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설교들

세례요한과 예수님(마태복음 14장)

세례 요한과 예수님

마태복음 141~ 12

분봉왕 헤롯이 예수님의 소문을 들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이스라엘은 세 개의 나라로 분열되었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나기 전에 헤롯대왕이 있었는데 그가 죽자, 나라가 세 개로 나눠졌습니다. 헤롯 안티파스, 그 동생 빌립, 아르켈라오 이렇게 세 사람이 분봉왕이 되었습니다. 헤롯은 갈릴리와 베뢰아 지역, 빌립은 유대와 사마리아, 아르켈라오는 북부 요르단 지역을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복음서에 마태, 마가, 누가, 요한 4복음서로 이뤄져있습니다.

복음서를 보면 중요한 사건들은 4복음서에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이 그렇구요. 오병이어의 기적에 관한 이야기가 4복음서에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복음서에 초반부에 보면, 세례 요한에 관해서 4복음서 모두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왜 기록되어 있을까요? 가나의 혼인잔치는 요한복음에만, 사마리아 우물가 여인은 누가복음에만 적혀 있는데 왜 세례 요한에 관해서는 4복음서에 모두 기록되어 있을까요?

세례 요한과 예수님의 관계가 그만큼 특별했기 때문입니다. 세례 요한은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광야의 외치는 소리입니다. 세례 요한은 분봉왕 헤롯왕도 어쩌지 못할 명성을 가진 선지자였습니다. 민중들의 지지는 대단했고, 바리새인들이나 군인들도 세례요한에게 와서 하나님의 뜻을 물었습니다. 그 세례 요한이 인정한 분이 예수님이었습니다.

자신은 예수님의 신발끈을 묶는 것도 감당하지 못하겠다고 고백합니다. 예수님을 보고, 그는 흥하여야 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고 말합니다.

길을 만들 때 가장 먼저 해야하는 일이 평탄화 작업입니다. 산은 뚫고, 낮은 곳은 높이고, 흙이 없으면 갖다가 채워야 됩니다. 나무나 돌이 있으면 다 치워야 하고, 이 기본 바탕을 다지는 게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길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본과 원칙을 지키는 게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더 어렵습니다.

주일 성수 하는 게 쉽습니까?! 쉽지 않습니다. 가족 애경사 생기고, 건강에 염려생기고, 자녀들 일생기고, 해외 나갔다 오고 하면 주일성수하는 거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주일성수를 생명처럼 여기고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본이니까요.

세례 요한이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이 기본을 닦는 일을 했습니다.

회개하라!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느니라!” 선포했습니다. 이 기본 위에 예수님의 사역이 더해지자, 말씀에 권위가 생기고, 민중들도 예수님을 따릅니다.

예수님은 실제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세례를 받자 성령이 비둘기같이 임해서, 하늘에서 음성이 들립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가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예수님의 사역의 시작은 세례요한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맨유에서 7년동안 활약한 박지성이 세계적인 클래스의 선수가 되기까지 엄청난 노력도 하고, 훈련도 했지만, 히딩크 감독이 없었다면, 지금의 박지성은 없었을 것입니다.

히딩크 감독처럼 예수님에게 중요한 분이 세례 요한이었습니다. 그리고 세례 요한과 관계가 어떠했는지 알려주는 결정적인 말씀이 오늘 본문에 나옵니다.

1412절 말씀 함께 읽습니다.

요한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가져다가 장사하고 가서 예수께 고하니라.”

예수께 뭐했다구요? 고했다고 나옵니다.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한테 부고를 전합니까?

마가복음 114절에 보면, 예수님이 사역을 시작하신 때가 나옵니다. 찾아서 함께 읽겠습니다.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가라사대 대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예수님이 사역을 시작하신 때는 세례 요한이 잡힌 후에 시작했다고 나옵니다.

세례 요한과 예수님의 관계를 잘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우리는 어제 옛것과 새 것을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에 관해서 이야기 나눴습니다. 세례 요한이 옛 것이라면, 예수님은 새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장차 올 엘리야 선지자 였고, 예수님은 그리스도셨습니다.

그래서 헤롯은 예수님의 소문과 이야기 속에서 세례 요한을 발견하고 놀라서 자기가 죽인 세례 요한이 살아났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두 번째로 세례 요한이 죽는 이야기를 보면 한 가지 얻을 수 있는 교훈이 있습니다.

146절부터 11절까지 함께 읽습니다. 마침 헤롯의 생일을 당하여... 그가 제 어미에게 가져가니라.”

여기서 헤롯의 행동을 보면 깨달을 수 있는 교훈이 있습니다. 그것은 감정에 취한 자신의 말 한마디 때문에 세례 요한을 죽였다는 것입니다.

이런 경구가 있습니다.

말이 입 안에 있을 때에는 내가 말을 지배하지만, 말이 밖으로 튀어 나왔을 때에는 말이 나를 지배한다.”

말하기 전에는 내 입 하나만 막으면 되지만, 일단 말이 되어 밖으로 뱉어지면 뒷감당이 어렵습니다.

행동하기 전에는 내 몸 하나만 조심하면 되지만, 일단 일이 행해지고 나면 뒷감당이 어렵습니다.

말 한마디 한마디를 조심해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헤롯의 가벼운 맹세로 인해 세례 요한의 생명이 날아갔습니다. 이것은 2000년 전에 있었던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 주변에 아이들을 보면 얼마나 무서운지 모릅니다. 애들 욕하는 거 들어보신 적 있습니까? 무섭습니다. 왜 애들이 자살하고, 상처입고, 힘들어하는지 아십니까? 이 말 때문입니다. 친구들의 말, 부모님의 말, 선생님의 말 때문에 힘들어합니다. 말은 용기를 주고, 위로를 주지만, 말로 인해 생명을 헤치기도 합니다.

오늘 하루를 살아가실 때 우리의 말과 혀를 잘 다스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생명을 해치고, 상처 주는 말보다, 사람을 살리고, 축복하는 말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자신의 말보다 하나님의 말이 우리의 입술에 머물 때에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삶에서 기본과 원칙이 중요함을 늘 잊지 마시고, 말로서 생명을 살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