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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들

에스더 6장 1~14절 설교(나 외에 누구리요)

나 외에 누구리요

성경봉독 - <에스더 6 1~14>

 

하만의 착각

오늘 말씀은 구약 에스더서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에스더의 역사적 배경을 보면, 유다가 587년에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을 당합니다. 그 이후에 바벨론은 B.C. 550년 경에 바사, 즉 페르시아 제국에 의해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바사왕 고레스는 페르시아왕 고레스를 말합니다. 에스더는 바사왕 아하수에로 왕의 왕비가 됩니다.

바벨론이 멸망하고, 바사왕 고레스는 포로로 잡혀와 있던 유대인들에게 호의를 베풉니다. 고레스 칙령을 통해 예루살렘을 재건하도록 허락한 것입니다.

스룹바벨의 1차 포로귀환과 에스라의 2차 귀환, 느헤미야의 3차 귀환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1차 스룹바벨과 2차 에스라의 귀환 사이에 이 에스더가 등장하게 됩니다. 이것은 예루살렘에 돌아온 자에 관한 것이 아닌 바벨론에 남아 있는 자들에 관한 신앙이야기입니다. 이 말씀 속에 몇몇 주요 인물이 등장합니다. 아하수에로 왕과 왕비 에스더, 에스더의 양아버지 유다인 모르드개, 아각사람 하만입니다.

오늘 에스더 6장 말씀은 한편의 영화에서 본다면 위기가 기회로 바뀌는 클라이 막스입니다. 바사의 총리대신 하만이, 자신에게 절하지 않은 유다인 모르드개를 벌하려고, 한 날을 제비뽑아 모든 유다인을 처형하려고 했습니다. 거기다가 모르드개를 매달려고 높은 나무를 세웠습니다. 이제 왕의 허락만 받아서 모르드개를 매달기만 하면 됩니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서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이 시작됩니다.

1~4절 말씀 함께 읽습니다.

1.그 날 밤에 왕이 잠이 오지 아니하므로 명령하여 역대 일기를 가져다가 자기 앞에서 읽히더니

2.그 속에 기록하기를 문을 지키던 왕의 두 내시 빅다나와 데레스가 아하수에로 왕을 암살하려는 음모를 모르드개가 고발하였다 하였는지라

3.왕이 이르되 이 일에 대하여 무슨 존귀와 관작을 모르드개에게 베풀었느냐 하니 측근 신하들이 대답하되 아무것도 베풀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니라

4.왕이 이르되 누가 뜰에 있느냐 하매 마침 하만이 자기가 세운 나무에 모르드개 달기를 왕께 구하고자 하여 왕궁 바깥뜰에 이른지라

왜 그 밤에, 그 타이밍에 왕이 모르드개가 했던 기록을 읽게 되었을까요?! 왜 모르드개에게 존귀와 관작을 베풀려고 하는데 왕궁 바깥 뜰에 하만이 이르렀을까요?!

너무 기막힌 타이밍 아닙니까?? 하나님은 이렇듯 기막힌 타이밍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이제 곧 모르드개는 나무에 달릴 수 밖에 없는 위기이고, 온 유다인은 죽을 수 밖에 없는 위기에 처해 있는 그 타이밍에 하나님은 살려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에도 이러한 하나님의 타이밍이 있습니다. 잠시 잠깐 어려움이 있더라도 기도하시면서 하나님의 타이밍을 기다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반드시 그 때는 옵니다.

