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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들

빈 들에서 일어난 오병이어(마태복음 14장)

빈 들에서 일어난 오병이어

마태복음 1413~ 21

오늘 본문 말씀은 오병이어의 기적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너무나 유명한 말씀이고, 중요한 말씀입니다. 4복음서에 공통적으로 기록된 기적에 관한 이야기는 이 오병이어밖에 없습니다.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오병이어로 오천명이 넘는 사람들을 먹이신 기적이야기입니다.

오병이어 말씀처럼 4복음서에 공통적으로 나오는 이야기는 십자가와 부활에 관한 말씀, 그리고 세례 요한에 관해 쓰여진 말씀이 있습니다.

얼마 전만해도 신학자들은 성경을 읽을 때 분석을 했습니다. 단어가 몇 번 나오고, 인물별로 시대별로 이성적인 눈으로 갈기 갈기 나눴습니다. 그렇게 하다보니까 성경에 남는 게 없었습니다. 숲에서 나무 하나만을 보고, 그것을 잎과 줄기와 몸통과 뿌리로 나눠버렸으니까요. 하지만 숲을 보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전체를 보지 않으면 부분이 이해가 안되는 거에요.

우리가 오늘 읽은 이 오병이어의 말씀 전에 나온 이야기가 있습니다.

세례 요한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분봉왕 헤롯에 의해 세례 요한은 죽음을 당하게 됩니다.

12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요한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가져다가 장사하고 가서 예수께 고하니라.”

왜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세례 요한의 죽음을 알려줬을까요? 보고했을까요?

세례 요한과 예수님은 특별한 관계에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은 유일한 사람은 세례 요한입니다. 세례 요한은 그 당시 엄청난 선지자 였는데 그 사람이 예수님을 보고, 신들메를 메는 것도 감당치 못하겠다고 이야기합니다. 예수님은 흥하여야겠고, 자신은 쇠하리라 이야기합니다. 주님의 오실 길을 예비했던 세례 요한..

그 요한의 죽음 소식을 듣고, 예수님의 마음이 어떠했는지는 오늘 본문에서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오병이어의 기적에 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 배경에는 세례 요한의 죽음이 있습니다.

우리 13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배를 타고 떠나사 따로 빈 들에 가시니 무리가 듣고 여러 고을로부터 걸어서 좇아간지라.”

예수님이 세례 요한의 부고를 듣고 어디로 갔습니까? 빈 들입니다.

빈 들은 정확히 어디입니까? 헬라어 원어를 보니까 에레몬” “광야로 나와 있습니다 .

말씀 한 절 찾겠습니다. 누가복음 31~2절 말씀

디베료 가이사가 위에 있은 지 열다섯 해 곧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으로, 헤롯이 갈릴리의 분봉왕으로, 그 동생 빌립이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의 분봉왕으로, 루사니아가 아빌레네의 분봉오ᅟᅪᆼ으로,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빈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

방금 읽은 말씀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어디에서 임한다고 나옵니까? 빈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 세례 요한에게 임했다고 나옵니다. 여기서 빈들이란 말도, "에레모" - 광야를 뜻합니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간 곳이 빈 들입니다. 광야입니다. 그 곳은 요한이 머물던 곳이고,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 곳입니다. 세례 요한의 자취와 추억, 외침이 있는 곳입니다.

어쩌면 그곳에서 예수님은 왜 하나님이 세례 요한을 데려가셨을까?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왜 하나님이 데려가셨을까?

우리는 삶 속에서 이해가 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정말 얼마 살지도 않고 목숨을 잃은 아이의 죽음 앞에서, 정말 선하고 착하고 존경받는 이의 죽음 앞에서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해가 되지 않아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묻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려움과 아픔 가운데서도,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데요 그 때 눈에 보이는 것이 있었습니다.

