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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들

사사 옷니엘과 에훗(삿 3장)

사사 옷니엘, 에훗

사사기 31 ~ 30

 

사사기는 여호수아서와 완전히 대조적인 입장에 있습니다. 여호수아서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승리한 것을 기록했다면 사사기는 여호와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비참한 비극을 경험한 이야기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사기의 주요 내용은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대적의 손에 잠깐 붙이십니다. 그러면 그들은 고통 중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그 때 급조된 사사를 일으켜서 그들을 구원하십니다. 그렇게 평안을 찾으면 또다시 죄를 집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다시 대적의 손에 그들을 붙이십니다. 그렇게 배반, 징계, 회개, 회복이라는 사이클이 7번이나 되풀이 됩니다. 그들은 축복의 따에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안식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사사기의 히브리 성경 제목은 재판관들입니다. 그래서 판관기라고도 불립니다.

사사란 여호수아가 죽고 왕정이 세워지기 이전까지 군사적, 정치적 권한을 가졌던 당시 최고의 지도자를 말합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가나안 땅에 남겨둔 이방 민족들에 관해서 나옵니다. 왜 하나님께서 완전히 정리해주시지 이방민족을 남겨두셨을까요?

1) 이스라엘을 벌하기 위해서, 2) 이스라엘의 순종을 시험하기 위해서 3)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군사로 키우기 위해서

결국 이방 민족을 남겨 놓은 것은 이스라엘 민족을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충격을 주고 아픔을 줘서라도 거룩함을 잃어버리지 않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먼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으면 그 물고기를 먹이로 하는 물고기를 잡은 어항에 넣어둔다고 합니다. 어항에 잡은 물고기만 넣어서 오래시간이 흘러 항구에 도착하게 되면 대부분의 물고기들이 죽습니다. 하지만, 어항에 천적의 물고기가 있는 어항은 몇 마리는 천적 물고기에 잡혀먹히겠지만, 모두 싱싱하게 건강한 상태로 항구까지 도착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거룩하고 온전하게 하기 위해 천적과도 같은 것들을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이스라엘의 첫 번째 사사는 옷니엘입니다. 갈렙의 조카인데 그는 바알들과 아세라들을 섬긴 이스라엘 민족이 벌을 받아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에게 8년 동안 조공을 바치며 약탈 당하게 됩니다. 한두 번도 아니고 8년 동안 그렇게 지내자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그러자 구원자를 세워 주시는 그게 옷니엘입니다. 옷니엘은 평소에는 그저 아무런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10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영이 그에게 임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어 나가서 싸울 때에 혀오와께서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을 그의 손에 넘겨주시매 옷니엘의 손이 구산 리다사임을 이기니라

여호와의 영이 임하자 능력의 사람, 이스라엘의 첫 번째 사사로 변하게 됩니다.

난세에 영웅은 나오기 마련입니다. 하나님은 옷니엘에게 성령 충만을 주셔서 승리케 하고, 평안을 주신 것입니다.

성령 충만을 구하십시오. 여호와의 영이 우리에게 임하면 우리도 능력의 사람이 될 줄 믿습니다. 능력이 임할 때 승리가 따라오고 평안이 임하는 것입니다. 한 민족의 역사가 바뀌고, 수많은 이들이 구원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사사는 에훗입니다.

왼손잡이 에훗이 사사로 세워지게 된 이유는 12절에 나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니라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므로 여호와께서 모압 왕 에글론을 강성하게 하사 그들을 대적하게 하시매

우리 사람은 고통과 고난을 금방 잊어버리기 마련입니다. 좀 살만하면 악을 행합니다. 하나님이 은혜 주셨을 때 죄를 짓고 악을 행합니다. 돈 벌기 전에는 꿈도 못꾸던 일들을 돈이 생기고 나니까 저지르는 것입니다. 왜 마약을 하고, 향락을 추구 합니까? 먹고살만하기 때문입니다. 먹고 살만하니까 하나님을 떠나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제목 있는 것도 은혜인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문제가 있어도 은혜 안에 있다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아무 문제없이 은혜 밖에 있는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그래서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고 시편 기자가 고백한 것입니다.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십니다. 이를 통해 우리에게 능력을 부어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이미 여호수아를 통해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고 지키고 잊지말고 기억하라고 수도 없이 말했는데도 이스라엘 자손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평안할 때면 잊어버리고 딴 생각하고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고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그 때 또 사사를 통해 구해주고, 살려주고, 버리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우리를 다시 건져주십니다.

오늘도 보면 메소보다미아 왕, 모압 왕.. 주변의 왕들에게서 건져주십니다. 이스라엘에도 왕이 있었습니다. 누구입니까? 하나님이 왕이십니다. 그런데 왕을 잊어버리고 사니까 늘 누구 밑에 사는 처지가 되는 것입니다. 애굽에서 종노릇하다 탈출했는데 가나안에 와서 또 종노릇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가 죄의 종노릇 하듯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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