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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들

당신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마태복음 12장)

당신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마태복음 121~ 13

오늘 본문 말씀은 안식일에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유대교의 안식일은 사실 토요일입니다.

그래서 제칠일안식일교는 토요일에 예배를 드려야 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기독교는 주일에 예배를 드립니다. 주일은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입니다. 죽음을 넘어 다시 살아나는 믿음과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혹시 죽을 것같은 위기에 놓여 있습니까?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을 통해 다시 살아나는 부활의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유대인에게 안식일은 특별합니다. 엄밀히 말하면 금요일 해질녁부터 토요일 해질녁까지를 안식일로 지키는데 그 날에는 문밖에 출입을 안합니다. 그 정도로 철저히 안식일을 지킵니다. 그들의 율법에 대한 열정은 정말 대단할 정도입니다.

오늘 말씀 1,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1 그 때에 예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가실 쌔 제자들이 시장하여 이삭을 잘라 먹으니 2 바리새인들이 보고 예수께 고하되 보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

오늘 말씀을 잘 읽어보면 한 가지 알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안식일에 제자들이 배고파서 밀이삭을 잘라 먹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오늘 2절 말씀에 바리새인들이 보고 예수께 고하되라고 나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과 제자들이 율법을 범하는지, 죄를 범하는 지 유심히 보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감시한 것이죠. 그리고 제자들이 밀이삭을 잘라 먹자, 바로 예수님께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한다고 따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도 꼭 이런 바리새인같은 분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잘못하기만 하면 벌떼같이 일어나서 물고 늘어집니다. 실수하기가 무섭게 우리를 정죄합니다. 때로는 이들을 통해 마음 상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요. 뒤집어서 생각해보면 바리새인이 우리를 믿음 안에서 살도록 돕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한 부자가 한 섬에 푸른초원을 조성하고 토끼와 사슴을 풀어놨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눈빛이 흐려지고, 털에 윤기가 사라지면서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습니다. 수의사를 불렀지만, 그도 이렇게 좋은 환경에서 병을 앓는 이유를 찾지 못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부자는 마을의 현자를 찾아갔습니다. 부자의 이야기를 들은 현자는 크게 웃은 후에 섬에다가 늑대 한 마리를 풀어놓으라고 하였습니다.

섬에 늑대를 풀어놓자, 사슴과 늑대는 눈빛이 살아나고, 털에 윤기가 돌면서 다시 건강을 회복했습니다. 토끼와 사슴의 병은 환경이 너무 좋아서 생기는 병이었습니다. 사력을 다해 달리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기에 삶에 간절함이 없습니다.

하지만 늑대가 나타나자 그들은 사력을 다해 달리기 시작하고, 이전과는 더 열심히 살게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바리새인들의 눈을 통해 우리들도 믿음의 옷깃을 여밀 수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2장에 보면 사도 바울은 자기 육체에 가시가 있음을 고백합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그 가시를 사단의 사자라고 말하면서 주님께 3번이나 가시가 떠나가게 해달라고 간절히 구했는데 주님께서는 사도 바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우리의 삶 속에 가시와도 같은 존재가 있습니까? 질병이 있습니까? 고난이 있습니까?

우리가 약할 때 더욱 주님 의지하면서 강해질 줄 믿습니다. 사도 바울도 고통 가운데서도 끝까지 주님을 의지하며 살았습니다. 주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족합니다 고백하시면서 날마다 깨어있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의 정죄에 대해 오늘 본문 7절에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면 무죄한 자를 죄로 정치 아니하였으리라.

이 말은 안식일의 정신, 안식일의 본질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형식이 아니라 마음, 진심을 원합니다. 율법보다는 생명이 더 귀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늘 껍데기와 체면을 중시하며 살 때가 참 많습니다. 더 귀한 것을 놓칠 때가 있습니다.

카네기 멜론 대학의 랜디 포시 교수가 했던 마지막 강의가 있습니다. 췌장암으로 인해 47세의 나이로 인생을 마감한 랜디포시는 시한부 인생을 살면서마지막 강의동영상을 남겼습니다. 그 강의에서 자신의 어릴적 이야기를 합니다. 자신이 어렸을 때 부모님은 자신의 방 벽에다가 낙서를 하더라도 꾸짖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허락해줬다고 말합니다.

만약 여러분의 자녀들이 방을 지저분하게 어지럽히고, 벽에 낙서를 했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벽보다는 아들이 더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강의 끝에 자신이 왜 이 강의를 한 이유를 밝힙니다. 언젠가는 자신의 세 아들이 자신의 강의를 볼 것이기 때문이랍니다.

우리는 어떠한 인생을 사느냐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어떠한 사람으로 기억되는 지도 중요합니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십시오. 여러분의 자녀들이 우리 부모님은, 우리의 자녀들은 정말 신실한 분이셨어, 정말 훌륭한 분이셨어~ 라고 말할 정도의 삶을 살고 계십니까?!

그냥 적당히 만족하며 살지 아니면, 후에 정말 믿음의 사람으로 기억될 지는 오늘의 삶에 달려 있습니다. 정말 나중에 우리 모두가 자녀들에게 사랑과 믿음의 사람으로 기억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안식일에 손마른 자를 치료해 주셨습니다. 사람의 생명이 더 귀했기 때문입니다.

왜 안식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몰래 일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날 하루를 일하지 않으면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가난한 자들, 병자들, 어려운 이들이 있습니다. 쉬고 싶어도 쉴 수 없습니다.

사실 주일에 종종 예배를 빠지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주일에도 직장에 나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주일을 지키지 못할 정도로 정말 눈코뜰새 없이 바쁘게 살아가는 이들에게 예수님은 마태복음 1128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예수님은 안식일의 주인이십니다. 예수님 만남을 통해, 예수님의 품에 쉼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13절에 이렇게 나옵니다.

이에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손을 내밀라 하시니 저가 내밀매 다른 손과 같이 회복되어 성하더라.

예수님은 우리의 부족한 것, 연약한 것까지도 온전히 회복시켜주시고, 품에 안아 주십니다. 예수님은 대적자인 바리새인들에게 친절하게 왜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하는 지 분명하게 알려주십니다. 좀 깨닫고 변화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면 회복의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손마른 자가 회복되어 성하게 된 것처럼 이번 한주간도 회복의 은혜가 저와 여러분에게 있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