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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들

엘리바스의 경험(욥기 5장)

엘리바스의 경험

욥기 51~ 27

 

요즘은 이미지 마케팅 시대라고 합니다. 그래서 큰 회사의 디자인이나 로고는 엄청난 부가가치가 따라다닙니다. 스타벅스, 맥도날드, 삼성, 애플 모두 이미지와 디자인 제작할 때 엄청난 비용을 들여서 제작을 했습니다. 그 이미지가 곧 회사를 대표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꼭 회사와 기업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개인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속에서 배신의 대명사는 누구일까요? (가룟 유다)

축복의 근원이요 번성의 축복 하면 누구일까요? (아브라함)

이처럼 고난의 대명사가 있습니다. 고난하면 떠올리는 사람이죠. 바로 우리가 한 주간 동안 함께 말씀을 나눌 욥입니다.

욥의 삶은 한마디로 인간극장입니다.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인생이고, 고난과 비극은 다 경험해본 사람입니다. 차라리 처음부터 못살았으면 모르겠는데..

욥은 세상에서 제일 잘 나가는 사람이었습니다. 모든 부와 자녀들, 명예와 덕은 다 가지고 있었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이 정말 좋았습니다.

그래서 욥기 11절에서 욥을 이렇게 말합니다.

그 사람은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얼마나 인격이 좋았는지 악에서 떠난 자라고 까지 말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도 이 악에서 떠나기는 어렵습니다. 털어서 먼지 안나오는 사람 없다는데 욥은 털어서 먼지가 안나오는 사람이었습니다.

할렐루야! 욥처럼 털어서 먼지 안나오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욥기를 읽을 때 우리는 내용도 중요하지만, 숲과 나무를 보듯이, 전체적인 숲을 보는 것도 중요합니다

욥기는 총 42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크게 세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2장은 서론,

3장부터 426절까지는 세 친구들(엘리바스, 빌닷, 소발)과의 대화와 하나님의 개입, 그리고 마지막으로 42:7-17절까지는 결론입니다. 욥기는 시가서 중에 하나입니다. 시가서의 특징이 개인적인 삶과 믿음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우리 각자의 삶 속에서 하나님에 대한 것들을 솔직 담백하게 기록해 놓은 것입니다.

욥의 화두는 왜 하나님은 선하고 믿음이 신실한 자들에게도 고난을 주시는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욥과 같은 사람에게도 고난이 임하는가? 왜 악한 자들은 그렇게 형통하며 오히려 잘 사는가?

인간으로서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왜 예수님 잘 믿는데 고통받아야 하고, 실패해야 하고, 사기당해야 하고, 질병으로 시험에 들어야 하는가?

이해되십니까? 예수님 믿으면 다 잘되어야 하는거 아닙니까?! 사실 시험당해보지 않는 사람이면 모릅니다. 병 안걸려보면 모릅니다. 실패해보지 않으면 모릅니다.

이러한 물음에 대한 인간적인 답은 엘리바스가 오늘 말씀에서 분명하게 말해줍니다.

모든 것이인과응보입니다. 원인이 있기에 결과가 따라 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이론이 아닙니다.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것입니다.

욥의 세 친구가 있습니다. 엘리바스, 빌닷, 소발입니다. 사실 욥이 악창에 걸려서 이 세사람이 욥을 조문하고 위로하려고 찾아옵니다. 욥의 모습을 보고 얼마나 비통했는지 옷을 찢고 소리 질러 웁니다. 그리고 욥과 함께 땅에 앉아 칠일 칠야를 침묵으로 같이 있습니다.

정말 좋은 친구들입니다. 욥의 세 친구들을 안좋게만 생각하기 쉬운데요.

인간적으로 보면 정말 욥을 생각하는 친구들입니다.

여러분 친구 중에 한 명이 이러한 상황이라면, 일주일동안 침묵으로 같이 있어줄 수 있습니까? 가족이며 자녀들 때문에라도 한나절 있다가 집에 가고 말지.

그런데도 그 세 친구는 일주일을 밤낮으로 함께 해주었습니다. 남들 다 떠나고 아내도 떠난 그 비참한 상황에서 말입니다. 같이 있어봐야 득 볼게 없습니다.

