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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들

암몬과의 전쟁(삼하 10장)

다윗이 암몬과 싸우다

사무엘하 101 ~ 19

 

사무엘하는 다윗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특별히 사무엘하 1장에서 10장까지는 다윗의 전성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시글락(한성읍) 헤브론(유다 한 지파) 예루살렘(이스라엘 열두지파)>

특별히 사무엘하 6장에서 다윗은 하나님의 궤를 다윗성으로 옮깁니다.

이것은 엄청난 사건입니다. 다윗이 얼마나 하나님 중심으로 살았는지를 여기서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이 왕이 될 때 이스라엘 안에는 아픔과 갈등과 반목이 있었습니다.

우리 나라도 남북으로 분단되어 이산가족의 아픔이 있고, 전쟁의 상처가 있습니다. 서로 신뢰할 수 없는 것이 있는 것입니다. 서로를 죽이고 싸운 경험과 상처가 있기 때문입니다. 왜 어르신들이 빨갱이~ 공산당~ 하면 치를 떨고 목소리를 높이느냐하면 전쟁을 경험한 세대이기 때문입니다. 가족의 죽음과 공산당의 무서움을 알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다윗이 왕이 되었지만, 그 전에 이미 전쟁을 겪고 서로를 죽이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사울의 잔존세력들도 있었을 것이고, 지역주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한 것이 바로 헤브론이 아닌 예루살렘을 수도로 정하고, 그 곳을 평화의 도성으로.. 정치적, 군사적, 종교적 수도로 세운 것입니다. 그 예루살렘이 지금까지 성지가 된 것을 보면 참 놀랍습니다. 다윗은 예루살렘을 다윗성으로 삼아 나라를 이끌어갈 때에 승승 장구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어디로 가든지 이겼습니다. 블레셋, 모압, 아람, 에돔...

 

1) 다윗과 암몬

다윗은 암몬왕 나하스가 죽자 암몬에 사절단을 보냅니다. 그것은 다윗이 베푼 은총이었습니다. 8장에서 다윗은 어디로 가든지 승리했습니다. 9장에서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에게 은총을 베풉니다. 그리도 10장에서는 암몬왕 나하스의 아들 하눈에게 은총을 베풀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그의 아버지 나하스가 다윗에게 은총을 베풀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하스의 아들 하눈은 그 사절단을 스파이 취급합니다. 그래서 수염 절반을 깎고, 의복의 중동볼기까지 자르고 돌려보냅니다.

외교적 결례를 저지른 것입니다. 다윗은 그런 수치를 당한 자들을 여리고에 머물다가 수염이 자라면 오라고 명령합니다.

암몬 왕 하눈은 돌아가는 것이 심상치 않자, 엄청난 비용을 들여 용병 아람 군대를 부릅니다. 당할 바에는 먼저 공격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다윗의 군대는 아람군대와 암몬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게 됩니다.

신앙생활은 영적 전투입니다. 끊임없는 전쟁입니다. 주변의 적을 물리쳤다고 해서 끝난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과 다윗이 국제적으로 위상이 높아지고, 강대국이 되었다고 해서 전쟁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더 큰 적이 몰려 오고, 내부의 적이 생겨나기도 합니다.

오늘 말씀처럼 은혜를 베푸려고 했지만, 은혜를 수치로 갚는 이들이 생겨나기도 합니다.

나의 의도와는 다르게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 것입니다.

나라와 나라 사이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개인과 개인 간에, 부부간에, 부모와 자녀간에도 그러한 일들이 생길 수 있습니다.

언젠가 한 사람이 뜻밖의 질문을 했습니다. (5-3=2)(2+2=4)가 무슨 뜻인지 알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5-3=2)? 어떤 오해(5)라도 세번(3)을 생각하면? 이해(2)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고, (2+2=4) , 이해(2)에 이해(2)를 더할 때 사랑(4)이 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늘 자기식대로 상대방을 바라보고, 선입견과 편견을 가지고 볼 때가 많이 있습니다.

우리 주님을 볼 때 늘 자신을 따르던 제자들을 가르치고, 또 가르치고, 쉽게 설명하고 비유로 설명해주셨습니다. 이해에 이해를 더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죽으셨지만, 제자들은 그 주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고, 두려움에 문을 닫고 숨었습니다.

그런 그 때 부활의 주님께서 오셔서 사랑으로 가르쳐주시고, 축복해주셨습니다.

오해를 넘어, 이해시켜주시고, 사랑을 심어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전쟁과도 같은 인생 속에서 설령 오해를 할 지라도 세 걸음 물러나 그 사람의 입장에 서서 이해해보십시오. 화내기 전에 나라면 어땠을까 생각해보십시오. 그리고 이해에 이해를 더해 사랑의 길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다윗왕과 이스라엘의 위상이 날로 높아진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를 높여주시고, 들어 사용하여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