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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들

에베소서 5장 15~21절 설교(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에베소서 5 15 ~ 21

 

공원에 가면 소위 말하는 닭둘기~가 있습니다. 겉모습은 비둘기인데 닭처럼 걸어다니는 비둘기를 닭둘기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가만히 앉아서 이 모습을 보는데 꼭 제모습같고, 한국교회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둘기는 비상할 수 있습니다. 하늘을 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신에게 위기가 닥칠 때나 날개짓을 해서 도망치다가 다시 걸어 다니는 닭둘기가 됩니다. 꼭 그 모습이 우리가 힘들때만 예수님 찾다가 범사에는 닭둘기처럼 사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거에요.

하나님은 비둘기가 날 수 있도록, 비상할 수 있도록 지으셨습니다. 그것을 포기하고 사람이 주는 먹이를 먹고 살아갈 때 날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 문화에 젖어 살다 보면, 우리가 하늘을 바라보며 비상하는 삶을 살아야됨에도 불구하고, 우리 필요할 때만 하나님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쁠 때만 하나님 찾고, 잘 될 때만 교회나오고 이런 것이 아니라 범사에 하나님을 찬양하고, 범사에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인생되길 바랍니다.

에베소서는 교회론이 담긴 서신서입니다. 성도간의 일치와 화합, 성도의 가정생활과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성결한 삶, 영적 성숙을 위한 신앙의 무장에 관해서 이야기합니다.

에베소 지역의 배경을 보면, 로마 제국의 큰 항구도시 중에 하나, 소아시아지역 중심도시였습니다. 바울이 가장 오래 머물면서 가르치고 사역한 교회이기도 합니다.

초대 예루살렘교회 이방인 최초의 안디옥교회 그리고 에베소교회는 제3의 기독교중심지였습니다. 에베소에서 바울에게 복음을 들은 에바브라는 골로새교회를 세우기도 합니다.

소아시아 일곱교회가 어찌보면 에베소교회를 중심으로 태동하게 된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아데미 여신을 숭배하는 기본 바탕 속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이 들어온 것입니다. 그래서 당시 교인들조차도 구원은 믿음으로 받고, 복은 아데미 여신으로부터 온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방신앙과 복음이 갈등이 일어나고 어떤 곳에는 타협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방인과 유대인들 간에 갈등과 반목이 생겨나게 됩니다. 교회의 질서가 위협을 받게 되고, 예수 믿는 교회가 어떤 곳인지에 대한 필요성이 생겨나게 됩니다.

이 때 바울이 에베소교회를 비롯한 소아시아 교회들에게 올바른 교회관을 심어주기 위해 기록한 것이 바로 에베소서입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오늘 본문 말씀을 볼 수 있기 바랍니다.

15 그러므로 여러분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살피십시오. 지혜롭지 못한 사람처럼 살지 말고, 지혜로운 사람답게 살아야 합니다.

16.세월을 아끼십시오. 때가 악합니다.

17.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달으십시오.

18.술에 취하지 마십시오. 거기에는 방탕이 따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십시오.

19.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서로 화답하며, 여러분의 가슴으로 주님께 노래하며, 찬송하십시오.

20.모든 일에 언제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십시오.

21.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서로 순종하십시오.

지혜로운 사람이 묻는 물음이 있습니다.

어떻게 인생을 살 것인가하는 것입니다. 한 번 뿐인 인생입니다. 다시 돌아오지 않는 세월입니다. 어떻게 사시겠습니까? 어떻게 행동하겠습니까? 무엇을 하며 살겠습니까?

지혜로운 사람들은 이런 질문을 던지고 의식 있게 뜻을 품고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시대가 얼마나 악한 지 모릅니다. 바울 시대도 악했지만, 지금도 악합니다.

돈이 사람을 지배하는 세상입니다. 우리가 버린 쓰레기 때문에 우리의 환경과 지구가 죽어가고 신음하고 있는 시대입니다. 예전에는 마을의 문화가 있었지만, 지금은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가득한 세상입니다. 누가 패륜아가 되든, 도덕적으로 문제를 일으켜도 관여하지 않습니다. 빈익빈 부익부는 더 심화되어가고 격차는 커져가고 있습니다.

이제 세상에 얼마나 할 것이 많은지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세월과 시간들을 허비하고 있습니다. 돈 세 나가는 것은 계산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자신의 시간이 줄줄 세 나가고 있는 것에는 무감각하기 마련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러한 시대에 지혜롭게 살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바울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달으십시오.”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신 뜻은 무엇입니까?

