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설교들

성 도덕 브레이크(신명기 22장)

성 도덕 브레이크

신명기 2213~30

 

오늘 말씀은 혼인한 처녀에 관한 규례와 통간죄, 강간죄 등 다양한 성도덕에 관해서 실제적인 예를 들면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기독교 역사에서 보면, 죽음에 이르는 7가지 죄 중에 한가지가 성도덕, 즉 정욕에 관한 죄입니다.

프레드릭 뷰크너는 정욕은 갈증으로 죽어가는 사람이 소금을 찾아 헤매는 격이라고 말했습니다. 정욕으로 인해서 채울 수 없는 더 무서운 갈증의 상태, 더 깊은 나락으로 빠져드는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히 해야할 것은 성욕과 정욕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성욕은 그 자체가 죄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남성과 여성을 만드시면서 성적 욕망을 인간에게 선물로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욕은 지극히 이기적인 성욕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것을 간음이라고 하셨습니다.

쉽게 말하면 정욕은 상대의 인격과 삶, 내면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상대를 자신의 즐거움을 위한 대상을 취급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신명기는 그 성도덕, 정욕에 대한 규례를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놀랍게도 가장 거룩한 책인 성경에 보면, 사람의 치부와 성적인 이야기도 가감없이 하고 있습니다.

사무엘하 11장에 보면 다윗왕이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는 그 잘못도 그대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보통 왕의 역사는 좋은 쪽으로 쓰기 마련입니다. 왜냐하면 후세가 그 기록을 보고, 말씀을 보고 판단하거든요. 하지만 다윗에 관한 범죄까지도 가감없이 그대로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로 인해서 하나님은 다윗을 나단 선지자를 통해 꾸짖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자신이 범죄하였노라고 고백합니다.

뒤이어 사무엘하 13장을 보면, 다윗의 장자 암논이 셋째 아들 압살롬의 누이 다말을 연애하게 됩니다. 암논이 병에 걸린것처럼 앓아 누워서 시중을 들도록 다말을 유인했다가 겁탈했습니다. 그리고 다윗 왕에게 다말을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다말을 미워하여 쫓아내버렸습니다. 왕자가 아닌 남자로서 책임을 다하지 않고 자신의 욕심만 채운 것입니다.

결국에 장자 암논은 압살롬으로 인해 죽임을 당합니다.

신명기에 나온 이 율법을 암논이 알았다면, 다말에게 그렇게 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이 신명기에 나오는 말씀은 지금도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만듭니다.

뉴스를 통해 드라마를 통해 얼마나 많은 불륜과 성도덕이 잘못되어져가고 있는 지를 보게됩니다. 문제는 우리가 아무 생각없이 웃으며 그런 것들을 받아들이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누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남이하면 불륜이고, 내가 하면 로맨스라고..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오늘 분명하게 쓰여져 있습니다. 성경말씀 속에서 깨달을 수 있는게 참 많습니다. 성도덕의 문제는 개인과 개인의 문제지만, 그 사건의 영향은 가정을 파괴시키고, 국가의 존패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다윗의 집안을 보십시오. 사무엘하 11장에서 우리야를 범하고 나서, 13장에서는 암논이 누이 다말을 범합니다. 15장에서는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켜서 다윗의 후궁들을 범합니다. 결국에 암논이 죽고, 압살롬도 죽고, 다윗은 가슴에 한이 맺히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처음에 다윗의 범죄가 그 자식들과 집안과 온 이스라엘에게까지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최근에 일어난 채동욱씨의 사건도 진실여하를 떠나서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봐도 그렇습니다. 당사자들과 가족들과 그 자식들은 평생 씻지 못할 죄와 억눌림과 고통에 시달리게 되는 것입니다.

정욕에 빠진 사람들의 공통점은 그 결말이 불행하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불행합니다.

정욕을 이기는 길이 있습니다. 사실 기도도 하고 말씀도 읽고 해도 참 쉽지가 않습니다.

근본적으로 정욕의 자리를 피하는 것입니다. 정욕의 유혹을 받을 만한 여건과 환경에 들어가지 않고, 그러한 상황에 부딪쳤을 때는 피하라는 것입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보디발의 아내의 끈질긴 유혹을 피하고 도망칩니다. 결국 감옥에 갇혔지만, 하나님 앞에 요셉은 범죄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요셉과 함께 하시고, 형통한 인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 자리와 상황을 피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맞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교만입니다. 그 자리를 피하십시오.

두 번째 방법은 배우자와의 친밀함을 높이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허락하신 아내와 남편을 더욱 사랑하십시오. 이것은 육체적인 그런 것들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함께 나누라는 것입니다. 결혼할 때 하나님 앞에서 맺은 사랑의 언약, 성혼을 그대로 지키며 살라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내와 남편 모두의 헌신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세 번째는 이 모든 정욕에 대한 욕망이 오는 이유는 영적 빈곤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유명한 신학자요 철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는

사람들은 인생에서 진정한 기쁨과 만족이 없을 때 그 허전함을 달래고 채우기 위한 방편으로 정욕을 추구한다고 보았다.고 말했습니다.

영적으로 빈곤하니까 그것을 눈에 보이는 육체적인 정욕에서 찾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정욕을 이기기 위해서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근원적인 기쁨, 성령 충만을 사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전도서 말씀처럼 하나님은 인간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에게서 오는 그 영원하고, 끝이 없고, 한결같은 그 사랑을 사모하시고, 삶 속에서 늘 승리하는 인생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정욕을 이길 수 있는 방법 세 가지

첫째, 그 자리를 피하라

둘째, 배우자와의 친밀함을 높이라

셋째, 영적 빈곤함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채우라

죄에서 회개하고 돌이킬 때 하나님은 그 사람을 쓰십니다. 이사야를 부르실 때도 제단 숯불에 그 입술을 대어서 깨끗케 하시고, 사용하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예수 믿는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 큰 죄를 지었지만,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잘못을 하나님께 아뢰고 회개함을 통해 이전보다 더 하나님께 쓰임받고 사랑받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