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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들

마태복음 21장 1~11절 설교(호산나 하더라)

호산나 하더라

마태복음 211~ 11

호산나 : 찬양의 외침

* 찬양을 통해 믿음이 자라날 수 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교회 나와서 가장 좋았던 것은 찬양이었습니다. 기도하는 것도 어렵고, 말씀도 어려웠지만, 가장 쉽게 배울 수 있었던 것이 찬양이었습니다. 작은 믿음이지만, 찬양을 통해 믿음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찬송가는 어려워서 잘 못 불렀구요.

오늘 1461절에 나온 말씀의 찬양을 가장 쉽게 불렀습니다.

찬양하라~ 내 영혼아, 찬양하라 내 영혼아,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찬양하라!”

저는 이 찬양을 예배 중에 부르는 것도 은혜스럽지만, 특별히 밤늦게 혼자 와서 찬양하는 시간이 너무 행복했습니다. 그 시간에 저는 저 혼자만의 찬양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혼자 맘대로 부르고 나서 하나님께 세상에 하나뿐인 찬양을 드렸다는 사실에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습니다.

복음성가책 중에 <찬미예수 1000>이라는 악보책이 있는데 그 책을 보면 중간 중간에 성경말씀이 적혀 있습니다. 특히 시편말씀이 많이 적혀있는데 그 악보집을 보면서 성경 시편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 한절 한절이 얼마나 은혜가 되었는지 모릅니다.

시편 1461-2절을 보십시오.

할렐루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라 나의 생전에 여호와를 찬양하며 나의 평생에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다윗은 생전에 여호와를 찬양하며 평생에 하나님을 찬송하겠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이 하나님을 향한 찬송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왜 창조하셨느냐 에베소서에 이렇게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에베소서 13, 6입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하나님께서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고 우리를 지으시고, 우리에게 복을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해야할 것은 바로 하나님을 향한 찬송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찬양과 경배입니다. 이것은 제 말이 아니라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찬양하는 것이 여러분의 삶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결코 찬양을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전에 한 70대 중반 권사님이 교회에서 만났는데 제게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나이도 먹고, 노래도 못부르고 하는데 찬양대 서야할까요?” 그 말을 듣고 제가 잠깐 한 3초 고민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분이 찬양을 잘 못부르신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새벽기도 때마다 제일 앞에 앉으시는데 찬양을 엄청 크게 부르십니다. 그것도 음정 박자 하나도 안맞추고 부르는데 어찌나 창조의 은사가 있으신지 모릅니다. 거기에 말리면 저도 첫음 놓치고, 심지어는 한 소절 부르다가 다시 처음부터 부른 적도 있습니다.

그런 권사님인데 저한테 물으시는거에요 목사님. 저는 나이도 먹고, 노래도 못부르고 하는데 찬양대 서야할까요?”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말씀하시겠습니까??

제가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권사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 일평생 포기하지 마십시오. 누가 뭐라해도 숨이 다하는 날까지 찬양하십시오. 할렐루야!

하나님을 일평생 찬양하는 호산나 찬양대원들 되시길 바랍니다. 찬양할 때 다시 힘이 생깁니다. 찬양할 때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찬양할 때 우리의 믿음이 자라납니다.

구약시대 - 초막절에 제단 주위를 돌면서 외침.

신약시대 - 예수님 예루살렘 입성 때 군중들이 외친 함성. 메시야의 구원을 찬양하고 감격하는 의미.

호산나 : 기도의 외침

호산나라는 단어의 뜻은 ~ 구원해주시옵소서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 의미 자체가 이미 짧은 기도입니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당시에 유대는 로마의 식민지였습니다. 로마의 통치를 받고 있었고, 총독이 예루살렘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로마제국은 그 큰 지중해를 호수로 둔 나라였습니다. 예수님의 입성식을 우리가 그려보면, 초라하기 그지 없습니다.

한번 상상해보십시오. 예수님이 나귀새끼 위에 겉옷을 깔고 앉아서 예루살렘에 들어가고 있습니다. 앞 뒤로 누더기 옷을 입은 무리들이 따라옵니다. 군중들 대 부분은 길 양 옆으로 겉옷을 길에 펴고, 나뭇가지를 베어 길에 펴면서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하고 외칩니다.