하만이 들어오자 왕이 하만에게 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말씀이 중요한데요

5.측근 신하들이 아뢰되 하만이 뜰에 섰나이다 하니 왕이 이르되 들어오게 하라 하니

6.하만이 들어오거늘 왕이 묻되 왕이 존귀하게 하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하여야 하겠느냐 하만이 심중에 이르되 왕이 존귀하게 하기를 원하시는 자는 나 외에 누구리요 하고

7.왕께 아뢰되 왕께서 사람을 존귀하게 하시려면

8.왕께서 입으시는 왕복과 왕께서 타시는 말과 머리에 쓰시는 왕관을 가져다가

9.그 왕복과 말을 왕의 신하 중 가장 존귀한 자의 손에 맡겨서 왕이 존귀하게 하시기를 원하시는 사람에게 옷을 입히고 말을 태워서 성 중 거리로 다니며 그 앞에서 반포하여 이르기를 왕이 존귀하게 하기를 원하시는 사람에게는 이같이 할 것이라 하게 하소서 하니라

오늘 6절 말씀에 하만이 심중에 이르되 왕이 존귀하게 하기를 원하시는 자는 나 외에 누구리요 하고 ..”구절이 나옵니다.

하만이 누구입니까? 왕의 모든 대신들보다 높은 바사의 총리대신입니다. 자녀가 많은 것과 부성한 것과 왕후 에스더로부터 왕과 함께 잔치에 초대받은 유일한 사람입니다. 하만은 나 외에 누구리요.. 고백하며 왕이 존귀케 하기를 기뻐하는 사람은 자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의 교만으로 인해서 착각한 것입니다. 이러한 하만의 착각 하나로 인해서 그의 인생이 결정되었습니다. 모르드개를 달아 죽이려던 나무에 자기가 달리는 가혹한 운명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왜 하만은 왕의 말을 듣고 왕이 존귀케 하기를 기뻐하시는 자가 자신이라고 생각했을까요? 교만함과 자만심 때문입니다.

하만은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이라고 나옵니다. 아각사람은 사무엘상 158절에 보면 아말렉 사람의 왕 아각의 자손 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말렉을 진멸하라고 했던 그 말씀을 사울이 듣지 않았을 때에 훗날에 그 아각 사람을 통해 다시 칼날이 돌아오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누군가 나를 칭찬할 때는 욕으로 들으라, 누군가 나를 비난할 때에는 기뻐하라!”

좋은 약은 쓰다고 합니다. 일이 잘 풀리고, 일이 잘 될수록 우리는 자만심을 경계해야 합니다. 믿는 사람들이 착각할 때가 참 많이 있습니다.

사업이 잘 될 때는 자신이 잘나서 잘 된다고 생각하고, 사업이 잘 안되면, 하나님께 와서 따집니다. 왜 이런 시련을 주시냐고..

성경속 착각 이야기

성경속에서 자신에 대해서 착각할 때 겪은 일들이 참 많이 나옵니다.

아브람의 첫 아들은 이스마엘입니다. 사래의 여종 하갈이 낳은 아들입니다.

창세기 161-4절에 보니까 아브람의 아내 사래가 자녀를 생산 못하니까 그 여종 하갈이 아브람과 동침해서 아들 이스마엘을 얻습니다. 4절에 보니까 그 하갈이 잉태함을 깨닫고 그 여주인을 멸시한지라... 라고 나옵니다. 무슨 말입니까? 이제 하갈이 장자를 낳았으니 자신이 여주인이 될 것이라고 착각한 것입니다. 여주인 사래가 아니라, 이제 하갈의 아들이 장자로서 유산을 물려 받으니까 정부인이 될거라는 착각 속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그 결말은 사래의 학대를 피해 도망치는 신세가 되고 맙니다.

마가복음 9장에 보면, 가버나움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너희가 길 위에서 서로 토론한 것이 무엇이냐? 제자들이 잠잠히 있습니다. 그 이유는 길 위에서 서로 누가 크냐하고 쟁론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서로 자기가 크다고 토론하고, 목소리를 높인 것입니다. 왜 서로 누가 크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까? 자만심 때문입니다. 이 뿌리깊은 자만심 때문에 열두 제자 중에 자신이 제일 높다고 목소리를 높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열두제자에게 마가복음 936-37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36.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안으시며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37.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

우리 교사들은 축복받았습니다.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주님을 영접하는 것인데, 매 주일 어린아이들을 섬기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할렐루야!

