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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들

사도행전 1장 21~26절 설교(제자에서 사도로)

제자에서 사도로

사도행전 1 21 - 26

카일 아이들먼의 <팬인가, 제자인가>라는 책에 보면, 내가 예수님의 팬인지, 제자인지를 진단하는 다섯가지 방법이 나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로만 고백하는가, 아니면 예수님을 실제로 따르고 있는가? 예수님에 관해서아는가? 아니면 예수님을 진정으로아는가? 예수님은 여러 애인 중 한명인가? 아니면 하나뿐인 애인인가? 안보다 밖에 더 신경을 쓰고 있는가? 자기 힘을 믿는 팬인가? 성령충만한 제자인가?

여러분은 예수님의 팬입니까? 제자입니까? 참 무거운 질문입니다.

사도행전에 나온 것처럼 제자들이 다락방에서 성령을 받은 이후에는 이제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됩니다. 바로 사도의 삶입니다.

사도는 헬라어로 아포스톨로스라고 하는데 보냄을 받은 사람이란 뜻입니다. 누구로부터 보냄을 받은 사람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보냄받은 사람입니다. 사도는 단순히 다락방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밖에 나가 복음을 외치기 시작합니다. 제자들이 처음에는 무서워서 꼭꼭 숨어 있었는데 이제는 담대히 복음을 증거합니다. 제자들이 사도가 된 것입니다.

첫째, 사도는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믿음으로 굳게 서야합니다.

남에게 따라다니며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가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서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누가 보든, 안 보든 기도하는 사람, 정직을 행하는 사람이 바로 사도입니다. 믿음의 홀로서기입니다.

사도행전 542절 말씀을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

사도들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가르치는 일과 전도하는 일을 쉬지 않았습니다. 이 말은 깊이 생각해보면, 어떤 곳에 있든지 집이든, 교회든, 직장에 있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며 홀로 서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오랫동안 교회에서 신앙생활하시는 분들 중에서 아직도 의존적인 신앙생활을 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하나님 보면서 믿음생활해야하는데, 부모님 따라서, 친구 따라서, 그냥 교회 댕기신 분들 계세요.

또 예전에 교회에서 사역하다보면, 예배 때 기도부탁하거나 순장 좀 해달라고 하면 교회에서 오랫동안 신앙생활하시고, 하신 집사님 권사님이신데 좀 빼달라고, 못하겠다고, 심지어는 교회 옮기겠다는 이야기도 하신 분들도 있더라구요. 우리 교회에서는 그런 분들이 한분도 없으신 줄 믿습니다.

마태복음 2819절에 보면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당부한 말씀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제자의 삶이 예전에는 배우는 것에 그쳤다면, 사도의 삶은 이제 예수님이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는 삶입니다. 예전에는 제자였지만, 사도는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는 삶, 즉 스승의 삶을 사라는 것입니다. 삶의 자세가 예전에는 수동적이었다면, 이제 능동적으로 살아가야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어떻게 어떻게 하라고 분부해주셨지만, 이제 사도는 자기 스스로 믿음 안에서 판단해야합니다. 자기 스스로 일어서야 합니다. 그리고 가르치려면 먼저 내 스스로가 알아야 합니다. 알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가르치겠습니까?!

둘째, 사도는 모든 예배와 모임을 사모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가룟 유다를 대신해서 새롭게 사도를 뽑는 장면입니다.

사람들은 두 사람을 추천했습니다. 유스도라하는 요셉과 맛디아입니다. 그런데 그 조건을 보면, 이들이 요한의 세례때부터 올리워 가신 날까지 예수님과 함께 한 사람들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과 죽으심과 부활하심, 승천하는 것까지 모든 것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함께한 동역자들이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열두제자 이외에도 이러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항상 함께 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빠지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예배를 사모해야 합니다. 맛디아도 예배든 모임이든 안빠지니까 사도로 뽑히는 생각지도 못한 축복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저녁예배도 빠지지 마시고, 어제 바자회 때처럼 많은 이들이 늘 예배에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제비뽑기 전에 제자들이 다함께 하는 기도가 나옵니다.

본문 24~25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24 저희가 기도하여 가로되 뭇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주의 택하신 바 되어 25 봉사와 및 사도의 직무를 대신할 자를 보이시옵소서 유다는 이를 버리옵고 제 곳으로 갔나이다 하고

기도를 할 때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를 부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살아계신 하나님! 사랑이 많으신 주님!”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에서는 이렇게 하나님을 불렀습니다. 뭇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뭇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이 있듯이 사람의 마음은 알 수 없습니다. 제자들은 그 두사람의 마음, 그 중심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아십니다. 사람의 중심을 보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상 167절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는 분입니다. 뭇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저는 사무엘상 이 말씀이 얼마나 은혜가 되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외모를 보지 않고 중심을 본다는 그 말씀이 얼마나 은혜스러운지 모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제자로서 우리는 많이 배워야 합니다. 평생을 하나님을 알아가고 배움에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합니다. 동시에 우리는 사도로서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고 우리의 말과 행동을 통해, 우리의 삶으로 복음을 증거해야 합니다.

