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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들

오직 여호와의 뜻이(잠언 19장)

 오직 여호와의 뜻이 완전히 서리라

잠언 1915~ 29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도 두렵지만 설교 말씀을 준비하면서 참으로 두려운 것이 있습니다. 특히 잠언 말씀이 그렇습니다. 설교 말씀 자체가 주는 은혜가 큰데 그것은 설교로 작게 만드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저의 작은 그릇으로 담기에는 부족할 때가 참 많은 것 같습니다.

이러한 것을 알기에 특별히 부탁을 드릴 것은 이 하나님의 말씀 자체에서 먼저 은혜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은혜 받은 말씀은 밑줄도 긋고 다시 한번 읽어보십시오.

말씀은 밥과 같아서 여러 번 곱씹어야지 단 맛이 나옵니다.

 

오늘 말씀은 여호와의 뜻이 완전히 서리라입니다.

먼저 17절 말씀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

이 말씀은 예수님의 말씀과도 일치하는 것을 볼 수 있다.

- 6:4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것, 불쌍히 여겨주시는 것을 하나님 아버지께서 갚아주신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특별히 그 방법을 은밀하게하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바리새인들의 외식을 경고 하면서 회당 높은 자리에서 사람들 앞에 높임받기 위해 선행을 베풀고, 경건한 척 하고 하는 것을 경계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오른손이 한 일을 왼 손이 모를 정도로 은밀하게 구제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했을 때에 하나님께서 갚아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십시오. 그런데 그 가난한 자를 보면, 다 가난한 것이 아닙니다.

젊고 힘이 있는데도 가난하게 사는 것은 게으른 것입니다. 일하기 싫어서 그런 것입니다.

가난한 자와 게으른 자를 구별하십시오. 교회에 있다보면, 많은 분들을 만나게 됩니다.

예전에 전도사 시절에 만난 분은, 자신의 가난을 증명하기 위해 스토리텔링을 하시면서 사진까지 보여주며 자신의 가난을 이야기 합니다. 30분을 장황하게 가족스토리를 이야기하시고 나서 어려워서 그러는데 도와달라는 이야기를 하는 거에요.

얼마나 자주 그 이야기를 하셨는 지 이야기에 막힘이 없었습니다. 한 편의 인생극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짐작컨대 그 분은 교회마다 돌아다니면서 이런 일을 하시는 분이구나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또 이런 분들이 교회에 가서 도움을 구했는데 못 받으면, 그 교회를 비난하고, 안좋은 이야기를 하고 다닙니다.

가난하고 어려운 분들 도울 때도 지혜롭게 도와야 합니다. 예수님이 알려주신 방법대로 은밀하게 도와주십시오. 그 때에 예수님 말씀처럼 하나님 아버지께서 갚아주십니다.

 

이어서 1921절에 보면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이 완전히 서리라

성경을 읽어 보면,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이야기를 기록해놓은 것을 보게 됩니다.

아브라함-이삭- 야곱, 이스라엘의 출애굽 사건도 그렇고, 다윗왕을 세운 것도 그렇습니다.

사울왕이 다윗을 죽이려고 얼마나 많은 계획을 세웠습니까?? 하지만 그 때 마다 번번히 다윗은 도망칠 수 있었습니다. 결국에는 다윗이 왕이 되는데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이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복음서를 읽어도 얼마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 제사장들과 사두개인들이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리려고 합니까? 수많은 시험과 올무를 예수님께 던집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모든 것들을 하나님의 지혜로 물리치고,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게 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초대교회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대인들의 핍박과 로마황제의 엄청난 핍박을 받을 때가 있었습니다. 예수 믿는다고 하면, 돌에 맞아죽고, 사자의 밥이 되고, 불태워죽이고, 이루 말할 수 없이 잔인한 방법으로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믿음과 진리를 져버리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짓밟고, 쓰러뜨리고, 억압해도 초대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그 믿음을 져버리지 않았습니다. 돌이켜보면, 오직 여호와의 뜻이 완전히 서는 것을 보게 됩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뜻에 나 자신을 맞추고 교정해 나가는 것입니다. 나의 뜻에 하나님의 이름을 끌어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내 뜻대로 해주세요가 아니라, 제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겠습니다 하는 고백이 믿음입니다.

잠언은 그 이야기를 끊임없이 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에 맞춰 살아라 하는 뜻입니다. 여호와의 뜻만이 완전히 서는 것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 23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사람으로 생명에 이르게 하는 것이라 경외하는 자는 족하게 지내고 재앙을 만나지 아니하느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십시오.

사실 삶 속에 어려운 시련이 닥친 것은 하나님의 징계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징계하시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정신차리라는 말입니다. 우리 사랑하는 자녀가 무언가 잘못하면 그냥 무관심하며 있을 수 있습니까?!

자녀가 돈을 훔치고 도적질하면, ~ 그래 잘했다! 다음에도 잘 부탁한다~ 하는 부모가 있습니까?! “너 그러면 안돼!! 다시는 그러면 안된다!!” 깨우쳐 줄 것입니다.

사랑하기에 관심이 있기에 그렇게 징계도 하고 싫은 소리도 하는 것입니다.

사실 내 사람 아니다 싶으면 하든 말든 상관도 하지 않습니다. 자기 인생 자기가 사는 것이지 하며 나몰라라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랑하기에 더욱 마음 아파하면서도 징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징계를 받고 계신 분이 있다면, 용서를 구하고, 하나님의 뜻에 맞춰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자녀로 부르셨기에 오늘도 탄식하는 마음으로 우리에게 말씀을 주십니다! 그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응답하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살면서 가난 때문에 피눈물흘리고, 부요한 것 때문에 교만해질 때가 있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너무 가난하게도 너무 부하게도 마셔서 늘 하나님 바라보며 감사하는 인생되게 하옵소서. 삶에 시련이 닥쳐올 때 누군가를 원망할 때가 있습니다. 나 자신의 잘못과 책임을 겸허히 인정하며, 철저히 회개해서 다시 회복되는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우리가 미련해서 우리 자신의 영혼을 사랑하지 못하고, 오히려 죽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과 계명과 율례를 잘 지키고, 예수님 안에서 축복된 인생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