말씀 13~ 14절 말씀 함께 읽습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배를 타고 떠나사 따로 빈 들에 가시니 무리가 듣고 여러 고을로부터 걸어서 좇아간지라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인을 고쳐주시니라.”

이 말씀을 읽으면서 저는 이미지로 상상해 보았습니다.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예수님이 세례 요한의 죽음 소식을 듣고 빈 들로, 광야로 나갔습니다. 슬픔에 젖어 하나님 뜻을 구할 때 문득 눈 앞에 큰 무리가 보입니다. 그 중에 몸이 불편하고 병들었는데도 빈 들까지 자신을 좇아 왔습니다. 마음에 긍휼의 마음,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일어났고, 예수님은 그들을 고쳐주시고, 오병이어로 밥을 먹여 보내신 것입니다.

장례식장에서 슬픔 가운데 있던 사람이, 남편을 잃고, 아내를 잃었을 때 얼마나 힘듭니까?! 얼마나 절망스럽습니까.. 그런데 그 때 울다 지쳐있는데 곁에 누가 보이는 거에요.

자녀들이 엄마 손 붙잡고 울고 있습니다. 죽고싶은 마음 뿐이지만, 자식들 보니까 살아야 된다는 걸 깨닫습니다. 자기마저 죽으면 이 어린 것들 어떻게 할지 몰라 절망과 아픔을 딛고 일어서는 거에요.

예수님의 눈에도 세례 요한의 죽음 앞에 참담한 마음 뿐이었겠지만, 눈을 들어 보니 많은 무리가 자신의 앞에 있었습니다. 병든자, 배고픈자, 아이들, 헐벗은 자, 외로운 자, 이 사람들이 눈앞에 있어 마냥 슬픔 가운데 있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보고, 하나님의 뜻을 알았습니다. 그들을 고치고, 배부르게 먹이는 것, 자신이 생명의 떡이 되고, 살이 되어 배부르게 먹이는 것입니다.

말씀 16절에서 21절까지 다시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제자들이 가로되 여기 우리에게 있는 것은......... 먹은 사람은 여자와 아이 외에 오천 명이나 되었더라.”

예수님은 제자들을 일러 갈 것 없이 지금 가지고 있는 것으로 먹을 것을 주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우리가 가진 것도 별로 없지만,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뿐이지만, 있는 것 전부를 내어 놓아 나눕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예수님께서 축사하시고 떼어주신 것이지만, 그 전에 우리의 가진 것을 모두를 위해 내어놓는 것입니다.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사랑의 마음으로 내어 놓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어린 자녀들, 어려움 당한 이들을 위해 긍휼한 마음으로 내어 놓을 때 오병이어의 기적이 나타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헤롯에게 세례 요한의 복수를 하고, 슬픔가운데 빠져있고, 엎드려 절망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는 빈 들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모든 게 다 마련되어진 그런 곳이 아니라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 빈 들에서 역사는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 곳에 예수님이 가시니, 수많은 무리들이 좇아 오고, 오병이어의 기적이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먹여주시는 분입니다. 이 시간 슬픔 가운데 계신 분이 있다면, 절망 가운데 계신 분이 있다면, 다시 일어서시고, 생명의 떡으로 오신 주님을 만나시고,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께서 채워 주실 것입니다.

빈 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는 곳입니다 . 세례 요한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자리입니다. 이 성전이 빈 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성전이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는 자리가 되길 소원합니다.

예수님께 오병이어의 축복을 받고, 배부르게 먹고, 고침받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따라 빈들로 왔습니다. 먹을 것이 있는 마을로 들어간 것이 아니라, 음식을 살 수 있는 저 세상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계신 빈 들로 왔습니다.

예수님이 계신 곳,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는 그 곳에서 오병이어를 맞볼 수 있습니다. 새벽을 깨워 신앙을 지키신 것처럼 이 성전을 채우시고, 기도로 지키시며, 오병이어의 축복과 고침받고 나음없는 치유의 역사를 경험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