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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들

사울왕의 대관식(삼상 11장)

사울왕의 대관식

사무엘상 111 ~ 15

사무엘상 1~7장까지는 사사 사무엘에 관한 이야기가 중심을 이루고, 8~15장까지는 사울왕의 재위기입니다. 그리고 15장부터 31장까지는 다윗의 이야기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사무엘상 11장은 사울 왕의 대관식 이야기입니다.

1) 소리를 높여 울다(4)

11장의 배경은 암몬 사람 나하스가 이스라엘의 길르앗 야베스에 올라와서 진을 쳤습니다.

야베스 장로들이 우리와 언약하자, 잘해줄게~ 이랬는데 암몬 사람 나하스가 노~ 너희 오른쪽 눈을 다 빼면 OK~ 그러자 야베스 장로들이 이스라엘 온 지역에 전령을 보냅니다.

전령이 사울이 사는 기브아에 도착했습니다. 소식을 들은 모든 백성이 소리를 높여 웁니다.

눈물은 공동체의식이 있을 때 나오는 것입니다. 민족을 위한 사랑, 나라를 위한 사랑이 있을 때 웁니다.

유대인에게 한 번은 샴쌍둥이가 태어났다고 합니다. 머리가 붙고 몸은 두 개입니다. 사람들이 랍비에게 가서 샴쌍둥이가 두사람인지 한사람인지를 물어보았다고 합니다. 그러자 랍비가 약간 뜨거운 물을 한 사람 머리에 부어봐서 다른 한 사람이 아파하면 한 사람이고, 아니면 두 사람이다.

이 이야기 속에서 우리가 생각해볼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한 몸이라는 지체의식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몸된 교회라고 고백은 하지만, 누군가의 아픔과 슬픔을 함께 느끼지 못한다면, 뭔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교회가 대형화될수록 나타나는 폐해가 이런 것입니다. 함께 아파하지 못합니다. 함께 슬픔을 나누지 못합니다. 누가 누군지도 모르고 한 교회에 다니는 경우도 있습니다.

오늘 야베스의 소식을 들은 기브아 사람들은 모두 소리 높여 울었습니다. 야베스의 슬픔이 곧 자신의 슬픔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도 그러한 공동체의식이 있기를 바랍니다.

아는 사람만 가서 축복해주고 위로해주는 것이 아니라, 설령 잘 모르더라도 한 교회에 다니는 지체라면 가서 축복해주고 위로해주는 것입니다. 그 일을 계기로 더 믿음 안에 하나될 수도 있는 것이죠. 예전에 한 권사님 삼성병원에 심방을 간 적이 있습니다. 지하1층에 기독교예배실이 있는데 거기 꽉차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얼마나 위로를 받았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슬픔을 함께 나누고,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믿음이 공동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사울이 밭에서 소를 몰고 오다가 (5)

오늘 말씀에 보면 참 신기한게 있습니다. 5절 말씀입니다.

마침 사울이 밭에서 소를 몰고 오다가 이르되 백성이 무슨 일로 우느냐 하니 그들이 야베스 사람의 말을 전하니라

사울이 왕으로 제비뽑혔는데 지금 뭐하다가 왔습니까? 밭에서 소를 몰고 오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으로 뽑혔는데 그는 궁궐같은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밭에서 소를 몰고 있습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십시오. 대통령당선인이 되었는데 이제 정치구상을 하고, 나라를 위해 일할 것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평소처럼 소를 몰고 밭에서 일하다가 오는 것입니다. 처음 왕정체제이기 때문에 왕으로 뽑혔다고 해서 뭐 크게 달라질 것이 없습니다. 그냥 평소대로 하다가 왕이 되었다면 이제 나가서 전쟁도 하고 싸우면 되는 것입니다. 왕에 대한 개념 자체가 별로 없는 것입니다. 이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우리 나라 국회의원이 되면, 받는 특권이 약 200가지 정도가 된다고 합니다. 우선 보좌관이 7명이 붙습니다. 자동차가 나오고 전용사무실과 공항이용시 전용출입문이 따로 있습니다. 해외에 나가면 해외 공관들이 따로 대접을 합니다. 일을 하지 않아도 연봉은 14000만원 정도 되고, 의원직 3개월만 하면 의원연금을 평생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처럼 의원이 받는 혜택은 세계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든다고 합니다. 자연스럽게 어깨에 힘이 들어갈만 합니다. 선거 때는 종같지만, 당선되면 주인노릇하는 것이 국회의원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울은 왕으로 뽑히고도 밭에 가서 일합니다. 스피노자란 철학자가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해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말을 했습니다.

