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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들

아침과 밤, 인생의 아이러니(창세기 19장)

아침과 밤, 인생의 아이러니

창세기 1930~ 38

 

롯은 소알에 사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두 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첫째는 소알에도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 같아서 그랬을 것이고, 두 번째는 소알도 원래는 멸망받을 성이어서 거기에 사는 사람들이 두려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1917절 말씀에 따라 산으로 올라가서 살았습니다.

30절 말씀 같이 읽겠습니다.

롯이 소알에 거하기를 두려워하여 두 딸과 함께 소알에서 나와 산에 올라 거하되 그 두 딸과 함께 굴에 거하였더니..”

어느 할머니가 손자 손녀와 산 속에서 살았는데 캄캄한 밤에 짐승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니까 손주들이 무섭다며 할머니에게 안겼습니다. 할머니~ 무서워요. 그러자 할머니가 그 손주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요. “얘들아, 세상에서 정말 무서운 게 뭔지 아니?”

손주들이 대답해요. “호랑이요~ 늑대요~ 너무 무서워요! 우릴 잡아먹으면 어떻게 해요~”

그러자 웃으며 할머니가 이런 이야기를 해요. “호랑이와 늑대도 무섭지만,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건 사람이란다..” 손주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눈만 동그랗게 뜹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가장 무서운 게 사람인 거 같아요. 사람 잘못 만나면 평생을 고생합니다. 사람 잘못키우면, 큰 어려움을 겪습니다. 귀신보다 더 무서운게 사람인 거 같아요.

롯은 그러한 사람의 무서움을 소돔과 고모라에서 충분히 경험했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 잘못 믿어서 얼마나 큰 고생을 한 적이 있습니까?! 우리는 평생에 사람을 대하며 살아야 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믿을 사람 하나 없다는 말에 절로 고개를 숙이게 만듭니다. 어떤 목사님이 그런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이다.”

그렇다면, 믿음의 대상은 누구입니까? 하나님 한 분 밖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한 분만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람 잘못 믿으면 여러분 한 사람이 아니라, 온 가족이 힘들어질 수 있습니다.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입니다.

이제 롯에게는 가족이라고는 두 딸 밖에 없었습니다. 그 두 딸은 세상의 도리를 좇아서 살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도리에 어긋난 일을 계획합니다. 아버지에게 술을 먹이고, 동침해서 인종을 전하고자 하는 거에요.

31절에서 33절까지 읽습니다.

“31 큰 딸이 작은 딸에게 이르되 우리 아버지는 늙으셨고 이 땅에는 세상의 도리를 좇아 우리의 배필 될 사람이 없으니
32 우리가 우리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우고 동침하여 우리 아버지로 말미암아 인종을 전하자 하고
33 그 밤에 그들이 아비에게 술을 마시우고 큰 딸이 들어가서 그 아비와 동침하니라 그러나 그 아비는 그 딸의 눕고 일어나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이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데 크게 두 가지가 떠올랐습니다.

이 모든 일이 밤에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에 관한 일을 읽다보면, 성경에 때에 관한 이야기가 배경에 깔려 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어느 때에 멸망을 당합니까? 아침입니까? 저녁입니까? 아침입니다.

아브라함이 어느 때에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받는 곳을 바라보게 됩니까? 아침입니다.

이것은 반대로 롯이 구원 받는 때가 아침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반대로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 보면, 롯의 두 딸들이 말도 안되는 일을 실행한 때가 밤이라고 나옵니다. “그 밤에 그들이 아비에게 술을 마시우고...”

이 모든 일은 밤에 일어났습니다.

성경에 보면 이러한 아침과 밤에 관한 일화가 정말 많이 나옵니다.

보통 예수님이 언제 기도한 지 아십니까? 새벽 미명에 기도하셨다고 성경에 나옵니다.

마가복음 135절 말씀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예수님이 부활하신 때도 새벽입니다. 안식후 첫날 새벽이니까요.

반대로 밤에는 별로 좋은 일이 없었습니다.

요한복음 13장에 보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가룟 유다의 배신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께서 너희 중에 하나가 나를 팔리라 라고 말하자 서로 웅성 거립니다. 그리고 1330절에서 이렇게 나옵니다.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

예수님이 잡시히던 때도 밤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온 세상에 어둠이 임했습니다.

누가복음 6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러 산에 가서 날 새도록 기도하신 후에 밝으매 열두 제자를 택하여 사도로 칭하신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 창 19장에서는 아침과 밤이 대조 되어서 나오고 있습니다.

19장에서 처음에 소돔의 사람들이 롯의 집에 온 두 천사를 상관하겠다고 하던 때는 밤이었습니다.

23절에서 롯이 소알에 들어갈 때에 해가 돋았더라.. 아침이었습니다.

27절에서 아브라함이 그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여호와의 앞에 섰던 곳에 이르러..

33절에서 그 밤에 그들이 아비에게 술을 마시우고

 

우리 인생의 하루에는 누구나 밤과 낮이 있습니다. 아침과 밤이 있습니다.

아침처럼 희망이 있고, 밝고 찬란할 때가 있다면, 밤처럼 어두울 때도 분명히 있습니다.

