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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들

이사야 28장 23~29절 설교(끝이 있습니다)

끝이 있습니다

 이사야 2823~29

어느 한 권사님이 자신이 가장 행복할 때가 언제인가 돌이켜보면, 자식들 다 키워놓고, 결혼시키기 전까지가 제일 행복했다고 합니다. 어느 정도 자식들이 알아서 일도 하고, 생활하고 신경쓸 일도 없이 지내다가 결혼 시켜 놓으면 일이 빵빵 터져서 힘들다는 것입니다. 손주 봐달라, 저쪽 집안은 이렇게 해주는데 우리 집안은 왜그러냐 뭐 이런 이야기부터 오만가지일이 다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가장 행복한 때는 자식들 결혼시키기 전까지가 최고 좋은 시기였다고 합니다. <자식은 평생 A/S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다 보면 참 위로를 받을 때가 있습니다. 이사야서에서도 그렇습니다.

앗수르에 의해 북이스라엘이 멸망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포로로 끌려 갑니다. 그 끝날 것 같지 않은 포로 생활이 끝나고 돌아오게 된다고 이야기 합니다. 포로생활에 끝이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 23-24절에도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23.너희는 귀를 기울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자세히 내 말을 들으라

24.파종하려고 가는 자가 어찌 쉬지 않고 갈기만 하겠느냐 자기 땅을 개간하며 고르게만 하겠느냐

늘 갈기만하고 땅을 개간하고 고르게만 하는 것이 아니라 파종하는 때가 있고, 추수하는 때가 반드시 있다는 말입니다. 이 말 속에서도 지금 하고 있는 그 일에는 반드시 끝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첫째로 끝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지혜입니다. (23-24)

우리 젊은 집사님들은 육아 때문에 얼마나 힘이 듭니까? 육아에도 끝이 있습니다. 끝이 있다는 이 말씀이 큰 위로의 말씀이 되기를 바랍니다.

공부와 학업 때문에 지치고, 매일 끝날 것 같지 않은 감옥같은 학교생활도 반드시 끝이 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때가 제일 좋을 때 였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수험생 자녀들 뒷바라지 하는 것도 끝이 있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직장일도 언젠가 끝이 있습니다.

할렐루야! 그리고 우리 인생의 끝도 있습니다. 그 끝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히브리서 927)

세상이 살기가 워낙 좋으니까 우리가 끝을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4장에서 끝이 오는 것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10.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되어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11.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12.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13.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14.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24:10-14)

31.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32.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33.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마태복음 2531-33)

”45.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46.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25:45-46)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끝이 있습니다. 그 끝은 오직 주님만이 아십니다. 그 끝에 양과 염소를 나누듯이 의인과 죄인을 나눕니다. 그리고 죄인은 영벌에, 의인은 영생에 들어간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우리에게는 이러한 끝이 있습니다.

정말 다행인 것은 아직 끝이 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기회가 있는 것입니다. 지극히 작은 자에게 주릴 때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를 때 마시게 하고, 나그네 되었을 때 영접하고, 벗었을 때 옷을 입히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고, 옥에 갇혔을 때 와서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이 말씀 앞에 우리의 믿음과 마음을 새롭게 하고, 우리의 끝을 생각하면서 오늘 하루를, 지금 이 순간 순간을 회개하며, 주님을 향해 돌이키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으로 돌아가서 보면, 이사야는 수많은 나라들에 대한 심판경고를 합니다. 이사야 13장부터 24장까지 바벨론, 모압, 애굽, 에브라임, 시돈과 두로.. 뭐 많은 부분이 하나님의 심판에 관해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생각할 때 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성경을 읽게 되는데 심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회복도 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25장부터는 심판과 함께 회복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읽은 이사야 28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앗수르에 대한 경고, 거짓 종교지도자들에 대한 경고, 그릇된 지도자들에 대한 경고 이후에 마지막으로 농부 비유에 대한 교훈을 통해 희망과 회복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어떠한 분인지를 농부에 대한 비유로 알려주고 있는 말씀이 얼마나 은혜가 되는지 모릅니다.

무슨 말씀이냐 하면, 파종하려고 가는 자가.. 즉 농부가 어떻게 계속 땅을 개간하고 고르게만 하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갈아 엎고, 뒤집고, 돌을 제거하고 나면, 거기에 소회향도 뿌리고 대회향도 뿌리고, 씨앗들을 심지 않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즉 심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회복도 있는 것이고, 절망만 있는 것이 아니라 소망도 있다는 말입니다. 끝이 있는 것을 알 때 지금을 더 알차고 소중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말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역사하십니다.(27)

하나님은 사람을 대할 때도 농부가 땅을 개간하고 타작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작대기로 살짝 치시는 분이 있는 반면에 어떤 분은 큰 막대기로 몽둥이로 치시는 분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이와 같습니다.

가끔 주변을 보면,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치시는데 살짝 한번 쳤을 뿐인데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며 무릎꿇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하나님이 강하게 34번 쳐도 깨닫지 못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하나님은 그 분들이 순종하지 않을 줄 알고 다른 방법을 예비해 두십니다.

이사야가 6장에서 부름받을 때 웃시야 왕이 죽은 해에 부름받습니다. 이사야는 왕족이었고, 풍요롭게 살았는데 그 세상줄이 끊어지고 나자 하나님 말씀에 순종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사야가 세상줄을 붙잡고 있을 때 순종하지 않을 줄 알고 웃시야 왕을 치셨는지도 모릅니다.

요나가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해서 다시스로 가는 배에 오릅니다. 하나님은 요나가 도망갈 줄 알고 큰 물고기를 예비해두셨습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이와 같습니다.

