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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들

약속의 자녀 이삭(창 25장)

약속의 자녀 이삭, 복의 전승, 자녀를 위한 간구, 에서의 태도

창세기 251 ~ 34

 

약속의 자녀 이삭(11)

오늘은 아브라함의 죽는 장면이 나옵니다. 아내 사라가 묻힌 그 곳에 아브라함도 갇히 묻힙니다. 헤브론 막벨라 굴에 장사하는데 그 아브라함의 임종 앞에 이스마엘과 이삭이 함께 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참 행복한 죽음을 맞이한 것입니다. 유산분배도 다하고, 아들끼리 갈 길도 정해주었습니다. 이삭에게는 이 곳에 남으라고 하고, 다른 서자들에게는 동쪽 땅으로 가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서로 다투지 않도록 선을 그어둔 것입니다.

사람도 살다보면 깨닫는 것이 부모의 끈이 없으면 형제도 남남처럼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사실입니다. 부모가 있을 때 형제들끼리 많이 모이지만, 부모님이 안계시면, 그냥 뿔뿔히 흩어지고, 왕래도 뜸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죽은 이후에 이삭과 이스마엘의 삶의 자리와 인생도 달라집니다.

이삭은 약속의 자녀입니다. 자연출생한 형 이스마엘이 있었지만, 비교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냥 사람의 힘으로 낳은 듯한 이스마엘과, 하나님이 아니면 낳을 수 없는 이삭은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25장을 봐도 확연히 눈에 들어오는 것은 이스마엘은 분량이 12절에서~18절까지, 7절 밖에 안됩니다. 하지만 이삭은 그 이후에 몇 장에 걸쳐서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결정적으로 11절에 보면, 이렇게 나옵니다.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하나님이 그의 아들 이삭에게 복을 주셨고 이삭은 브엘라해로이 근처에 거주하였더라 브엘라해로이는 사실 여종 하갈이 여주인 사래를 피해 도망칠 때 만난 샘의 이름입니다. 그 샘의 이름을 브엘라해로이 라고 지었는데. 살피시는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도망치는 여종 하갈조차 하나님이 굽어살펴주신다는 것입니다.

이제 아버지, 족장의 리더였던 아브라함이 없는 그 때에, 무언가 텅 비어버린 것 같은 그 시기에.. 이삭은 브엘라해로이.. 자신을 살피시는 그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았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을 아침에 없어지는 안개와 같습니다. 그렇기에 영원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의지해야 합니다. 우리가 의지하는 것 같지만, 참 은혜로운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펴주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형편과 처지를 아십니다. 우리의 외로움과 공허함을 아십니다. 경제적인 문제, 먹고사는 문제, 관계의 어려움의 문제, 지치고 상한 심령을 아십니다.

아버지가 없는 그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서 살펴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 하나님께서 우리도 살펴주시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 간구하는 이삭의 신앙(21~22)


오늘 말씀 속에서 또 우리가 함께 은혜를 나눌 수 있는 것은 이삭의 간구 신앙입니다. 이삭은 아내 리브가와 결혼한 지 20년 동안 자식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임신하지 못하는 아내 리브가를 위해 간구합니다. 말씀을 보면, 자신을 위해 간구한 것이 아닙니다. 아내를 위해 간구합니다. 그리고 쌍둥이를 임신하게 되자, 생전 겪어보지 못한 그러한 경우에 하나님께 묻고자 합니다.

이것이 이삭의 간구신앙입니다. 인생의 방황과 어찌해야할 바를 모를 때 이삭은 하나님께 물어봅니다. 인생의 답을 주시는 그 분께 나아갑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인생길에서 얼마나 막막할 때가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누구랑 상의도 하고 싶고, 물어보고 싶은데 물어볼만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냥 한마디 하면 두마디 세마디가 되어서 퍼질 것 같고, 마음 붙일 곳도 없는 세상인 것 같습니다. 이삭은 형제들도 없는 그 처지에 오직 하나님께 간구하고 묻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 삼아 살아가는 것입니다.

한 목사님은 고아로 태어나서 목회를 하게 되었는데 목사안수를 받을 때 축하해주는 부모가 아무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더욱 의지할 분이 한 분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바로 하나님 아버지입니다. 그 아버지를 의지하며 살 때 더 신실하게 목회를 감당하고, 사역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육신의 아버지가 안계실 때 비로소 하늘의 아버지가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이삭은 아버지의 빈 자리를 하나님으로 채웠습니다.

오늘 이 시간이 하나님으로 채워지는 귀한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에서의 태도 (32~34)

에서는 이삭의 장자로 태어났습니다. 장자의 축복을 두 갑절의 상속을 받는 것이 법도였습니다. 장자로 태어나게 하신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에서는 그 하나님이 주신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겼습니다. 자신이 누릴 수 있는 복을 발로 걷어 찬 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에서의 모습 속에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누릴 수 있는 권리와 명분을 주셨는데 혹시 가볍게 여기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이 주신 직분을 가볍게 여기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가 알게 모르게 누리고 있는 하나님이 주신 축복과 권한을 중히 여길 때 우리는 에서와 같은 잘못을 범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늘도 주신 은혜와 하나님의 자녀된 특권을 누리며 사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