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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들

교만과 겸손(잠언 18장)

교만과 겸손

잠언 181~ 12

잠언 181절 말씀

무리에게서 스스로 나뉘는 자는 자기 소욕을 따르는 자라 온갖 참 지혜를 배척하느니라

이 말씀을 읽는데 사사기에 끝에 나오는 말씀이 불현 듯 생각이 났습니다.

사사기 2125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자기 소욕을 따라사는 사람, 각각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것이 절묘하게 겹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어제도 악한 것과 의로운 것을 설명하면서 악한 것은 하나님과 나와의 거리가 먼 것이고, 의로운 것은 하나님과 나와의 거리가 가까운 것이라고 이야기했는데요.

목회하면서 보면, 교회 안에 이러한 사람이 정말 많습니다. 믿음 생활하면서 예수 믿는 다고 하면서 자기 소견대로 살고, 자기 소욕을 쫓아 사는 사람이 정말 많이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가 믿는 하나님을 쫓아 사는 거에요.

이러한 분들이 얼마나 많은 지 모릅니다. 한번은 어떤 집사님이 주일을 안나오셔서 전화를 했습니다. ‘집사님! 지난 주일에 교회 못나오셨어요?’‘~ ~ 목사님! 제가 먹고사는 일이 바쁘다보니까 못나왔습니다! 저도 먹고 살아야지 교회 나올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번 주일에는 꼭 나가겠습니다.’ 그 집사님이 그 주일에 교회 나왔을까요? 안나왔을까요?

물론 먹고 사는 일이 중요합니다. 그렇다고 주일에 일 한번 안한다고 못먹고 살까요?

주일에 하루 종일도 아니고, 예배 드리는 그 몇 시간 일 못한다고 못 먹고 살까요?

그 집사님은 주일이라는 의미조차도 잘 모르시는 것 같습니다. 주일은 주님이 주인이신 날입니다. 나의 날이 아니고, 주님의 날입니다. 그래서 일요일이 아니고, 주일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자기 소욕을 쫓아 사는 삶, 자기 소견을 쫓아 사는 삶, 다시 말해 자기 좋을 대로 믿고 사는 삶입니다. 미안한 말이지만, 적당히 예수 믿는 척하는 것입니다.

술 담배도 누가 그래요. 목사님. 술먹지 말고, 담배피우지 말라는 말이 성경에 있습니까?

없습니다. 아니, 신부님들도 술먹고 다 하시는데 왜 그런 일로 교회가 성도들을 정죄하고 힘들게 합니까?! 사업하려면 술도 마시고 할 수 밖에 없는 사회 구조 속에서 어떻게 술을 안마실 수 있습니까?! 그러니 적당히 절제하면서 술 마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 그렇죠. 술이 때로는 친해지는데 도움이 되기도 하고, 술이 때로는 엄청난 슬픔을 한 순간 잊게 할 수도 있습니다. 담배 한 모금이 불안하고 복잡한 감정을 평안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믿음을 지키는데는 백해무익 합니다. 우선은 덕이 안됩니다. 세상 사람과 구별되지 않습니다. 술과 담배가 어느새 우리를 좌지 우지 하게 됩니다.

믿음은 불편한 것입니다. 자기 소욕을 따라사는 자는 편합니다.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성경은 얼마나 계명이 많은지, 하지 말라! 하지 말라!가 수없이 나옵니다.

자기 소욕을 따라사는 자는 고삐 풀린 망아지와 같은 인생입니다. 믿음은 그 고삐와도 같습니다. 나를 멈추고, 하나님에게 그 방향과 갈 길을 맡기는 것입니다.

