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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들

사무엘하 11장 1절 설교(그대로 있지 말라)

<그대로 있지말라>말씀(사무엘하 111)

그 해가 돌아와 왕들이 출전할 때가 되매 다윗이 요압과 그에게 있는 그의 부하들과 온 이스라엘 군대를 보내니 그들이 암몬 자손을 멸하고 랍바를 에워쌌고 다윗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있더라

 

성경말씀 중에 참 좋아하는 말씀 중에 하나가 사무엘하 729절 말씀입니다.

이제 청하건대 종의 집에 복을 주사 주 앞에 영원히 있게 하옵소서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사오니 주의 종의 집이 영원히 복을 받게 하옵소서 하니라

다윗은 주 앞에 영원히 서있는 것을 복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한 다윗의 기도 이후에 사무엘하 8장을 보면 이스라엘은 승승장구하게 됩니다. 블레셋, 암몬, 아람, 모압, 에돔 전투에서 승리하게 됩니다. 영토를 넓히고, 명성이 자자하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중동 지역의 강대국으로 떠올랐습니다.

해가 돌아와서 왕들이 출전할 때가 되었다는 것은 1년이 지나고 다음 해 봄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건기와 우기가 있기 때문에 전쟁을 하는 때는 비가 잘 내리지 않는 건기 때 였을 것입니다. 전쟁을 할 때 마다 승승장구 하던 다윗은 암몬자손과의 전투를 하기 위해 군대장관 요압과 그의 부하들과 이스라엘 온 군대를 보냅니다. 전쟁하기 좋은 때에 출전한 것이죠. 그런데 평소와는 다른 게 한 가지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윗만 전쟁에 출전하지 않고 예루살렘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인생의 때가 있다. (시간)

전쟁에도 때가 있듯이 인생에도 다 때가 있습니다.

전도서 31절부터 8절을 보면, 인생의 때에 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

여름철에 열심히 일하지 않는 개미는 겨울에 굶주릴 수밖에 없습니다. 학생의 때에 공부하지 않는다면, 훗날에는 날밤을 새면서 공부를 해야지 겨우 따라갈 수 있습니다. 요즘은 공부보다도 자기의 비전을 확실히 세워서 인생을 살아가는 청년들이 나중에 큰 빛을 발휘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어떤 이들은 공부하지 않고 유튜버가 되기도 하고, 예술 분야에 뛰어들기도 합니다. 어떤 분야에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그 일에 자신의 인생을 거는 것입니다. 어떤 가정을 보면 학교를 보내지 않고 홈스쿨을 시키기도 합니다. 자신이 어느 정도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을 때 그냥 학교 교육보다 아이들 스스로가 원하는 인생을 살아가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한국의 오프라 윈프리(?)라고 불리는 김미경씨는 또 다른 비전을 세웠다고 합니다. 영어를 배워서 세계적으로 글로벌 동기부여전문가가 되기로 꿈을 세운 것입니다.

그녀는 2년 동안 영어를 공부하고 수백명의 학생들 앞에서 영어로 자신을 소개하고 강의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전의 좋은 대학을 나와야 잘 산다는 철칙이 깨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명문대 나와도 취업을 못하는 청년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자신의 인생을 살면서 더 기쁘고 행복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보고 기존에 늘 걸어야 했던 길을 벗어나 새로운 인생에 도전하는 청년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추구하는 바가 달라도 동일한 것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다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때롤 놓쳐버리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기도해야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절제해야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무릎꿇어야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감사해야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비전을 품고 고민해봐야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부모님을 떠나 홀로 서야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고 순종해야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한 때를 놓쳐버리면 나중에 하고 싶어도 못하는 것이죠.

나중에 헌신할께요 하다가 결국에는 헌신 못하시는 분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나중에 헌신하고 싶어도 못하는 때가 올 수 있습니다.

돈있고 부요할 때 헌금도 해야하는데 나중에 돈없고 능력없을 때는 헌금하고 싶어도 못합니다. 예전에 노방전도를 나가서 이런저런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젊었을 때는 정말 잘나갔는데 순식간에 주저 앉게 된 이야기. 돈있고 능력있어서 실컷 젊을 때 즐기고 놀다가 건강을 잃게 된 이야기. 부사장으로 떵떵거리며 살다가 순식간에 부도나서 수치스러운 세월을 보내야 했다는 이야기.

그런 분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가 좀 더 능력있을 때, 좀 더 젊었을 때 예수님을 믿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예수님을 위해 헌신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것입니다.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지금이라도 헌신하시고, 지금이라도 예수님 제대로 믿고 신앙생활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교육도 받고, 은혜도 받고, 좋은 믿음의 본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지 않았을 때 다윗과 같은 위기가 찾아오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왕들이 출전할 때 다윗왕도 출전했더라면... 이러한 위기는 찾아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계속해서 승승장구하는 일만 있었을 것입니다. 성경에도 밧세바 사건은 기록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도 우리처럼 그 때를 미루고 핑계대고 편한 자리를 찾아 살다 보니까 이런 위기가 찾아오게 된 것입니다.