아무리 큰 일이라도 하루 하루 우리가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감당할 수 없는 것입니다. 직장에서든 가정에서든 우리가 맡겨진 일을 제대로 할 때 하나님이 기뻐하실 줄 믿습니다. 사랑의 교회에서 제자훈련생을 뽑을 때 테스트하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아무 예고 없이 목회자가 집을 방문했을 때 집이 난장판이라면 제자훈련을 받을 수 없다고 합니다. 평소에도 항상 정리 정돈, 맡겨진 일을 감당하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평소에 늘 하던 일도 제대로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마침...역사를 주관하신 하나님(5)

성경을 읽다보면 마침.. 이라는 말이 나올 때가 있습니다. 그 때마다 역사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을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역사를 주관하십니다. 룻기를 보십시오.

나오미와 룻이 모압지방에 있다가 남편 죽고, 아들 둘 죽고, 며느리 하나는 모압지방에 남고 두 사람이 같이 베들레헴으로 돌아왔는데 그 때가.. 보리 추수를 시작할 때입니다. 이야...

또 룻기24절에 보면 룻이 가서 밭에서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의 밭에 이르렀습니다. “마침..” 보아스가 그 타이밍에 밭에 나와서 일꾼들을 축복하는데 룻을 만나게 됩니다. 룻기 3장에 가면 룻이 보아스 발치에 누워서 보아스에게 당신이 기업 무를 자가 된다고 합니다. 그러자 보아스는 자신보다 더 가까운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에게 물어봐야 된다고 말하고 룻에게 보리 여섯 번을 되어서 보냅니다.

룻기 41.. “보아스가 성문으로 올라가서 거기 앉아 있더니 마침... 보아스가 말하던 기업 무를 자가 지나가는지라

마침... 하나님의 절묘한 타이밍입니다. 모세가 석달을 기르다가 갈대상자에 넣어서 눈물로 강물에 흘려보냅니다. 그런데 그 타이밍에 애굽의 공주가 강가에 나와서 갈대상자를 발견합니다.

에스더서에 보면 하만이 모르드개를 자신의 뜰에 세운 나무에 매달려고 계획합니다. 바로 그 날 밤에 왕이 잠이 오지 않아서 역대일기를 꺼내서 읽게 합니다. 모르드개가 왕을 암살하려던 음모를 고발한 것을 왕이 듣고 무슨 존귀와 관작을 베풀었는지 물어보게 됩니다. 다른 날도 아닌 하만이 모르드개를 달려고 나무를 세운 바로 그 날 밤입니다.

하나님의 절묘한 타이밍이 있습니다. 마침.. 우리가 기도하는 중에 마침 떠오르는 사람이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위해 행할 일이 생각나길 바랍니다.

사울 왕은 마침.. 일하고 돌아오다가 그 소식을 듣고 하나님의 영에 크게 감동되어 암몬족속을 쳐서 이깁니다. 그리고 길갈에서 정식으로 왕의 대관식을 치릅니다. 11장 마지막 절 15절에 이렇게 나옵니다.

모든 백성이 길갈로 가서 거기서 여호와 앞에서 사울을 왕으로 삼고 길갈에서 여호와 앞에 화목제를 드리고 사울과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거기서 크게 기뻐하니라

처음에는 소리를 높여 모든 백성이 울었지만, 마침.. 하나님의 타이밍에 사울에게 하나님의 영이 임하자 전쟁에서 승리하게 되고, 온 백성이 기뻐하게 되었습니다.

시편 3011

주께서 나의 슬픔이 변하여 내게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의 슬픔이 변하여 기쁨으로 띠 띠우게 하실줄 믿습니다. 그러한 은혜가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