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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들

시편 51편 17절 설교(상한 심령을 드리라)

상한 심령을 드리라

시편 5117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1. 다윗과 나단 이야기 - 사무엘하 1213절 말씀 // 시편 51편 말씀

오늘 시편 51편을 보면 표제어가 분명히 있습니다.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한 후 선지자 나단이 그에게 왔을 때]

표준새번역에는 이렇게 표제어가 나와 있습니다.

[지휘자를 따라 부르는 다윗의 노래, 다윗이 밧세바와 정을 통한 뒤에, 예언자 나단이 그를 찾아왔을 때에 뉘우치고 지은 시]

이 시편 51편 전체의 내용을 읽어보면 표준새번역에 나온 표제어가 더 정확하게 번역되어 있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선지자 나단이 저에게 온 때에... 지은 시가 아니라, 예언자 나단이 다윗을 찾아왔을 때에 뉘우치고 지은 시라는 말입니다.

이 시편 51편 말씀은 정말 은혜로운 말씀이 참 많이 있습니다.

1절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주소서..

10절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11절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12절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너무 좋은 말씀들입니다. 하지만, 저는 시편 51편을 읽는데 17절 말씀이 가슴에 참 와닿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아멘.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 예배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다윗이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었을까? 생각해보면, 답은 간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 마음에 합한 인생을 살 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돈을 원하십니까? 하나님이 재물을 원하십니까? 하나님이 제사를 원하십니까?

다윗은 16절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께서는 제사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그럼 도대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 말씀에 그 답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고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입니다.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배드릴 때 상한 심령, 찢겨진 마음으로 드린 적이 있습니까?!

쉬운 성경에는 상한 심령이 찢겨진 심령, 찢겨지고 짓밟힌 마음이라고 나옵니다.

나의 마음이 찢어지고, 누군가에게 짓밟혀서 억눌린 그 마음 그대로 하나님께 드리라는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죄를 여호와 하나님께 아뢰었습니다. 그리고 밧세바와의 사이에 나은 아들도 태어난 지 얼마되지도 않아 일주일동안 시름시름 앓다가 죽는 슬픈 일도 겪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는 우리의 상한 심령을 드리는 것입니다. 말씀 앞에 회개하고, 통회하고, 자복하고, 있는 모습 그대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학생시절 정말 좋아하는 찬양이 있었습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같이 불러 보겠습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X3) 오시오~ 하나님은 당신이 있는 모습 그대로 있는 모습 그대로 나오길 원하십니다.

우리가 예배할 때 상한 심령을 드립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돈이나 형식적인 예배가 아닙니다. 우리의 심령을 드려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드려야 합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아무리 남루하고 보잘 것 없어도 천하에 하나밖에 없는 우리 모습 그대로 진솔하게 하나님 앞에 나아오기를 바라십니다. 

2. 예수님께서 마태를 부르실 때의 이야기 - 911-13절 말씀

예수님도 이와 비슷한 말씀을 복음서에서 하신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9장에 보면 마태를 부르시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세리요 죄인인 마태와 함께 들어가 먹고 마시는 것을 보고 마태복음 911절에서 바리새인들이 묻습니다.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우리 주님이 찾고 부르러 온 사람은 의인이 아니라 자신이 하나님 앞에 죄인이라고 자복하고 회개하는 심령임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의인은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릅니다. 따라서 회개도 하지 않습니다. 나는 도덕적으로도 옳은 사람이요. 인격적으로도 아무런 흠이 없는 사람인데 왜 내가 죄인입니까? 하고 하나님께 따지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바로 예수님이 말씀하신 의인과도 같은 사람입니다.

기도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가복음 18장에 보면,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에 관한 비유가 나옵니다. 189절부터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누가 의인이고 누가 죄인입니까?

예배를 드리는 저와 여러분의 심령이 바리새인의 심령입니까? 세리의 심령입니까?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성경을 읽다보면, 자신의 죄인됨을 얼마나 알고 고백하느냐에 따라 하나님은 그 사람을 쓰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죄인중의 괴수라고 자신을 고백합니다. 죄인 중에서도 죄인이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사도 바울을 들어 쓰십니다.

3. 세리장 삭개오 이야기 - 누가복음 1910절 말씀

복음서 말씀 중에서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성경이야기가 있습니다. 누가복음 19장에 나온 예수님과 삭개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삭개오는 세리장이고 부자였다고 나옵니다. 그리고 키가 작았습니다. 삭개오는 키가 작아서 여리고로 들어 지나가시는 예수님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달려가 보기 위하여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갑니다. 아마 예수님을 보려고 엄청 다급하게 올라갔을 것입니다

삭개오가 오로지 예수님을 보기 위한 열심과 열정으로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습니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너라 내가 오늘 너의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이 말씀을 듣는 데 얼마나 은혜스러운 지 모릅니다. 왜 은혜스러운지 아십니까? 예수님이 삭개오를 알고 계셔서 그의 이름을 불러 주셨다는 사실때문입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몰라서 보고자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갔지만, 예수님은 그 삭개오를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그의 이름을 부르신 것입니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너라!

예수님은 삭개오를 알고 불러주신 것처럼 죄인된 우리들을 이 시간에도 불러주십니다. 아무개야~ 속히 내려오너라

예수님의 부름을 받은 삭개오는 예수님을 모시는 축복을 누립니다.

누가복음 199-10절에 이렇게 나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우리 주님이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죄인을 찾아 구원하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우리의 잘남이 아니요, 우리의 상한 심령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돈과 재물과 형식적인 예배가 아니요, 우리의 찢겨진 마음, 통회하는 심령, 마음을 다해 드리는 예배입니다.

우리 예수님도 이 땅에 오신 것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셨고,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아직도 자신이 의인이라 여기고, 신앙생활 잘한다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를 드리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습니까? 마음을 찢으십시오. 상한 심령을 드리십시오. 사람들 눈 의식해서 살지 마시고,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며 사십시오.

그 때에 다윗처럼 하나님께서 긍휼한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솔로몬을 밧세바를 통해 허락해주시고, 남은 인생을 영화롭게 해주신 것입니다.

예전에 어떤 집사님이 평소에 잘 안오시던 수요예배에 나오신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농담 삼아 물었습니다. 아니~ 집사님 무슨 일이세요? 수요예배를 다 나오시고, 했더니.. 그 집사님이 남편 꼴 보기 싫어서 수요예배 드리러 나왔다는 이야기를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너무 놀랬습니다.

아니 교회 오려면 예수님 보기 위해 와야지 남편 꼴보기 싫다고 교회나오면 되나? 그런데 오늘 말씀을 읽으면서 그 집사님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는데 얼마나 마음이 상했으면 그랬을까 생각이 들어서 참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혹시 이 시간 누구 꼴 보기 싫어서 나오신 분이 계십니까?! 그래도 하나님은 여러분의 상한 심령을 위로해주시고, 받아주십니다. 죄인된 저와 여러분의 이름을 불러주십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주님의 부르심에 속히 응답해서 주님 앞으로 달려 내려가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