우리도 착각 하며 살고 있지는 않은가?

사실 이 에스더를 읽으면서 하만을 보는데 거기서 제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내가 얼마나 하나님 앞에서 착각하며 살고 있는지 깨닫는 것입니다.

내가 진실된 목사인것처럼 생각하며 살고, 설교하고 나면 여러 성도님들이 은혜받았다고 악수를 청하는데 저는 진짜 은혜받은 줄 알고 좋아했습니다. 어떤 성도님은 목사님! 음성이 참 좋습니다. 인상이 참 좋습니다.

저는 설교를 다시 들어봅니다. 그럼 얼마나 얼굴이 붉어지고, 챙피한 지 모릅니다. 진짜 하나님의 은혜 아니면 들을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진실로 은혜받은 사람은요~ 말뿐만 아니라, 삶의 모습과 행동이 달라지게 됩니다. 감정적으로 눈물흘리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자리까지 그 은혜가 영향력을 미치는 거에요! 우리가 하만처럼 착각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착각의 사람과 믿음의 사람의 차이점 - ‘내가아닌 하나님의청지기 신앙을 갖자!

믿음 생활을 하면서 착각 하는 사람에게는 분명히 보이는 특징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인이 아니라 내가 주인 되어 사는 것입니다. 정말 사람들이 보기에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하고, 봉사 잘하고, 사역 잘하는 것 같지만, 그 중심에는 은연중에 자기 자신이 놓여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갈라디아서 67절 말씀을 통해 사도 바울은 다시금 우리의 마음을 돌아보게 하십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스스로를 속이지 마십시요! 착각은 스스로를 속이기 때문에 생겨납니다. 믿음 생활 잘하고 있다는 착각, 하나님 일 열심히 하고 있다는 착각, 내가 능력 있어서 한다는 착각은 버리십시오. 하나님은 업심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둔다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자만심을 버리기 위해서는 우리가 청지기 신앙을 가져야합니다.

그 숱한 고난을 당한 욥은 고백합니다.

주신 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

위대한 왕 다윗은 역대상 29장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 나와 내 백성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여러분! 예쁜 자녀들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것입니다.

부요한 재산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튼튼한 체력과 건강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생명을 주신 것입니다.

높은 지위와 권력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세워주셨습니다.

우리가 착각하고 자만하는 것은 인생의 주어에 나를 놓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우리의 인생의 주인 되어 주심을 믿고 신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만과 대조적으로 유다인 모르드개는 하나님의 타이밍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온 유다민족이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왕후 에스더에게 이야기 합니다.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4:14)

모르드개의 말을 듣고 에스더는 금식하고 기도하며 유다민족을 살리는 귀한 일을 감당하게 됩니다. 모르드개는 대궐문 앞에서 반역자들을 밀고하여 왕을 살렸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잠잠히 있었습니다. 자신이 한 일을 내세우지 않은 것입니다. 모르드개는 오직 하나님께만 절하라는 그 믿음의 계명을 끝까지 지키며 하만에게 절하지 않았습니다. 진정 두려워해야할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모르드개의 끝은 10장에 나와 있습니다. 왕의 다음이 되고, 모르드개의 이야기가 메대와 바사 열왕의 일기에 기록되었습니다. 유다인 중에 준대하여 그 허다한 형제에게 사랑을 받고 그 백성의 이익을 도모하며 모든 종족을 안위하는 축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만처럼 착각에 빠져 사는 인생, 내가 주인되고 하나님은 뒷전에 있는 인생의 결국은 멸망밖에 없습니다. 스스로를 속이지 말고, 자만하지 않으며 하나님을 경외할 줄 아는 믿음의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모르드개처럼 공로를 내세우지 않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며, 사람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그 믿음으로 선한 청지기가 되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