)

우리가 바라는 일들이 때로는 잘 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일천번제를 드리고, 작정기도를 했지만,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 때 오늘 말씀에 보면, 다윗은 그냥 슬픔 당한채로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아이를 잃은 어머니 밧세바를 위로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자신이 아닌 주변에 눈을 돌리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 보다 더 슬픔가운데 있고, 좌절해 있는 이들에게 위로와 소망을 주는 다윗을 보게 됩니다.

체스터톤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만나는 모든 사람을 보잘 것 없게 만드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진정으로 위대한 사람은 만나는 모든 사람을 위대하게 만드는 사람이다

다윗은 밧세바를 위로하며 다시금 어머니로 세워주기 위해 위로하고 소망을 심어줍니다.

이것이 다윗이 한 일입니다. 소망의 사람은 자신보다 주변 사람을 더 높여주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자신을 돌아보십시오. 자신이 위대하고자 하면, 만나는 모든 사람을 보잘 것 없게 만들어 버리는 사람인지, 아니면 만나는 모든 사람을 위대하게 만들어주고, 소망을 불어넣어주고, 격려해주는 사람입니까?!

소망이 끊어졌을 때 조차도 위로의 사람, 소망의 사람이 되어, 다시금 믿음으로 일어나는 역사가 저와 여러분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요즘은 소망도, 비전도 잃어버린 시대입니다.

자신의 목숨을 걸만한 비전과 소망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그냥 살아가는대로 즐기며 사는 것입니다. 먹는 것, 여행, 취미생활, 운동 다 자신의 유익만을 위한 게 주를 이룹니다. 다른 사람을 세워주는 일, 선교의 비전과 전도의 비전을 품는 일은 보기 드뭅니다.

하나님은 소망이 끊어졌어도 밧세바를 위로하는 다윗에게 솔로몬이라는 특별한 선물을 주셨습니다. 나단 까지 보내서 이름을 정해주셨습니다. “여디디야” - 여호와께 사랑을 입었다는 뜻입니다. 위로하는 자, 격려하는 자가 하나님의 사랑을 덧입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그러한 은혜를 누리길 소망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변치 않는 믿음과 소망을 주시길 간절히 원합니다. 모든 상황속에서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신 이인 예수님을 바라보길 원합니다. 주여! 긍휼을 베풀어 주셔서 내 자신의 슬픔과 아픔과 기분에 빠져 살기 보다도 내 곁에 있는 이들을 위로하며 소망을 심어 줄 수 있는 소망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주가 주신 소망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덧입기를 간절히 바라오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