반대로 로마의 입성식을 보면, 얼마나 휘황찬란한 지 모릅니다. 휘황찬란한 금빛 갑옷을 입고, 흰색 전차에 몸을 싣고, 머리에는 승리의 월계관을 쓰고, 수많은 관중들이 꽃가루를 뿌리고, 엄청난 북소리와 나팔소리가 가득한 그 큰 대로를 엄청난 군대가 위용을 뽐내며 걸어갑니다.

얼마나 대조적인지 모릅니다. 그러한 로마 제국의 입성식이 아닌 예루살렘을 향해 나귀새끼를 타고 입성하는 예수님의 모습은 어찌보면 우스꽝스러운 광대놀이와도 같아 보입니다. 누구에게든지 첫인상이 중요한데 예수님의 첫인상은 썩 그렇게 좋은 모습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앞 뒤로 모시고, 따르는 제자들은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아주 자신만만하게 외쳤습니다.

~ 우리를 구원해주시옵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겠습니다!”

여기서 나오는 다윗의 자손은 아무에게나 붙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의 이름을 함부로 붙일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마태복음 11절에 이렇게 나옵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마태복음 927절 말씀 예수께서 거기에서 떠나가실새 두 맹인이 따라오며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더니

마태복음 1522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하되

사람들은 예수님을 부를 때 다윗의 자손이여! 가장 존경하고 높이는 의미로 불렀습니다. 그런데 사실 예수님은 다윗이 자신을 주님이라고 불렀는데 어떻게 자손이 될 수 있느냐고 반문하시기도 하셨습니다.

호산나라는 외침은 가장 높으신 예수님께 구하는 기도입니다. 나를 구원해주시옵소서! 지금 이 현실에서, 이 문제에서, 이 상황에서, 이 질병에서 구원해주시옵소서. 하는 뜨거운 간구입니다.

이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주십시오. 이 고통스러운 질병에서 구원해주십시오. 이 로마의 악랄한 통치에서 해방시켜주십시오. 호산나라는 외침에는 이러한 뜨거운 간구와 기도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예전에 군대에 있을 때 한 찬양가수가 와서 찬양을 하는데 이런 간증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은 죄를 지어 감옥에 갇혔던 사람이었는데 거기서 예수님을 만나게 되고, 인생이 완전히 달라져서 이제 전국을 돌아다니며 찬양사역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러면서 부르는 찬양이 바로 이 찬양이었습니다.

약한 나로 강하게 가난한 날 부하게 눈먼 날 볼 수 있게 주내게 행하셨네

호산나~ 호산나~ 죽임 당한 어린양~ 호산나~ 호산나~ 예수 다시 사셨네

눈물 흘리면서 찬양을 드리는 그 모습이 참 감동이 되었습니다. 호산나~ 이 외침에는 뜨거운 간구와 기도가 담겨 있습니다.

인생이 괴로우십니까? 이제 더 이상 걸어갈 힘이 없습니까? 아무리 벗어나려고 해도 벗어날 수 없어 겨우 버티고 서있습니까? 그 때 이렇게 외치십시오.

호산나~ 주 예수여! 나를 구원해주시옵소서.” 호산나를 외치며 뜨겁게 기도하시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나눌 것은 호산나를 외쳤던 무리들의 모습을 한 번 떠올려봤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따르고 반기고, 환호성을 지르며 호산나를 외쳤습니다.

아마 각자가 마음 속으로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해주시고, 로마를 박살내고 자유와 평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마태복음 27장에 보면 그러한 자신의 생각이 완전히 틀렸다는 것을 깨달을 때 사람들은 빌라도가 앞에서 십자가에 못박혀야 하겠나이다!”“십자가에 못박혀야 하겠나이다!”하고 외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혔을 때도 지나가는 자들은 머리를 흔들며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우리 주님이 우리 뜻대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을 때 오히려 불평불만하지는 않습니까? 호산나~ 우리를 구원해달라고 하면서도 다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님을 위해 살겠다고 하면서도 어느새 나를 위해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제자들처럼 죽음과 손해가 자신에게 닥칠 때 믿음을 져버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이 밤에 호산나를 외쳤다면, 인생의 마지막에도 호산나를 외치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무언가를 처음은 한번은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꾸준히 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주님을 믿는 이 귀한 일, 주님을 찬양하는 이 귀한 일에 일생을 한결 같이 꾸준히 달려가셔서 잘했다 칭찬받는 주님의 귀한 종들이 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