지금의 때를 놓치지 마십시오. 지금이 가장 좋은 때입니다. 이 때에 헌신하고 봉사하고 제대로 예수 믿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다윗이 범죄한 자리 - (공간)

결국 부하들은 전장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데 다윗은 한가로이 왕궁을 거닐며 지내다가 밧세바와를 범하게 되는 큰 범죄를 저지르게 됩니다.

다윗이 잘못된 자리에 있을 때, 유혹이 찾아와 밧세바를 범한 것처럼.

우리가 잘못된 자리에 있을 때, 유혹은 때를 놓치지 않고 반드시 찾아옵니다.

자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살면서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습니까?!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평소에는 그렇게 좋은 사람도 권력의 자리에만 앉으면 이상하게 변하잖아요.

교회에 있으면 다 믿음 좋아보입니다. 얼마나 신실해보여요. 아름답게 찬양하고, 기도하고, 교제하고, 죄인은 단 한사람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죄인의 자리에 가보세요,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아보세요. 악인들이 모여 있는 곳에 가서 어울려보세요. 어쩔수 없이 분위기에 휩쓸려 자기도 모르게 그들과 똑같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 생활 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때가 정말 조심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가 정말 잘 지내고 있을 때가 사실은 더 경계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가 뭔가를 이루고 성공하고, 승리했을 때 그 자리를 조심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전쟁 중일 때 다윗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습니다. 이제 부하들 만으로도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죠. 자기는 이제 쉬어도 되겠구나 안심했을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요. 우리가 잘되고 있다고 해서 그냥 그 자리에 안주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많은 기적을 베푸셨는데 그 중에 4복음서에 다 나온 기적이야기는 오병이어의 기적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신 후에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만약 예수님이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면, 그리스도가 될 수 없었을 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은 그러지 않으셨습니다. 무리를 다 흩어 보내시고, 홀로 산에 오르셨습니다. 기도하기 위해서입니다. 시험과 유혹이 찾아올 때 기도의 자리를 찾으신 것입니다.

우리도 유혹과 시험이 찾아올 때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 자리를 벗어나야 합니다. 자신은 죄에 맞서 싸워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죄를 못이깁니다. 우리 스스로 죄를 어찌해볼 수가 없습니다. 사탄의 세력이 얼마나 강한지 모릅니다. 그렇게 믿음 좋은 사람도 사탄 앞에서는 맥을 못춥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죄를 이기신 분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 예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그 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를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또 마태복음 17장 변화산에서 예수님이 모세와 엘리야를 만나서 대화하고, 베드로가 초막셋을 지어서 기념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모습이 흰 옷처럼 새하얗게 변화되셨을 때, 영광스럽게 변모되었을 때, 얼마나 예수님이 멋져보였는지..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세급으로 엘리야급으로 모시려고 했습니다.

베드로의 말을 듣고 예수님께서 그 산 위에 머물러 계셨다면, 아마도 십자가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산 아래로 내려와 십자가의 수난을 예고하셨습니다. 뒤돌아보지 않고, 그 영광의 자리를 떠나 고난의 자리, 십자가의 자리로 내려온 것입니다.

우리가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할 때 그 자리에 안주하고 싶고, 머물고 싶고, 하는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여유가 있을 때 유혹은 우리를 찾아옵니다.

다윗은 그로 인해 엄청난 죄를 범하게 되었고, 나단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의 질책을 받게 됩니다. 우리도 우리의 삶을 돌아보고, 안주하지 않고, 그대로 있지 말고, 하나님과 늘 동행하며, 전쟁과도 같은 인생에서 승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초월하시는 하나님 초월과 영원

11장 마지막 절 27절말씀

그 장례를 마치매 다윗이 사람을 보내 그를 왕궁으로 데려오니 그가 그의 아내가 되어 그에게 아들을 낳으니라 다윗이 행한 그 일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더라

이 말씀 속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다윗이 행한 악한 그 일을 아무도 모르는 줄 알았는데 누가 보고 계셨어요??? 하나님!!

바로 하나님이 보셨습니다. 다윗의 때 - 시간, 다윗의 자리 공간...

그 모든 것을 뛰어넘어 하나님이 보시고 계셨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여기에 이르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시간과 공간을 넘어, 때와 장소를 넘어 초월의 하나님을 바라볼 때 우리는 그 자리를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 시간을 어떻게 사용해야할지 결단할 수 있습니다.

그 전에는 다 우리의 뜻대로 우리가 원하는 장소로 갑니다. 우리를 보시고 계신 분이 있다는 것을 의식할 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다윗이 고백하는게 하나님을 늘 내 앞에 모심이여~ 이러한 고백은 늘 하나님이 나를 보고 계시다는 사실을 믿는다는 고백입니다.

하나님을 내 앞에 모시지 못할 때 죄에 빠지는 것이고, 악을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시선이 하나님을 향하길 원합니다. 시공간을 초월하신 그 분을 향할 때 현실과 상황을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죽음을 넘어 영원에 작열할 수 있습니다.

이 땅을 떠나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다윗이 다시 하나님을 의식할 때 그는 바로 회개했습니다. 이것이 다윗의 위대한 신앙입니다. 변명하지 않았습니다. 핑계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 분 앞에 진심으로 나아갔습니다.

오늘 이 밤에 우리도 다윗처럼 하나님 앞에 진심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시선이 하나님께 향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