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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들

사데교회(계 3장)

사데교회

요한계시록 31 ~ 22

 

사데교회에 하시는 말씀 (1)

우리 주님의 말씀을 듣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딱 보기에는 멀쩡해보이고, 신실해보이지만, 실상은 죽은 자라는 것입니다. 유명한 교회, 이름 있는 교회지만 들여다보면, 불의가 판을 치고, 믿음보다도 세상적인 것에 더 마음을 빼앗겨버린 것을 보게 됩니다. 가난한 자들이 오면 본체 만채 하고, 부요한 자들이 오면 달려가서 맞이하기도 합니다. 교회에서 직분은 있지만, 직분의 사명을 감당하는 이들은 적습니다. 세례는 받았지만, 거듭남의 삶을 사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지만 죽은 자인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도 잘하고, 믿음도 있어보이지만, 하나님 앞에 딱 놓고 보면 온전한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우리의 머리카락도 세시는 그 분 앞에 설 때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의 심령을 감찰하시는 그 분 앞에 누가 떳떳히 설 수 있습니까? 교회 안에도 완고하고 당당한 분들이 있습니다. 뭔가 특권을 누리고, 뭐라도 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온전한 것을 하나도 찾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4절 말씀을 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데교회에는 그 옷을 더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있었습니다. 그 몇 명이 사데교회를 살리고, 사데교회의 기둥역할을 감당한 것입니다. 사데교회 뿐만이 아니라 어느 교회에든 기둥같이 그 교회를 살리고 지키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그 소수의 몇 명을 하나님께서 사용하셔서 교회를 이끌어가시고, 세워가시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도 따라다니는 사람은 수천명이었지만, 그 중에 열두명만을 제자로 세워 가르치시고, 훈련시켰습니다. 그 소수의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가신 것입니다. 이 새벽기도회도 온 성도가 나오면 좋겠지만, 보면 꼭 소수의 사람이 나옵니다. 하나님 앞에 좀 더 신실하고자, 기둥처럼 세우신 분들입니다. 여러분을 통해 교회가 더 든든히 세워지고, 교회가 새롭게 되어지길 축복합니다. 그러한 분들은 흰옷을 입은 천사와 같이 되고, 그 이름이 생명책에서 결코 지워지지 않는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빌라델피아 교회 : 작은 능력을 가지고 인내의 말씀을 지킴.

이 빌라델피아 교회에도 유대인의 회당이 사탄의 사자처럼 영향력을 발휘해서 많은 혼란이 찾아오고, 온갖 시험이 찾아왔습니다. 또한 이 도시는 그 당시 이방신전들과 극장이 많아서 작은 아테네라고 불렸다고 합니다. 예수 믿는 신앙생활을 신실하게 하기가 쉽지가 않는 곳입니다. 그런데 이 빌라델피아 교인들에게 칭찬하는 말씀을 보면,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작은 능력이라는 것은 그들이 힘이 있거나 돈이 있거나 사회적 지위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늘 작은 자의 그룹에 속해 있는데도 그 자리에서 주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고 신실하게 주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의 무슨 말씀이냐하면 인내의 말씀입니다. 이것은 다른 말로하면, 인내의 로고스, 즉 인내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살았다는 말입니다. 우리 주님이 참으신 것처럼 그들도 인내하면서 참으신 것입니다. 믿음을 끝까지 지키기 위해서는 믿음의 인내가 필요합니다.

무슨 일을 하더라도 인내는 정말 중요한 덕목입니다. 부부가 가정을 지키려면 서로 인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어떠한 관계가 유지되고, 사업이 성공하고, 건물이 세워지려면 인내가 필요합니다. 어린아이를 키우더라도 장성하기까지 반드시 인내가 필요합니다.

우리 주님이 그렇게 우리를 기다려주십니다. 우리가 바로 서는 그 날을 위해 참아주시는 것입니다. 오늘도 혹시 욱~하는 일이 생길 때 인내하신 예수님을 떠올리며 참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라오디게아 교회 :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라

제대로 신앙생활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신앙생활에서 중간은 없습니다. 예스 아니면 노 뿐입니다. 신앙과 불신앙 밖에 없습니다.

19~ 20절 말씀이 우리에게 힘이 되는 것은 주님의 책망의 이유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고, 지금도 문밖에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우리의 마음을 두드리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미련해서 당해봐야지 압니다. 마치 탕자처럼 바닥까지 떨어질 때야 비로소 하나님 아버지께 돌아오는 것입니다. 주님의 당부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그 말씀에 순종해서 열심을 내고, 회개해서 주님께 돌아오는 저와 여러분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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