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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들

복음의 긴박성(창세기 19장)

"복음의 긴박성과 은혜를 얻은 롯

창세기 191~ 11

복음서를 읽어보셨습니까? 사복음서 중에 가장 먼저쓰여진 복음서는 마가복음입니다.

마가복음에 보면, 특별히 많이 나오는 접속사가 곧, 즉시입니다.

마가복음 110

곧 물에서 올라오실 쌔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

12절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자라

17-18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곧 그물을 버려두고 좇으니라

마가복음에는 복음의 긴박성이 이 접속사 하나만으로도 담겨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곧 오시리라는 그 긴박감. 초대교회에는 그러한 긴박감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재물을 다 팔아서 함께 통용하며 생활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복음의 긴박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존번연의 천로역정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기독교 고전인데요. 안읽어보신 분들은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에게 가는 길을 순례로 표현한 우화입니다. 주인공 크리스천은 어느 날 하나님으로부터 도시가 멸망할 것이라는 경고를 받습니다. 가족과 이웃에게 이 소식을 전하지만 미쳤다는 비난만 돌아옵니다. 크리스천은 혼자 예루살렘 성을 찾아 나서면서 겪는 이야기를 소설로 써놓은 것입니다.

주인공 크리스천이 도시가 멸망할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는 가족과 이웃들에게 그 소식을 사실대로 전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그 말을 믿지 않았고, 도시를 떠나려고 했을 때 가족과 자녀들은 크리스천을 붙잡고, 돌아오라고 소리쳤습니다. 크리스천은 자신의 두 귀를 막고 순례의 길을 향해 달려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한 긴박감이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에도 나오고 있습니다.

13-14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그들에 대하여 부르짖음이 여호와 앞에 크므로 여호와께서 우리로 이 곳을 멸하러 보내셨나니 우리가 멸하리라

롯이 나가서 그 딸들과 정혼한 사위들에게 고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 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 사위들이 농담으로 여겼더라.

 

초대교회에 성도들은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복음을 들고 살았습니다. 그들의 삶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고, 그들의 인생이 변화되었습니다. 지금 예수 믿고 새롭게 되지 않으면 자신의 영혼은 끝이고, 멸망할 것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 당시에 이러한 복음을 믿는 이들이 사도였다면, 믿지 않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유대인들과 제사장, 서기관들이었습니다. 천로역정에도 그 소식을 듣고, 믿는 사람이 크리스천이었다면, 믿지 않는 이들은 그의 가족과 이웃들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에도 그 소식을 듣고 믿은 사람은 롯과 그의 가족이었고, 믿지 않는 이들은 소돔백성과 그의 두 사위였습니다.

이것은 단순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에, 복음의 소식에 긴박하게, , 즉시로 반응하는 사람이 있고, 느긋하게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반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성도들은 세월아, 네월아 하는 사람들 중의 하나인 것 같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주의 말씀을 들어도 아무런 변화가 없습니다. 영적인 변화가 없고, 인생의 변화도 없습니다. 말씀의 씨앗이 심겨져 삼십배, 육십배, 백배의 열매를 맺기보다는 그냥 땅 속에 한 달란트를 묻어 두었다가 돌려준 하인과도 같습니다.

오늘 말씀 14절에 보니까 롯의 사위들은 롯의 말을 농담으로 여겼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으로 듣는 이들은 삶에 변화가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귀기울이고, 반응하고, 가슴에 새긴 사람들은 그 자리에 있을 수가 없습니다. 가슴에 불이 일고, 내가 살고자, 내 영혼이 살고자 병원으로 달려가고, 주님께 매달리고, 산으로, 소알로 뛰쳐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롯이 그랬고, 천로역정의 크리스천이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농담 같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할 준비가 되셨습니까?

한국 교회가 침체기에 빠지고, 교회가 힘을 잃어가는 그 이유 중에 하나는 이러한 복음의 긴박성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긴박성, 말씀의 긴박성, 믿음의 긴박성을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복음의 긴박성을 회복하면 우리의 삶에 나타나는 현상이 있습니다. 그것은 영적인 변화입니다. 생각의 우선순위가 바뀌고, 성격이 바뀌고,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바뀝니다. 행동이 바뀝니다. 인생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오늘 새벽을 깨우신 여러분에게 이러한 변화가 있기를 바랍니다. 영적인 성장이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한 사람은 살지만, 그렇지 못했던 두 사위와 소돔백성들은 멸망의 자리에서 죽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여호와의 천사에 의해 롯과 그의 아내와 두 딸은 멸망의 도시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말씀 15- 16절 말씀 함께 읽습니다.

15 동틀때에 천사가 롯을 재촉하여 가로되 일어나 여기 있는 네 아내와 두 딸을 이끌라 이 성의 죄악 중에 함께 멸망할까 하노라

16 그러나 롯이 지체하매 그 사람들이 롯의 손과 그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 밖에 두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인자를 더하심이었더라

롯과 그의 가족들은 천사들에 의해서 생명의 길로 이끌림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구원을 받는 이유가 16절에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인자를 더하심이었더라..

하나님께서 롯에게 인자와 사랑을 베푸셨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사람의 중보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우리 1929절 말씀 같이 읽습니다.

29 하나님이 들의 성들을 멸하실 때 곧 롯의 거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어 보내셨더라.

하나님이 롯을 구원한 것은 아브라함을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29절에 나오고 있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롯 스스로는 그렇게 한 게 별로 없습니다. 물론 두 천사들을 영접했고 대접했습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롯이 구원을 받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은혜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단편적으로 보면, 롯과 그의 가족은 아브라함 때문에 살았고, 그리고 소알이라는 작은 성은 롯 때문에 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읽는데 문득 하나님이 나를 봐서 우리 가족을 살려주시고, 하나님이 나를 봐서 맡겨진 영혼들의 삶이 살아나는 역사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제 개인적인 바램으로는 여러분 때문에.. 가정이 살아나고, 자녀들이 예수 믿겠다고 결단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 믿는 우리 때문에 하나님이 영광받으시고, 세상이 살만한 곳이 되고, 민족이 살아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때문에라도 교회가 오고 싶고, 우리 때문에 기도가 끊이지 않고 하는 놀라운 일들이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살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우리가 멸망하지 않을 길이 있습니다.

우리의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기 때문입니다.

디모데전서 25절에 이렇게 나옵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오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예수님이 우리의 중보자가 되어 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멸망을 피하고, 살아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잘나서, 우리가 능력있어서, 우리가 정결하고 의로워서가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중보자가 되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종교개혁의 세 개의 모토, 기치, 슬로건이 있습니다. 오직 믿음(sola fide), 오직 성경(sola scriptura), 오직 은혜(sola gratia),입니다. 오직 은혜.. 우리의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롯이 구원 받은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 1510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가 저와 여러분에게 늘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우리에게 오늘도 말씀으로 깨우쳐주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하나님 말씀에 반응하고, 변화되는 복음의 긴박성을 회복하길 원합니다. 말씀 듣고 변화되는 은혜를 부어주옵소서. 나의 나된 것은 오직 주님의 은혜입니다. 혹시 나의 공로, 나의 능력, 나의 힘으로 살아간다고 자만하지 않도록 저희를 붙들어 주시고, 늘 겸손하게 주의 은혜만을 구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중보자 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