잠언 말씀이 고삐와도 같은 말씀입니다. 나를 다스려주고, 갈 바를 알려주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게 만듭니다. 술과 담배는 사실 하나님께 더 멀어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신앙생활하는 것이 편하십니까?! 하나님 믿는 것이 편하십니까? 처음에는 편할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하나님 처음 대할 때 얼마나 기쁨이 넘치고, 벅찬 은혜와 감동이 있는 지 모릅니다. 하지만 어느정도 신앙생활을 하고, 사회생활하고, 믿음의 성숙을 구하다보면, 믿음을 지키는 것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 불편합니다. 하나님이 계시기에 내 맘대로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기 소욕을 따라 살 수 없기 때문에 불편한 것입니다. 믿음 생활하는게 정말 힘들고, 십자가와 같고, 불편하시다면, 지금 그래도 신실하게 믿음 생활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런 거침이 없고, 한없이 편하고, 아무런 감흥이 없다면, 자신의 믿음이 정체 상태이거나 믿음의 심장이 멈춰버린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오늘 말씀대로 온갖 참 지혜를 배척하는 상태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10절에서 12절까지 보면 참으로 귀한 말씀이 나옵니다.

여호와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라 의인은 그리로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느니라 부자의 재물은 그의 견고한 성이라 그가 높은 성벽같이 여기느니라 //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

이 세 절 말씀은 반의와 종합을 절묘하게 포함해서 나와 있습니다.

10절에서는 여호와께 피하는 의인이 나옵니다.

11절에서는 자신의 재물로 성을 쌓고 성벽을 쌓는 부자가 나옵니다.

그리고 12절에서 결론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

누가 교만한 사람입니까? 자신의 재물로 성을 쌓고 성벽을 만들어서 사는 사람입니다.

누가 겸손한 사람입니까? 여호와 하나님께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는 사람입니다.

통장의 잔고가 충만하고, 집이 강남에 몇 채 있어서 든든 하십니까?! 그런데 그 재물 때문에 가족이 깨어지고, 믿음이 사라지고, 친구가 떠나가고 홀로 외롭게 지내게 된다면, 그래도 그 재물을 최고로 여기시겠습니까?!

반대로 무슨 일이 생기면 여호와의 이름을 구하며 하나님께 달려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잠언 305절에 하나님의 말씀은 다 순전하며 하나님은 그를 의지하는 자의 방패시니라

하나님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의 방패가 되어 주십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겸손할 수 밖에 없습니다. 자기를 만드시고, 지금까지 인도해주신 분이 하나님인데 누구를 의지 하겠습니다. 돈도 하나님이 주신것이요, 자녀들도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욥이 한 말을 기억하십시오. 그 엄청난 재앙을 만나서 재산 다 잃고, 자녀들도 10명 다 잃고, 나서 한 고백이 이렇습니다.

주신 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

모든 것이 여호와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것을 이솝우화처럼 재미있게 이야기 한 것이 요나서입니다. 요나서 4장에 보면 요나가 성 동편에 앉아 있는데 해가 쨍쨍 내리쬐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나를 위해 박넝쿨을 준비해서 그늘을 만들어 주자, 요나가 심히 기뻐했다고 나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벌레를 준비하사 박넝쿨을 갉아먹게 만들자, 요나가 48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가로되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때로는 박넝쿨을 주실 때도 있고, 벌레로 그 박넝쿨을 갉아 먹게 하실 때도 있습니다. 그 이유는 분명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알고, 겸손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잠언 1812절 말씀을 묵상하는데요.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

교만과 겸손은 찰나로 바뀌게 되는 것을 깨닫습니다.

우리가 성전에서는 하나님을 찬양한다고 하면서도 뒤돌아서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살 때가 너무 많습니다.

혹시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박넝쿨을 주셔서 쉼을 얻고, 평안히 먹고 살게 해주신다면, 박넝쿨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알고 그 분께로 달려가십시오.

혹시 하나님께서 벌레로 박넝쿨을 갉아먹게 하셔서 괴로운 가운데 계신 분이 있다면, 자신의 교만을 깨닫고, 다시금 하나님을 의지하며, 겸손한 인생을 사십시오.

우리의 마음의 교만과 겸손은 매 순간 순간 우리의 인생에 순간 순간 바뀝니다.

우리 주님처럼 겸손한 인생을 사십시다.

빌립보서 23-5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