요즘은 사실 노방전도의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휴지들고 전도하는 것은 이제 복음전도가 아닌 교회 홍보 수준에 불과합니다. 그럼에도 물론 해야합니다. 길거리에서 만나는 그 한 영혼을 위해서라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이제는 종이전도지의 시대가 아닌 얼굴전도지의 시대입니다. 우리의 얼굴을 보고 세상 사람들은 교회를 판단합니다. 그런데 교회다니는 사람의 얼굴이 만날 때 마다 찡찡해있고, 화난 인상이고 하면 교회나오고 쉽겠어요?? 나도 교회다니면 저렇게 될까봐 무서워서라도 안나올 겁니다.

교회 나오는 사람들이 행복해야합니다. 은혜가 충만하고, 좀 웃으면서 살아야 합니다. 베풀면서 섬기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럼 종이전도지 수천장보다 그 얼굴전도지 한 사람이 한 생명을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명을 살리는 사도가 되길 소망합니.

마지막으로, 사도는 또한 기도의 사람이어야 합니다.

예수님 승천 이후 사도들은 다락방에 모여서 매번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113절과 14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13 들어가 그들이 유하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14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사도들이 모이면 하는 일이 바로 기도에 힘쓰는 일이었습니다. 오순절날 그렇게 다같이 한곳에 모였을 때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사도들이 그냥 모여 있으니까 성성령을 받았을까요?! 모여서 기도하면서 성령을 받은 것입니다.

어떻게 겟세마네 동산에서 무서워 도망쳤던 제자들이 이렇게 담대해질 수 있었을까요?! 성령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목숨을 걸고, 매맞아가면서도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을 수 있을까요?! 성령 충만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성령충만함을 받으면 제자에서 사도가 될 수 있습니다. 성령충만함을 사모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성령충만을 사모하시길 바랍니다.

이재철 목사님은 미신과 바른 신앙의 차이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미신은 자신의 변화에는 관심없이, 자신이 가진 것으로 신을 달래고 얼러 자신의 욕망을 성취하려는 마음이지만 바른 신앙은 하나님을 변화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알아 그 뜻에 맞게 자기 자신이 변화되려는 의지입니다.’

우리가 바른신앙을 가지고 내가 하나님의 뜻에 맞춰가며 변화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겠습니다.

그리고 교회 다니시는 많은 분들이 기도하실 때 편한 자리, 좋은 여건, 편안한 삶을 위해서만 기도하는 데요. 이런 말이 있습니다.

편안한 삶을 위하여 기도하지 말고, 강한 사람이 되기 위하여 기도하라.”

오늘 함께 기도할 때 내게 주어진 모든 삶의 여건과 상황, 환경과 한계들을 넘어설 수 있는 강한 믿음의 사람, 성령충만한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말씀의 핵심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사도는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믿음으로 굳게 서야합니다.

둘째, 사도는 모든 예배와 모임을 빠지지 말고 사모해야 합니다.

셋째, 사도는 또한 기도의 사람으로 성령충만을 간구해야 합니다.

 

이러한 말씀을 잊지 않고 살았을 때 우리 모두가 제자에서 사도가 되는 축복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왜 이러한 사도로서의 삶을 살아야 하는지 아십니까? 바로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사도로 보내시길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왜 전도해야되지? 하는 생각이 들 때에 우리 주님을 생각하십시오. 우리 주님은 이땅에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잃어버린 자들을 찾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오늘 말씀 속에서도 제자 한 명을 새롭게 세우는데 그 사람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부활하신 주님을 증거하는 사람으로 세우는 것입니다.

사도는 주님을 증거하는 증인된 삶을 사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죽어가는 영혼 앞에서 우리 예수님을 증거함으로 그 영혼이 살아나고 구원받는 그 은혜를 맛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신앙생활을 하는데 생기가 없는 사람들이 있고, 생기넘치게 신앙생활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 차이는 한 영혼을 향한 전도를 하느냐 안하느냐의 차이입니다.

교회가 생동감있게 움직이는 것을 가늠하는 잣대는 전도와 선교의 차이입니다. 주님의 명령대로 교회를 세워가는 교회는 생동감 넘치는 교회입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교회입니다. 성전건축도 하나님께 이루어드리고, 동시에 복음 전도와 해외선교를 통해 교회를 세워가는 우리 모든 성도들이 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