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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들

목수되신 예수님(마태복음 13장)

목수되신 예수님

마태복음 1351~ 58

예수님은 씨뿌리는 비유와 하늘나라 비유에 관해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후에 오늘 말씀처럼 질문을 던져서 확인하십니다.

“51절 이 모든 것을 깨달았느냐 하시니 대답하되 그러하오이다.”

예수님의 물음은 많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물음은 자기 스스로 생각하게 하고, 다시금 확신을 가지고, 자기의 믿음을 확증하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21장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 베드로에게 묻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무려 세 번이나 물으십니다.

제자 베드로가 진심으로 예수님을 사랑하는지 자기 스스로 확신하게 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믿습니까? 그 믿음대로 사십시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사랑합니까? 그 사랑대로 사십시요!!!

할렐루야! 예수님의 물음은 우리 스스로의 믿음을 돌아보고 확신하게 만듭니다.

예수님은 오늘 말씀 전에 13장의 내용을 보면, 씨뿌리는 비유와 하나님 나라에 관한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깨달았느냐?? 라고 물으십니다.

Do You Understand? 이해했냐고 묻는 것이죠! 왜냐하면 이 내용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어 오는 집주인과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새것은 무엇이고, 옛것은 무엇입니까? 새것은 복음이고, 옛것은 율법입니다. 하지만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은 새것과 옛것을 같이 내온다고 말합니다 이 말을 다른 말로 하면, 둘 다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복음은 율법의 완성이기 때문입니다. 안식일법도 중요하지만, 그 안식일의 본질을 지키고, 생명을 살리는 복음도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이 사실을 비유를 통해 단 한마디로 제자들에게 확실하게 요약정리해준 것입니다.

한 친구가 어느날 자신의 아호를 지었데요. 뭐냐고 물었더니.. 포월이랍니다.

무슨 뜻인 고 하니, 초월은 그냥 한계나, 단점을 극복하고 뛰어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면, 포월은 자신의 단점이나 과거의 모든 것까지 포함해서 뛰어넘는 폭넓은 의미를 지니고 있답니다. 그래서 포월 이랍니다. 포월 아무개~

오늘 말씀처럼 옛것을 가지고 포월하는 믿음의 역사를 예수님은 선포하신 것입니다.

옛것이 없이는 새것도 없습니다. 과거가 없이는 현재도, 미래도 없습니다.

과거가 부끄럽습니까? 하지만 그 과거 없이는 지금의 나도 없습니다. 부모님이 부끄럽습니까? 하지만 부모님 없이는 지금의 나도 없습니다. 율법에 매어 있습니까? 하지만 그 율법없이는 지금의 복음도 없습니다.

어느 한 쪽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것들을 볼 수 있는 믿음의 눈을 갖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고향은 나사렛입니다. 그 곳에서 자라셨다고 성경에 보면 나와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니까 알 수 있는게 있습니다. 예수님은 고향에서 배척받으셨고 예수님은 목수의 아들이었습니다. , 예수님도 목수의 직업을 갖고 계셨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진실로 목수셨습니다. 나무를 다듬고, 깎아서 의자를 만들고, 책상을 만듭니다. 가구를 만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목수십니다. 그냥 거치른 나무 였던 우리를 다듬고, 깎아서 쓸모 있는 인생이 되게 하셨습니다. 나무가 목수를 만나지 않으면, 그냥 나무일 뿐입니다.

하지만, 목수를 만날 때 그는 의자로, 책상으로, 가구로 다시 태어나게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거친 인생을 다듬어 주시고, 쓸모 있게 해주십니다. 그 주님께 우리를 맡길 때 우리의 인생도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을 주님께 맡기십시오. 주님을 의지하십시오. 주께서 새롭게 해주실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고향인 나사렛 마을 사람들은 예수님을 배척했습니다.

우리 57~58절말씀 함께 읽습니다.

예수를 배척한지라 예수께서 저희에게 말씀하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 하시고

저희의 믿지 않음을 인하여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치 아니하시니라.“

예수님은 고향에서 존경받지 않으실 것을 알면서도 고향에 가셨습니다.

왜 가셨을까요?? 선지자가 고향과 자기 집에서 존경받지 못할 것을 아심에도 왜??  단순히 고향 나사렛을 사랑하셨기 때문일까요??

예수님이 고향에 돌아가서 말씀 전하신 이유는 52절 말씀에 나와 있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

저는 오늘 52절 말씀처럼 옛것과 새것을 곳간에서 내어오는 집주인이 누구인지를 알려주시기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옛것과 새것, 예수님의 옛시절과 새시절을 하나로 묶어서 나사렛에서 말씀으로 복음을 증거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고향사람들이 다 놀랬습니다. 예수님의 지혜와 능력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고향사람들은 옛것만을 믿었습니다. 어렸을 적 예수만을 보고,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를 배척한 이들은 예수님의 능력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옛것을 넘어 새 것을 받아들인 이들에게는 많은 능력을 행하십니다.

어부였던 베드로와 안드레가 예수님의 부르심을 따르지 않았다면, 그대로 평생 어부로 지냈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을 따랐고, 사람을 낚는 어부,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세관에 앉아 있던 세리 마태가 주님을 따르지 않았다면, 그는 평생 매국노라고 욕먹고 사는 세리로 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을 따랐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무언가 새롭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니고데모가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당시 산헤립의 의원이었던 그 니고데모가 밤중에 찾아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번뇌와 고민을 했을까 생각해보십시오. 하지만, 후에 니고데모는 자신의 명예를 걸고 예수님의 편에 서는 말을 하게 됩니다. 밤중이 아니라, 다른 많은 바리새인들이 있는 곳에서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목수되신 예수님을 가슴에 새롭게 모시기로 작정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시고, 주님으로 모신다면,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고, 많은 능력과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을 배척하면, 그 어떠한 능력도 경험하지 못합니다. 오늘 우리의 목수되신 예수님을 가슴에 모시고, 새롭게 태어나는 복된 하루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