도저히 빛이 안보이는 어두움.. 끝날 것 같지 않는 절망의 밤.. 그러한 밤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 끝이 부활의 아침입니다. 물론 중간에 십자가의 고난을 만날 것입니다. 십자가 없이는 부활도 없으니까요. 우리의 끝은 분명히 아침입니다.

이 사실을 믿으십시오. 잠자는 자가 일어나고, 나팔소리에 홀연히 우리 주님과 함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반대로 밤에 벌어진 이 사건을 통해 두 족속이 태어나게 됩니다. 모압과 암몬입니다.

실제로 모압과 암몬은 이스라엘의 동쪽에 자리잡고 번성하여 사사시대에는 이스라엘민족을 통치하기도 합니다. 다른 나라와 동맹해서 이스라엘과 전쟁을 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두 민족의 탄생배경이 창세기에 쓰여 있는데 근친상간이란 비윤리적으로 기록된 것을 보면, 두 민족에 대한 이스라엘민족의 인식이 어떠했는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을 보면 이 두 민족이 태어나게 된 것도 어쩌면 롯이 스스로 자초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롯은 198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게 남자를 가까이 아니 한 두 딸이 있노라 청컨대 내가 그들을 너희에게로 이끌어 내리니 너희 눈에 좋은 대로 그들에게 행하고 이 사람들은 내 집에 들어왔은 즉 이 사람들에게는 아무 짓도 하지말라.”

롯은 이미 정혼한 두 딸을 소돔 사람들에게 내어주려고 했습니다.

생전 처음 자기 집에 손님으로 온 두 나그네 때문에, 롯은 그의 사랑하는 두 딸을 내어주려고 했습니다. 이 부분이 참 이해할 수 없지만, 다행히 두 천사의 도움으로 그러한 위기를 벗어나게 됩니다.

그런데 그러한 아버지의 말을 두 딸이 들었다면,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요?!

후에 오늘 읽은 본문처럼 두 딸은 아버지와의 관계 속에서 모압과 암몬이라는 두 민족을 낳게 된 것입니다.

참 재미 있는 것은 성경에서 롯을 의인으로 보이려고 노력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33-35절 말씀 같이 읽겠습니다.

33 그 밤에 그들이 아비에게 술을 마시우고 큰 딸이 들어가서 그 아비와 동침하니라 그러나 그 아비는 그 딸의 눕고 일어나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34 이튿날에 큰 딸이 작은 딸에게 이르되 어제 밤에는 내가 우리 아버지와 동침하였으니 오늘 밤에도 우리가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우고 네가 들어가 동침하고 우리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인종을 전하자 하고

35 이 밤에도 그들이 아비에게 술을 마시우고 작은 딸이 일어나 아비와 동침하니라 그러나 아비는 그 딸의 눕고 일어나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엄청난 일이 밤에 벌어졌는데 성경은 아비는.. 롯은 그 딸의 눕고 일어나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부지불식 간에 벌어진 일이라 롯의 책임은 없는 것처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의 주도권은 두 딸에게 있는 것처럼 묘사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참 재미있는 것은 아브라함이든, 다윗이든, 좋은 점만 기록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참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사라를 자신의 누이라고 속입니다. 애굽에 내려갔을 때에도 그랄 땅에 가서도 예쁜 아내 때문에 자신을 죽일까봐 두려워서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윗과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 사건은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다윗의 허물임에도 불구하고, 성경에는 그대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롯의 이야기가 성경에 기록된 것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만약에 나의 삶이 나의 신앙이야기가 성경에 롯처럼 사실적으로 기록되어진다면 어떨까?!

만약에 여러분의 삶과 신앙이야기가 성경에 그대로 가감없이 기록되어진다면 어떻겠습니까?!

참 두렵고 떨리지 않습니까? 교회에서 보여지는 모습 말고, 일상에서 보여지는 모든 일들이 성경에 기록된다고 생각해보십시오. 내가 생각하고, 마음에 품었던 모든 것이 그대로 글로 기록된다면, 여러분은 괜찮으십니까?!

반면교사 라는 말이 있습니다. 잘 못된 것을 보고, 반대로 교훈을 얻고 배우는 것을 이르는 말입니다.

우리가 신앙인으로서 크리스천으로서 아침이든, 밤이든 상관없이 하나님 앞에 온전히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코람데오~ 하나님 앞에 서서 사는 삶. 그 삶은 진실하고, 최선을 다하고, 날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입니다. 내 힘으로가 아닌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는 삶입니다. 그러한 은혜가 저와 여러분에게 있기를 소망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임마누엘의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의 인생에 아침과 밤이 있습니다. 찬란한 아침과도 같은 삶을 살고 있는 이가 있다면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게 하시고, 밤과 같은 절망의 삶을 살고 있다면, 우리의 끝이 부활의 아침처럼 찬란할 것이란 믿음으로 어둠을 헤쳐 나갈 수 있는 힘을 부어주옵소서.

우리의 인생의 성경책에 신실하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고, 기쁨이 된 사람이라고 쓰여지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옵소서.

거룩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