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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들

던져진 인생, 요셉(창세기 37장)

던져진 인생, 요셉

창세기 3718~ 24

 

요셉을 생각하면 꿈의 사람 요셉을 떠올리기가 쉽습니다.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만을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하지만 그 꿈이 이루어지기까지는 수많은 유혹과 고난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을 읽다 보면 계속해서 나오는 말 중에 자꾸 눈에 들어오는 말이 있습니다.

19-20절 같이 읽습니다.

22절 말씀, 24절 말씀도 읽겠습니다.

어떤 말입니까? 구덩이에 던지다라는 말이 계속해서 반복되어지고 있습니다.

요셉이 의도해서 구덩이에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말 그대로 형들에 의해서 구덩이에 던져지게 되는 것입니다. 요셉은 던져진 인생이라는 것이죠.

형들에 의해서 구덩이에 던져지게 되고, 미디안 상인들에 의해 보디발의 집에 던져지게 되고, 보디발에 아내에 의해 감옥에 던져지게 됩니다.

이러한 요셉의 모습 속에서 놀랍게도 우리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우리 또한 이 세상에 던져진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원해서 이 땅에 태어난 사람이 있습니까? 아니요. 우리는 우리의 의도와 전혀 상관없이 이 땅에 던져진 인생입니다. 때로는 원하지 않는 군대에 던져져야 되고, 어떤 이들은 질병의 구덩이에 던져지기도 합니다. 헤어나올 수 없는 중독이나 환경에 던져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죽음으로서 무덤에 던져질 인생이 바로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요셉은 어떻게 던져진 인생 속에서 살았는 지를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절대주권 신앙을 가졌습니다.

요셉은 인생에서 한 가지 가치 기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절대 주권신앙입니다. 시위대장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에 요셉은 이렇게 답하고 있습니다.

요셉이 거절하며 자기 주인의 처에게 이르되 나의 주인이 가중 제반 소유를 간섭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임하였으니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자기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39:8-9)

요셉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자신의 쾌락과 탐욕보다도 하나님 앞에 의롭게 살고자 했습니다. 또한 자신을 노예로 팔아버린 형들에게 하는 말 속에서 요셉의 신앙을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로 바로의 아비를 삼으시며 그 온 집의 주를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치리자를 삼으셨나이다”(45:7-8).

요셉은 하나님이 앞서 하셨다는 절대주권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형들에 대한 원망과 인간적인 복수심 없이 형들을 선대할 수 있었습니다. 인간적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습니다. 자신을 팔아버린 형들을 어떻게 용서할 수가 있습니까? 자신을 구덩이에 던져버린 형들을 어떻게 용서할 수 있습니까? 하지만 요셉은 하나님이 하셨다는 절대주권 신앙이 있었기에 형들에 관한 개인적인 감정을 이겨낼 수가 있었습니다.

 

두번째는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애굽에 노예로 이끌려 내려갔을 때 처음으로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신다는 말씀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바로의 신하 시위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이 그를 그리로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그를 사니라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39:1-3)

요셉이 애굽에 노예로 팔려간 그 때부터 어떻게 형통의 사람이 될 수 있었는 지는 우리가 읽은 말씀에서 알 수가 있습니다. 그 답은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기 때문에 형통한 자가 된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함께 하심을 아는 것은 요셉 자신 뿐만이 아니라 그의 주인이 된 보디발도 알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노예로 팔릴 때 뿐만이 아니라 감옥에 가서도 똑같이 일어납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전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전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전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돌아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셨더라”(39:21-23).

하나님이 함께하실 때 노예였고, 죄수였던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는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났고, 형통의 축복이 임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물론 요셉이 잘한 것도 있지만, 어디 까지나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에 이러한 형통의 축복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세 번째로,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 요셉의 실력을 키우십니다.

관심을 갖고 살펴봐야 할 내용이 또 하나 있습니다. 요셉으로 하여금 후에 애굽 총리로서 그 직무를 잘 수행하기 위해 실력을 쌓게 하시는 하나님의 이끄심입니다. 꿈 성취 후 그 일을 잘 해 나갈 수 있는 실력이라는 것은 성취한 것을 견고하게 하기에 반드시 갖추어야할 능력입니다. 이를 준비해 놓지 않으면 설령 꿈을 이룬다 해도 그것을 유지, 발전시키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단지 이집트 왕 바로의 꿈을 해석해 준 것만으로 애굽 총리가 될 수 있었다면 보디발 집에서 노예살이와 또 감옥살이를 할 필요없이 가족 품에 잘 자라다가 요셉을 사용하셔도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굳이 하나님께서 그 과정을 거치게 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창세기 391절에서 첫 마디가 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라고 나온다. 요셉의 의지보다도 하나님의 손에 이끌려서 애굽으로 내려갔고, 거기서 또 바로의 신하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 들어가게 됨을 알 수가 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이끄심으로 보디발 집의 제반 업무를 위임받아 관리하는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감옥에서도 간수장에게 은혜를 부어 요셉에게 감옥의 모든 일을 맡아서 일하게 하셨습니다. 특히 왕의 죄수들이 있는 그 감옥에서의 관리 업무는 현재의 신분은 죄수이지만 한 때는 왕의 측근들이었던 신하와 귀족들을 통제하는 일이었기에 후에 애굽의 총리가 되어 신하들을 다스리는 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실습 현장이 되었습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집과 감옥에서 쌓게 된 모든 제반업무를 했던 경험들은 나중에 30세에 강대국 애굽의 총리가 되어서도 그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과정을 통해 요셉을 준비시키시고, 실력을 쌓게 인도하셨음을 그의 삶을 통해 돌아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의 모든 자리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실력을 업시키도록 우리를 이끌고 계십니다. 요셉은 인간취급도 못받는 노예였어도, 감옥에 갇힌 죄수였어도, 그 자리에서 실력을 쌓았습니다. 평범한 사람은 노예와 죄수의 자리였다면, 절망하고, 주저 앉아 하나님을 원망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요셉은 어떠한 삶의 자리에서든지 묵묵히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가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고통스럽고 죽을 것 같은 고난이 나에게 닥친다면 요셉을 생각하십시요. 하나님이 나를 연단시키시고, 실력을 쌓게 하신다는 사실을 믿으면, 어느새 나도 하나님의 구원역사 한복판에 쓰임 받고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 나는 믿는다

 

나는 햇빛이 비추지 않을 때에도, 태양이 있다는 것을 믿는다.

나는 사랑을 느낄 수 없을 때에도, 사랑이 있다는 것을 믿는다.

나는 하나님이 침묵하실 때에도 그분이 계시다는 것을 믿는다.

-나치 강제 노동 수용소 벽에 쓰인 글-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도 요셉처럼 던져진 인생임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해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인생입니다. 주님! 구덩이에 던져진 인생일지라도, 감옥에 던져진 인생일지라도 저희들과 함께하여 주셔서 늘 형통케되는 축복을 누리게 하옵소서. 고난도 변하여 축복이 되고, 구덩이에서 건져져 하나님께 쓰임받는 놀라운 역사가 있게 하옵소서.

존귀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