어떤 조직신학자는 성경을 관통하고 있는 하나의 주제는 하나님 나라 운동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도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처음 갈릴리에서 복음 선포하시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복음을 십자가와 부활이라고 요약하지만, 쉽게 말하면 믿음과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제대로 믿고, 사랑의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21장에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이 오셔서 갈릴리 호수에서 물고기 잡는 베드로에게 오셔서 어떻게 했는지를 보십시오.

예수님이 묻습니다.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없나이다.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이에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예수님이 잡은 물고기를 가지고 조반을 차려 주십니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묻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내 어린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

우리 주님은 베드로에게 뭐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배신하고 도망칠 수 있느냐?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다시는 그렇게 살지 말라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밥을 차려 주신 후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셨습니다. 예수님의 베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듣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그거면 되었다는 것이죠. 뭐 다른 거 따질 필요도 없습니다. 사랑 하나면 오케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뜻은 여기에 있습니다. 주님을 향한 사랑.. 그 사랑대로 살라는 것입니다. 그 사랑으로 양을 먹이고 치고, 사람들을 대하라는 것입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로서 다시 보내는데 자기의 뜻과 생각이 아닌 주님의 사랑으로 사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그 사랑의 표현이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입니다.... 우리가 부르는 찬양은 사랑의 노래입니다. 주님을 향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주님을 사랑하기에 찬양하고, 주님을 사랑하기에 노래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에 표현하는 방식이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하는 경배와 찬양 이 모든 것이 주님을 향한 사랑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사랑표현은 거창한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에 있는 것입니다.

19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마음으로 찬양하는 그 찬양을 하나님이 기뻐받으시는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음치여도 노래 못해도 마음으로 불러보십시오. 마음은 통합니다. 마음은 마음에 가 닿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이 베드로의 마음에 가 닿을 때 베드로가 자복하고, 다시 주님의 사랑으로 살고, 예루살렘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마음의 찬양을 하나님께 드렸으면 좋겠습니다.

첫 번째가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라면, 두 번째로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무엇이 감사합니까? 감사할 이유를 하나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 생명주셔서 감사합니다. 찬양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설교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예배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범사에 항상.. 감사하는 것, 그것이 우리 주님의 뜻입니다.

우리 주님은 머리 둘 곳이 없으셨어도 늘 기도생활을 하셨습니다. 밤새도록 기도하기도 하셨습니다. 기도할 때 늘 나오는 고백이 무엇입니까? 감사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불평과 불만으로 시작하더라도.. 결론은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끝맺게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을 만져주시고, 감사의 이유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상황이나 환경은 바뀌는 거 하나도 없습니다. 문제도 그대로 있습니다. 통장에 돈이 더 들어오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감사하게 됩니다. 우리 주님이 우리를 변화시켜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 때문에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을 부어주십니다.

바울도 지금 에베소서를 쓸 때는 옥중서신입니다. 감옥에서 쓰고 있어요. 거기서 강조하는 말 20절말씀...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에베소 교인들에게 감사 생활하라는 것입니다. 자신은 감옥에 갇혀있으면서도... 감사할 때 우리의 입술에서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이 나올 줄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서로를 대할 때 또 교회가 든든히 세워지기 위해서는 21절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21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새번역 성경으로 보면, 21.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서로 순종하십시오.

예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서로를 대하고 순종하라는 말입니다. 주께 하듯이 서로를 공손히 대하고, 존중해주며, 서로의 말에 순종하라는 말입니다.

어느 한쪽만 순종을 강요하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가 순종해야 합니다. 교회가 든든히 세워지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두려워하고 믿는다면... 예수님을 존귀히 여길 줄 안다면, 믿는 성도들 간에 서로 순종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순종은 훈련입니다. 한번 가르친다고 해서 끝난 것이 아닙니다. 계속 알려주고,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스스로도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이스라엘민족이 40년 광야생활하면서 배운 한 가지는 순종입니다. 우리 예수님도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이유는 하나님 뜻에 순종하기 위해서입니다.

디트리히 본회퍼는 우리 주님이 우리를 부르신 이유는 죽으라고 부르셨다고 말합니다.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과한 것을 요구하실 때가 있습니다. 한 번 죽었다 생각하고 순종해보십시오. 우리 주님의 순종시험에 합격하셔서 인격이 변화되고, 인생이 달라지고 완전히 새로워지는 축복을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목이 곧고 완악한 죄인들이라 잘 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순종할 때 변화는 시작됩니다. 우리 주님의 뜻에 순종하십시오.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해보십시오. 우리 주님이 제자들을 다시 찾아가 사랑을 확인하고 다시 파송하신 것처럼... 우리도 그 사랑을 노래하되..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범사에 항상 감사함으로... 그리고 서로에게 순종함으로..

한 번 뿐인 인생 귀하게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