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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들

여호와 이레, 이삭(창세기 22장)

여호와 이레, 이삭

창세기 221~ 14

여호와 이레(‘여호와께서 준비하심’)는 구약 성경에서 볼 수 있는 합성어로 된 하나님의 이름 가운데 하나다. 그곳은 아브라함이 아들을 제물로 드리려 했던 곳이었고, 하나님이 이삭을 대신할 숫양을 공급해주셨던 곳에 아브라함이 붙인 이름이었다. 그러나 여호와 이레는 또 모리아 산에서뿐 아니라 평생 동안 이삭이 경험한 것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언제나 그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급해주셨기 때문이다.

이삭은 유명한 아버지의 아들이었고, 또 유명한 아들의 아버지였다. 그 이유는 우리가 아브라함과 야곱을 생각할 때 떠올리는 영광이나 모험이 이삭의 삶 속에서는 나타나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이삭은 180년을 살았다(35:28-29). 그의 아버지나 아들보다 더 오래 산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아브라함이나 야곱처럼 파란 많은 세월을 살지 않았다.

하나님은 이삭에게 샬롬의 평안을 주셨고, 시온의 대로처럼 평탄한 길을 걷게 하셨다.

 

1) 이삭을 위한 공급

이삭이 믿음으로 살아가는 한 하나님은 그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공급해주셨다. 먼저, 하나님은 그에게 기업을 주셨다. 아브라함은 여러 해 동안 재산을 일구어야 했고, 야곱도 그랬지만, 이삭은 처음부터 부자로 태어났다. 사라는 이스마엘이 이삭의 기업을 훔쳐가게 될 것을 염려했다(21:10). 아브라함은 그의 첩들과 두 번째 아내 그두라의 아들들에게도 재물을 나누어주기는 했지만, “이삭에게 자기의 모든 소유를 주었다”(25:1-6).

이삭은 농사를 지어 백 배나 얻었고, 그의 많은 가축들은 주변 사람들의 부러움을 샀는데(26:12-14), 그것은 그가 여호와 이레라는 이름을 가진 하나님을 신뢰했기 때문이었다.

이삭은 40세가 되었을 때 하나님이 그에게 아내를 주셨는데, 리브가는 기다릴 만한 가치가 있는 아내였다(25:20). 그리고 리브가는 모친 사라를 잃은 이삭의 아픔을 위로해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었다(24:67).

이삭과 리브가는 구세주에 대한 약속에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그가 합당한 아내를 맞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하나님은 이삭에게 리브가를 통해 야곱과 에서를 허락하셨고,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이루어 가셨다.

 

2) 모리아 산정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 번제로 그 아들을 드릴 것을 요구 받는다. 번제로 드릴 것을 요구받을 때 하나님께서는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얼마나 사랑하는 지 잘 알고 있었다. 이때 아브라함이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순종하며 나아갔는지를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시간까지 명하지는 않으셨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 다음날 아침에 일찍 일어났다. 밤새 갈등의 시간을 보냈겠지만 지체하지 않는 그의 모습에서 그가 순종의 사람임을 보게 된다. 반면에,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을 마음에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내 심령에 받아들인 다음에도 얼마나 많은 시간을 지체할 때가 많은가?!

