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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들

숨을 거두신 예수님(마태복음 27장)

숨을 거두신 예수님

마태복음 2745~ 56

이번 주간이 고난주간입니다. 마태복음에 나온 십자가 사건과 이야기를 가지고 한 주간동안 주님의 사랑을 나누기를 소망합니다.

오늘은 예수님이 죽으신 성금요일입니다. 오늘 말씀도 예수님의 죽음에 관해서 나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힌 후 제육시(낮열두시부터~ 오후세시까지)제구시까지 온 땅에 어두움이 임했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개기일식현상인데.. 어떻게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힌 그 시간에 딱맞춰서 3시간 동안 일어날 수 있을까요?? 부분일식은 일년에 2~3, 개기일식은 몇십년 만에 한번씩 우리나라에 있을 법한 일입니다.

예수님이 못박히신 그 때에 열두시부터 오후3시까지 온 땅에 어두움이 임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죽음 이후에 성소에 휘장이 둘로 나눠지고, 땅이 진동하는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이러한 현상 가운데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오늘 마태복음에서는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복음서 전체를 보면, 십자가 위에서 하신 말씀은 총 일곱 구절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하신 말씀이라고 해서 가상칠언이라고 말합니다.

그 중에 이 마태복음의 말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이 말씀은 사실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기 이전에 다윗이 하나님께 한 고백이었습니다. 시편 221절 말씀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옵시며 내 신음하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다윗이 누구입니까?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입니다. 지금 이스라엘 국기에 그려져 있는 별은 다윗의 별입니다. 그 정도로 위대한 왕 다윗이 했던 그 고백을, 유대인의 왕으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의 입술을 통해서 다시 고백되어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다윗의 후손으로 오셨습니다. 마태복음 1장에 보면 예수님의 족보가 나옵니다. 그 기준이 아브라함과 다윗입니다. 그 후손으로 예수님이 오셨다는 것을 체계적으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야말로 다윗의 정통성 있는 메시아, 그리스도라는 것을 확증하는 것입니다. 그 예수님이 다윗의 시편 한 절을 십자가 상에서 그대로 고백했습니다.

죽음을 앞에 두고, 하나님을 원망하는 듯한 이 말은 그냥 단순히 원망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다윗의 고백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시편 22편 내용과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은 너무도 많이 닮았습니다.

221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227~8절 나를 보는 자는 다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이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 저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걸, 저를 기뻐하시니 건지실걸 하나이다.

2217~18절 내가 내 모든 뼈를 셀 수 있나이다 저희가 나를 주목하여 보고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

이 말씀들은 군병들의 옷을 제비뽑는 것과, 대제사장들과 지나가는 자들의 조롱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리고 1절은 십자가 상에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22편의 결말입니다. 30~31절에 이렇게 나옵니다.

후손이 그를 봉사할 것이요 대대에 주를 전할 것이며 와서 그 공의를 장차 날 백성에게 전함이여 주께서 이를 행하셨다 할 것이로다

성경 표준새번역은 내 자손이 주님을 섬기고 후세의 자손도 주님이 누구신지 들어 알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세대도 주님께서 하실 일을 말하면서 주님께서 그의 백성을 구원하셨다 하고 선포할 것이다.”

다음 세대에 주께서 그의 백성을 구원하셨다고 선포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성경에서 맨 처음 1절은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11절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창조주 하나님에 관해서 선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 한마디는 사실 시편221절은 전체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단순히 원망이 아니라 다음 세대에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세대도 예수님이 하신 일을 선포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예수님의 죽음 이후에 놀라운 자연현상이 나타납니다. 성소에 휘장이 둘로 나눠지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백부장과 예수님을 죽이고 지키던 자들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다고 두려워 떨며 고백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 대적자들까지도 하나님의 아들이었다고 고백하게 만든 것입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에서 체포되기 전에 세 번이나 죽으심과 부활에 관해서 제자들에게 증거했습니다. 그러한 예수님이 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며 하나님을 원망했겠습니까? 우리는 이 한마디를 통해 시편22편 전체를 고백하고 있는 예수님의 말씀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인생 가운데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순한 말 한마디는 이미 수많은 상황과 환경과 여러 가지 심경을 담고 있습니다.

가끔에 그런 경험을 하게 됩니다. 평소에는 웃으며 넘길 수 있는 일인데도, 막 화를 내고, 짜증을 낼 때가 있습니다. 그 때는 우리의 마음상태와 몸이 작은 것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입니다. 요즘 고난주간이라 새벽에 일찍 나오고, 직장에서 일하고 피곤에 지쳐서 집에 들어갔는데 남편이 집에 오자마자 얼른 밥차려줘~ 배고파~”하면, 어떻게 되요?

피곤하고 지친 모든 감정이 일시에 폭발하게 됩니다. “너가 차려 먹어~ 손이 없냐? 발이 없냐? 내가 무슨 이 집 하인이야? 종이야? 아주 지긋지긋하다~”

참고로 이 말은 어렸을 때부터 저희 어머님이 자주 하신 말씀입니다.

말 한마디 속에 복잡한 심경과 상황이 총체적으로 들어 있다는 말입니다.

말 너머의 마음까지 읽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표면적인 것에 휘둘리기 보다 내면적인 것까지 볼 줄 아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저는 성경을 읽을 때 이미지로 떠올리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럼 더 기억에 잘 남습니다. 쉽게 말하면, 글보다 그림으로 상황을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이라면 어땠을까? 예수님의 심경이 어땠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감동을 주시는 거에요~ 참은혜받습니다. 그러한 감동을 여러분도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 곁에는 늘 동행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제자들도 있었지만, 사실 예수님의 십자가까지 함께 한 사람들은 여인들이었습니다. 55~56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예수를 섬기며 갈릴리에서부터 좇아 온 많은 여자가 거기 있어 멀리서 바라보고 있으니 그 중에 막달라 마리아와 또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도 있더라

예수님 곁에는 늘 자신을 섬겨주던 많은 여인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가족과 형제들을 보고, 누가 내 어머니요, 형제냐?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가 내 어머니요 형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지역에 따라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갈릴리 사역과 후기 유대사역입니다. 대부분의 사역은 갈릴리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가나, 가버나움, 갈릴리 호수 가이사랴 빌립보, 그 때부터 예수님을 따르던 여인들이 예수님이 죽기까지 좇아 온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은 다 도망치고 없는데 여인들은 끝까지 곁에 남았습니다. 힘은 남자들이 센 거 같지만, 뚝심은 여자들이 더 센 것 같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믿음의 여인들이 있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뒷바라지 하고, 섬기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 어머니 마리아가 있었습니다. 여기 앉아계신 분들이 믿음의 여인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믿음을 지키고, 가정을 지키고, 교회를 지키는 믿음의 여인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한 마디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는 원망의 말이 아닌 주께서 그 백성을 구원하셨다는 선포를 담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고, 오늘 하루 주님의 구원을 선포하며 승리하는 귀한 인생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