명의가 증세를 면밀히 살피고 그 사람의 체질이나 체형, 부족한 부분을 캐치해서 처방을 하듯이 하나님께서 우리 각 사람에 따라서 때로는 시련을 주시고, 때로는 은혜를 주십니다.

우리가 교만할 때 낮추시고, 우리가 겸손할 때 일으켜 주십니다. 성령을 주실 때도 각 사람에게 임하고, 은사를 주실 때도 어떻게 그렇게 다른 은사를 주시는 지 모릅니다. 사람을 창조하실 때도 별의 별 사람이 다 있습니다. 어느 한사람 똑같지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양한 방법으로 터치해주시고 인도해 주십니다. 우리를 위로하시는 하나님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안아주시고, 위로해주십니다. 그러한 위로가 각 사람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삶 가운데 하나님이 하셨다는 고백을 할 때가 있습니까?? 치유하심, 회복시키심, 성공과 합격 뿐만 아니라 시련과 아픔을 포함한 모든 일에 하나님이 하셨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있습니까?? 이러한 것을 믿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전인격적으로 믿지 않는 것과도 같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일을 통해 우리를 이끄시고 인도하십니다. 때로는 하기 싫은 일을 통해서도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지금 혹시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불평 불만 갖고 계신 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셨다면 그 일에 불평 불만을 품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오직 순종하는 일밖에 없습니다.

우리 주변을 보면, 어떤 한 가지 일이 주어졌을 때 그 일 그대로 하는 분들이 있고, 자율성과 창의성을 가지고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를 가지고, 부단히 은사와 달란트를 계발하고, 고민과 연구를 통해 일을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문제를 복잡하게 풀어내는 사람은 아마추어지만 그것을 단순화 시켜서 명확히 해결하는 사람은 프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일에 자율성과 창의성을 가지고 프로가 되고자 하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충성되이 여겨 직분을 주시고, 여러 가지 사역을 맡겨주시고, 우리 가족을 주셨습니다. 혹시 소홀히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혹시 땅에 주어진 달란트를 묻어두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누가 시켜서 하기보다도 자율성과 창의성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맡겨두었는데 그것을 자율성을 가지고 창의성을 가지고 열 달란트로, 네 달란트로 만드는 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입니다.

어떤 어머니는 자녀를 맡기기에 급급하신 분들이 있는 반면에 어떤 어머니는 자신에게 주신 자녀를 양육하기 위해 부단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자기 일인데도 남에게 떠넘기는 분들이 있는 반면에 자신의 맡은 일을 더 발전시키고 창의적으로 추진해나가는 것을 봅니다. 어떤 분들은 하나님이 달란트를 주셨는데 그 달란트를 땅에 몰래 묻어 둔 반면에 어떤 분들은 그 달란트를 활용해서 또 다른 달란트를 발견하는 것을 봅니다.

여러분은 전자 입니까? 후자입니까? 후자가 되셔서 착하고 충성된 종아칭찬 받는 성도님들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일들과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순종하며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하나님은 시련을 줄지라도 부수지는 아니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말씀 28절 말씀에 보면 하나님이 터치하시고, 시련을 줄지라도 부수지는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시련을 이길 힘을 주시거나 피할 길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은혜입니다.

이리 가도 두들겨 맞고, 저리 가도 두들겨 맞고, 샌드백처럼 당하는 인생이 있습니다. 어떻게 된 게 하는 일마다 안됩니다. 그럴지라도 하나님은 아예 부숴뜨리지는 않으신다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겉에 있는 겨리들을 제하시고, 온전히 알곡만을 남겨두십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얼마나 눈돌릴 것들이 많습니까?! 세상 유행에, 재미에, 오락에, 즐길것들이 너무나 많은데 그것들을 하나 하나 제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온전히 하나님만 바라보게 하십니다.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도록 우리를 훈련시키십니다. 우상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도 모르게 우상을 만들고, 우상에 좌지우지되고, 세상에 두들겨 맞더라도, 처참하게 밟히고 무시당하더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완전히 버리시지 않습니다. 돌아온 탕자를 기다리는 아버지처럼 세상에 부수어진 우리를 기다리고 먼 거리를 달려와 우리를 안아 주십니다.

* 한 집사님 남편이 쓰러져서 병원에 가보니까 이제 알콜을 섭취하면 안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집사님은 남편이 몇 년 전에 담배도 끊었는데 이제는 술도 끊게 하셨다고 이야기 합니다. 살기 위해서는 이제 담배든 술이든 다 끊어야 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살려면 부질없는 세상의 것들은 끊어버려야 합니다. 이제 그 남편은 예수 믿는 일만 남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안좋은 것들은, 곁가지들은 쳐버리시고, 열매맺을 수 있도록 알곡만 남겨두신 것입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 분들을 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두들겨 맞고 돌아오는 것입니다. 시간이 오래 걸린 분들도 있고, 짧게 걸린 분들도 있지만, 하나님께 두들겨 맞고 쓰임받는 분들을 보게 됩니다. 이게 하나님의 지혜요 모략입니다.

하나님은 딱 살만큼만 우리에게 주십니다. 그에 더한 것은 욕심이요, 교만이 되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두들겨 맞는 분들이 계시다면 끝까지 포기하지 마시고, 다시 세워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희망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치실 때가 누구나 있습니다. 그 때 인내하는 자는 좋은 열매를 맺을 것이고, 그렇지 못한 자는 잎만 무성할 뿐입니다.

누가복음 815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든지 하나님 말씀 붙들고 인내하셔서 좋은 열매를 맺는 귀한 성도님들이 다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