아브라함은 이 일을 아내와 의논하지 않는다. 만일 의논했다면 어떤 일이 생겼을까? 아브라함은 사환을 놔두고 산으로 올라가는 이삭의 등에 장작을 지게 했다. 그러자 이삭이 도중에 묻는다. ‘아버지, 불과 나무는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드릴 제물은 어디 있습니까?’ 기가 막히는 질문이었을 것이다.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아들아, 번제할 어린양은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셨다’. 이때 이삭의 나이가 열여덟살쯤 되었을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은 생각한다. 아브라함은 제단을 쌓고 그 위에 자기 아들을 묶었다. 스펄전 목사는 노족장이 노구에 그 아들을 들어 올리는 것은 매우 무거웠다. 그러나 자식을 죽이는 아버지의 마음보다는 무겁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는 무겁게 아들을 들어올렸다. 만약 열여덟살 먹은 청년이 발버둥치고 몸을 구르면 그 아버지는 어찌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삭은 묶일 때도 가만히 있었고, 자기 아버지가 자기를 해치려 할 때도 그대로 순종하고 있었다. 이삭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왜 그는 살려달라고 애원하고, 도망치지도 않고, 반항하지도 않았을까? 이러한 모습을 떠올리다 보면, 자연스럽게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게 된다. 하나님 아버지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을 사랑하사(3:16) 십자가에 내어 주셨다. 예수님은 어린 양처럼 순종하셨다. 세상을 향한 대속제물이 되어 주신 것이다. 이삭과 예수님의 출생은 미리 예고되었고, 출생 이전에 지어진 이름(17:19)이었다. 이삭과 예수님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출생하게 되었다. 이삭의 어머니 사라는 나이가 들어 이미 경수가 끊어진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이삭을 낳았고, 마리아는 동정녀였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낳았다. 그리고 히브리서 11:17-19절을 보면, 마치 예수님의 다시 살리심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은 동일한 내용이 나오고 있다.

이제 이삭과 예수님의 다른 점을 한번 살펴보면, 이삭과 달리 예수님은 가난하게 태어나셨고, 머리 둘 곳도 없는 가난한 순회교사의 삶을 사셨다. 예수님이 태어나셨을 때 그 어머니는 예수님을 빌린 구유에 눕혀야 했다. 사역을 하시는 동안 예수님은 베드로의 배와 어린아이의 도시락과 이름을 알 수 없는 제자의 나귀를 빌리셨고, 돌아가신 후에도 빌린 무덤에 묻히셨다. 예수님은 가진 게 없으셨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부요케 하셨는지 모른다. 그리스도인들은 저수지가 아니라 통로가 되어야 한다.

 

3) 하나님의 방법의 공급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아버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어린 시절 이삭은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을 정도로 그의 아버지를 기쁘게 하려 했다. 그러나 생애 말년에 이르자 자신의 방법대로 행하려 했다(27). 그것은 시작은 잘 했지만, 끝은 잘 마무리하지 못한 사람의 슬픈 이야기다.

결혼 후 이삭과 리브가는 하나님이 자녀를 주시기를 거의 20년 동안 기다렸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메시아에 대한 약속은 어떻게 된 것인가? 이삭이 하나님께 아내의 태를 열어주시도록 기도한 것은 적절한 일이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 기도에 응답하셨다(25:21-22). 두 태아의 이상한 움직임에 신경이 쓰인 리브가는 하나님께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여쭈었고,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다.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25:23)

하나님은 가인과 아벨에게, 그리고 야벳과 셈에게 하셨던 것처럼 다시 장자를 번복하셨다. 메시아의 계보는 에서가 아니라 야곱을 통해 이어질 것이다.

리브가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남편에게 알렸을 것이다. 그러나 이삭은 야곱 대신 장자인 에서에게 복을 주려 했다. 에서가 영적인 일에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았고, 자신의 장자권을 팥죽 한 그릇과 바꾸기까지 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이삭은 사냥꾼이었고 바깥생활을 좋아하는 에서를 사랑했고, 에서에게 복을 주고 싶었다.

리브가와 야곱은 기도하고 이삭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 마음대로 계획을 세웠고, 하나님은 그 계획이 성공하도록 허락해주셨다. 그러나 야곱은 성공을 위해 많은 대가를 치러야 했다. 먼저 목숨을 구하기 위해 고향을 떠나야했고, 사랑하는 어머니를 다시는 볼 수 없었다.

이삭이 장자 에서를 축복하려고 했던 이유는 자신이 곧 죽게 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후 40년을 더 살다가 180살에 숨을 거두었다. 이삭은 영적인 삶을 사는 대신 느낌과 냄새와 맛을 따라 살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대신 육체를 따라 살았다. 이삭은 야곱이 축복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는 심히 크게 떨었다”(27:33).

하나님이 다스리시도록 허락해드리지 않으면 하나님이 뒤엎으시고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결정을 하나님께 맡기는 사람들에게 언제나 가장 좋은 것을 주신다는 명언은 지금도 변함없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