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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들

아리마대 요셉의 용기(마태복음 27장)

아리마대 요셉의 용기

마태복음 2757~ 66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신 성금요일 날 날이 저물 때에 한 사람이 왔습니다.

그는 아리마대 지역 출신의 요셉이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부자였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도 예수님의 제자였습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이 아리마대 요셉에 관해서 좀더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938절입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예수의 제자나 유대인을 두려워하여 은휘하더니 이 일 후에 빌라도더러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니라.”

여기보면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님의 제자였지만, 유대인을 두려워하여 은휘했다고 나옵니다. ‘은휘라는 말의 뜻은 꺼리어 감추거나 숨김이라는 뜻입니다.

아리마대 출신은 유대지역에 속해 있습니다. 유대인이고, 부자로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을 감추었고 숨겼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예수님의 제자였습니다.

예수님 곁에는 무식한 어부나 세리와 같은 사람 뿐만 아니라 아리마대 요셉과 같은 부자도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렇게 유대인을 두려워했던 요셉이 어떻게 예수의 시신을 달라고 빌라도에게 직접 청할 수 있었을까요? 분명히 예수의 시신 곁에는 대제사장이나 장로들의 심복들이 있고, 눈과 귀가 보고 있었을 것입니다.

무엇이 그토록 요셉에게 용기를 주었을까요? 그동안 그렇게 감추고 숨겨온 예수의 제자라는 사실을 밝힐 수 있었을까요?

요셉의 경험에 관련해서는 성경에 나온 게 없어서 알 수 없습니다.

오후3시에 운명하신 예수님의 죽음 이후에 3시간 정도 지나서 요셉은 빌라도에게 갑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시신을 요구합니다. 이러한 행동은 나도 예수의 제자요~! 당당하게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자기가 쓰려고 바위에 파 두었던 새 무덤에 안장합니다.

자신의 좋은 것을 예수님께 내어 드린 것입니다.

이게 쉬운 일인 것 같지만, 쉽지가 않습니다.

사람이 살아있을 때는 관계가 있기 때문에 좋은 것을 선물하고, 내어 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람이 이기적인 동물이어서 그 사람이 죽으면, 늘 보내던 선물도 딱 보내지 않습니다. 이게 인간입니다.

하지만 아리마대 요셉은 예수님의 죽음 이후에 자신도 예수의 제자임을 만천하에 드러냅니다. 자신의 새 무덤을 예수님께 내어 드리고 유대인의 장례법에 따라 정한 세마포로 싸서 장례를 치러줍니다.

여기서 요한복음1939절에 보면 요셉과 함께 또 다른 한명이 등장합니다.

우리 요한복음 1938~39절 함께 읽겠습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예수의 제자나 유대인을 두려워하여 은휘하더니 이 일 후에 빌라도더러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니라 / 일찍 예수께 밤에 나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근쯤 가지고 온지라

요셉과 함께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한 사람은 니고데모였습니다. 니고데모는 밤 중에 몰래 예수님을 찾아와서 복음을 들었던 유대인의 관원이었습니다. 니고데모도 요셉처럼 자신의 지위와 체면, 보복을 두려워하지 않고, 장례물품을 가지고 찾아왔습니다.

니고데모도 예수님의 제자였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주님을 위해 자신의 것을 내어 주기 때문입니다. 요셉과 니고데모의 우선순위는 예수님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최고로 모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의 두 번째는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함께 빌라도에게 몰려가서 하는 이야기입니다. 말씀을 다시 한번 읽겠습니다. 62절부터 66절까지입니다.

이 말씀을 읽는데, 문득 드는 생각이 예수님의 열두제자들 보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의 믿음이 더 뛰어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듭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나리라 라는 말씀을 기억도 못하고 있는데,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고, 거기에 대한 대비를 합니다.

정확히 사흘 후에 살아나리라는 것도 알아서 사흘까지 무덤을 굳게 지켜야 한다고 빌라도에게 말합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고 하면 그 이후에 전보다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할 것을 두려워합니다.

쉽게 말하면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최악의 경우를 생각해서 대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나리라던 예수님의 말씀도 기억하고, 예수님의 시체를 도둑 맞을까봐 사람을 세워 지켜줍니다. 그리고 무덤을 잘 인봉해줍니다. 요셉은 큰 돌을 굴려 무덤문에 놓고 갔지만,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무덤을 철저하게 봉인해줍니다. 아마 큰 돌에 다가 더 덧붙여서 철저하게 막았을 것입니다.

이 모습만 보면, 예수님의 다른 제자들보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더 믿음이 좋은 것 같습니다. 하는 것으로 봐서는 왠만한 제자는 저리가라입니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최악의 경우를 생각하고 거기에 대비했습니다. 부활 뿐만이 아니라 부활 이후의 여파까지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말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무덤을 보고 믿음으로 함께 한 사람이 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입니다. 그들은 무덤을 향하여 앉아 있었습니다. 무덤을 향해 앉았다는 것은 예수님을 향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성전에 나와 앉아 있는 것처럼.. 예수님 무덤 앞에 앉아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를 지켰습니다.

우리 나라에도 장례가 나면, 상주가 자리를 지킵니다. 23일 동안 장례식장에 있으면서 조문을 받습니다. 옛 우리 조상들은 3년상을 치뤘습니다. 고인 곁을 상주가 평생에 못다한 효를 다하며 지켜드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곁을 지켜주었던 사람들이 막달라 마리아와 또 다른 마리아였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제2의 인생을 살게된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이 죽어서도 잊지 못하는 은혜를 입은 것입니다. 일곱 귀신들렸던 막달라 마리아는 귀신을 쫓아주고 새 인생을 살게 해준 예수님을 잊지 못했습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은 그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하루 주님께 받은 십자가의 은혜를 잊지 마시고, 빚진 자의 마음으로 사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