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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들

제사장 위임식과 번제(출애굽기 29장)

제사장 위임식과 (속죄제)번제

출애굽기 291~ 18

오늘은 모세가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제사장 직분을 위임하는 예식과 제물을 잡는 번제에 관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모세는 하나님과 시내산에서 만나 사십일 사십주야를 보냅니다. 그리고 이러한 예식들에 관해서 하나 하나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제사장 위임식을 통해서 시내산 언약 이후에 처음으로 사람을 세우십니다. 지금까지 성막, 제단, 옷을 어떻게 만드는지에 관해서 말했다면, 이제는 사람을 세우는 일을 하십니다. 그 사람이 아론과 그 아들들 이었습니다.

모든 일에는 순서와 질서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제사장 위임식을 하는데 먼저 위임식에 쓰일 제물과 음식들을 준비하고, 그리고 사람을 준비시키는데 그 처음 과정이 씻기는 것입니다.

294절 말씀 너는 아론과 그 아들들을 회막문으로 데려다가 물로 씻기고

물로 씻는 다는 것은 성결의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갈 때도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있고, 반드시 손을 정결하게 씻고 예식에 참여할 수 있는 곳이 있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성결이라는 그 의식을 물로 씻는 것으로 행한 것입니다.

예수님도 사역에 앞서 세례요한에게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요한복음 3장에서 예수님은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결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물로 씻는 것은 이러한 깨끗케 되는 성결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천주교 성당에도 가 보면, 예배당 들어가기 전에 보면 성수가 있습니다. 들어가기 전에 성수를 찍어서 십자가 성호를 긋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이것도 성결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아론과 그 아들들이 제사장 직분 위임을 받을 때에 거룩한 옷을 입기 전에 물로 씻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5절에서 7절에 속옷과 의복 받침 겉옷과 에봇을 입히고 흉패를 달고 에봇에 공교히 짠 띠를 띠우고 그 머리에 관을 씌우고 그 위에 성패(여호와께 성결)를 더하고 관유를 가져다가 그 머리에 부어 바르고라고 나옵니다.

 

이 제사장 직분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먼저 물로 씻기는 성결의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아직 가족중에 세례를 받지 않는 분이 있다면, 꼭 받을 수 있도록 강권하십시오.

내가 온전케 되고 나서 당당해지면 세례를 받겠다는 분이 있습니다. 술도 끊고 담배도 끊고 나서 받겠다 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물론 그러면 더욱 좋겠지만, 사실 말씀에 비추어 보면 교만한 것입니다. 죄없으신 우리 예수님도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우리 주님도 받으셨는데 세례를 안받겠다는 것은 교만한 것입니다.

세례를 통해서 우리의 죄가 깨끗이 씻어지고, 성결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주의 일을 하기 위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쩔수 없이 하기보다는 먼저 하나님 앞에 잠잠히 나와서 정결케 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생각없이 하기보다는 내가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인지를 고민해보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 안에서도 이러한 정결예식, 씻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사실 우리 한국 사람들을 보면, 얼마나 잘 씻는지 모릅니다. 샤워하는 거 보면 매일 20~30분씩 샤워를 합니다. 다른 민족에게 없는 때미는 문화를 봐도 그렇습니다. 얼마나 정결한 지 하수구가 막힐 정도(?)로 깨끗하게 씻습니다. 간혹가다가 하수구가 막혀서 막 물이 차 오를 때도 있습니다. 우리 한국민족이야 말로 준비된 제사장 족속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이 일꾼을 세울 때는 물로 주는 세례도 받아야겠지만, 하나님이 성령충만을 부어주셔서 우리의 눈물로 자신을 씻기게 하십니다. 이것이 성령세례입니다. 성령세례는 체험적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213절을 보면,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주님이 우리에게 성령을 주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로 자신과 하나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으면 우리 주님과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주님은 성령을 주시는 것입니다.

만일 성령 세례가 무슨 특별한 체험을 가리키는 것이라면 이것은 대단히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중에 방언을 한다거나, 환상을 본다거나, 병을 고치는 그러한 특별한 체험한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됩니까? 아마 열의 하나도 안될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나머지 대다수의 사람들은 무엇입니까? 아직 세례를 받지 못한 자요, 예수님과 한 몸이 되지 못한 자라는 이야기가 됩니다.

우리는 체험이 있든 없든 성령으로 세례를 받은 하나님의 소유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우리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았다면 우리 중에 예수님을 믿을 자가 한 사람도 없었을 것입니다. 동정녀 마리아 탄생, 귀신을 쫓는 기적, 병을 고치는 기적, 오병이어의 기적,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이 모든 것들이 믿고 아멘하는 것은 성령을 받았다는 증거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쓰임받기에 앞서 이렇듯 정결케 되고, 성령 충만함을 받아 준비된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로, 번제물에 안수 하는 것은 나 자신의 죄를 그 수송아지와 그 수양에게 전가시키는 것입니다.

그 수송아지와 그 수양을 잡는 것은 죄악에 사로잡힌 나 자신을 하나님 앞에 잡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는 십자가 앞에서 나 자신이 죽는 것과 동일한 의식입니다.

갈라디아서 220절 말씀, 나는 죽고 예수 그리스도로 사는 삶을 말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삽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나 자신은 십자가에 예수님과 함께 죽었습니다. 이제는 나는 죽고,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속죄제, 번제 이러한 것들은 보기에는 송아지 잡고, 양잡고 하는 것 같지만, 영적으로는 나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나의 재산의 일부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나의 생명과 나의 전부를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부모의 사랑에 빗대어 많이 이야기 합니다.

주고 또 주는 사랑, 희생하고 또 희생하는 사랑, 그 사랑이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시고, 품어주시고, 안아주십니다. 부족한 우리를 그대로 받아주십니다.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서 오늘 하루도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