 그 중에 가장 연장자고 나이가 많고 지혜롭다는 사람이 엘리바스입니다. 엘리바스는요. 정말 지혜롭고 얼마나 믿음이 좋은지 모릅니다. 정말 주옥같은 말입니다.

인생은 고난을 위하여 났나니 불티가 위로 날음 같으니라, 나 같으면 하나님께 구하고 내 일을 하나님께 의탁하리라, 하나님은 크고 측량할 수 없는 일을 행하시며 기이한 일을 셀 수 없이 행하시나니... 하나님은 곤비한 자를 그들의 입의 칼에서, 강한 자의 손에서 면하게 하시나니, 그러므로 가난한 자가 소망이 있고 불의가 스스로 입을 막느니라,

하나님은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시며, 상하게 하시다가 그 손으로 고치시나니..

하나님께 구하고, 하나님께 의탁하라는 말씀, 하나님이 강한 자의 손에서 면하게 하신다는 소망의 말씀, 얼마나 맞는 말입니까?!

하지만 엘리바스의 모든 말 속에는 한 가지 논리가 있습니다. <47-8절 말씀>

생각하여 보라 죄 없이 망한 자가 누구인가 정직한 자의 끊어짐이 어디 있는가 // 내가 보건대 악을 밭 갈고 독을 뿌리는 자는 그대로 거두나니..”

네가 당하는 고난과 질병이 악을 밭갈고 독을 뿌렸기 때문에 거두게 된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이 어디서 나온 이야기입니까? 엘리바스의 경험에서 나온 이야기입니다.

사도 바울도 갈라디아서에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스스로를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심은 대로 거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요, 오래 믿음생활하는 사람일수록 조심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말씀과 하나님 뜻보다도 우리의 경험과 우리의 생각을 의지할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엘리바스는 527절에서 마지막에 이렇게 말합니다.

볼찌어다 우리의 연구한 바가 이 같으니 너는 듣고 네게 유익된 줄 알찌니라.”

인생을 돌아보니까 경험 속에서 깊이 들여다보니까 하나님의 경륜이 이와 같더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누구의 생각입니까? 하나님의 생각입니까? 엘리바스의 생각입니까?

 하나님의 역사는 인간의 경험을 뛰어넘습니다.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합니다.

 요한복음 1장에 보면 빌립이 나다나엘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모세가 율법에서 기록하고 여러 선지자들이 기록한 그 사람을 내가 만났는데 그 사람은 나사렛 예수란 분이야~’

아니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어? 말도 안돼!!’

이러한 나다나엘의 경험 속에는 나사렛에서는 선한 것이 절대로 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나사렛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나다나엘이 이렇게 고백합니다.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나다나엘이 예수님을 만나니까 믿음의 편견이 깨집니다.

우리도 이 아침에 주의 말씀 듣고 우리의 편견이 깨어지길 원합니다.

우리의 얄팍한 지식과 경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의지하길 원합니다.

아브라함이 복의 근원이되고 축복이 될 수 있었던 비결이 있습니다.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서 새로운 곳을 갈 때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갔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사하고 집을 구할 때 우리의 경험과 지식을 의지합니다. 교통이 좋은지 안좋은지, 역세권인지, 나중에 집값이 오를 것인지, 학군은 어떤지, 몇 년도에 지어졌는지 우리의 경험과 지식을 의지해서 집을 구합니다. 그 전에 우리가 해야할 게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구하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를 살아갈 때 말씀 안에서 우리의 편견이 깨지길 소망합니다. 우리의 경험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구하시길 바랍니다.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나사렛에서 선한 것이 날 수 없습니다. 내 스스로는 할 수 없습니다. 내 능력으로는 안됩니다. 하지만 예수님이라면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고난가운데 절망하고 계신 분이 있다면, 어둠의 터널 속에 거하신 분이 있다면, 거기에는 분명한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아갈 때 아브라함처럼 복의 근원이 되는 하나님의 역사가 저와 여러분의 삶 가운데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