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설교들

내가 크게 울었더니(계 5장)

내가 크게 울었더니

요한계시록 51 ~ 14

 

하늘 보좌 앞에 올라간 사도 요한. 주의 영광을 대면한 사도 요한. 보좌에 앉으신 이와 이십사 장로, 이십사 보좌, 네 생물을 대한 요한, 우리가 할 것은 찬송과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돌리는 것 뿐입니다.

5장을 보면 시선의 이동 -> 4장에서는 보좌에 앉으신 이가 중앙에 섰는데 이제는 어린양에게로 초점과 시선이 집중됩니다.

어린양이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 어린양 되신 분이 일곱 인으로 봉인된 두루마리를 취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1절에서 4절까지의 말씀을 보면,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 능히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할 자가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요한은 크게 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장면을 이미지로 그림으로 떠올려보면, 4장에서는 휘황찬란한 보좌 앞에 홍보석, 녹보석과 같고,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를 둘러싸고 있고,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찬양하는 그 영광스러운 모습을 그려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5장에서는 사도 요한이 그 하늘 예배를 보다가 일곱인으로 봉인된 두루마리를 뗄 자가 없어서 크게 울고 있습니다.

 

내가 크게 울었더니 (4)

그 두루마리를 펼 수 있는 온전한 사람이 과연 이 땅에 있을까요? 없습니다.

이것이 지금의 현실입니다. 우리의 상황입니다. 사람 가운데서는 온전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냥 다 포장입니다. 좋아보이는 것이고, 거룩한 척 하는 것이고, 온전하것처럼 보여지는 것 뿐입니다. 보기에는 이름은 있고, 살아 있는 것 같은데 실상은 죽은 자 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예언의 말씀, 심판의 말씀, 구원의 말씀이 적힌 그 두루마리..

그 생명의 말씀이 적혀 있는데 그것을 볼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을 때 사도 요한은 크게 울었습니다.

감정이 격해져서 크게 울었습니다. 죽어가는 교회를 향해서는 박해받는 교회를 위해서는 그 생명의 말씀이 꼭 필요한데 그 말씀을 볼 수 없고, 뗄 수 없는 이 상황이 너무나 안타까워 울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 주변에도 보면, 얼마나 우는 분들이 많은 지 모릅니다. 교회에서 주일에 보면, 다들 웃고 계시고, 점잖게 입으셔서 아무 이상이 없어보이는데요. 가정을 들여다보고, 자녀들을 들여다보면, 얼마나 울 수 밖에 없는 일이 많은지 모릅니다. 눈물로 밤을 지새우고, 눈물로 침상을 적시면서 잠 못이루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울증 앓고 있고, 공황장애가 찾아오고,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불면증이 생기고, 그런 분들이 의외로 많이 있습니다.

게임에 빠져 있는 자녀들도 있고, 빚 때문에 말못할 고민을 갖고 있는 분들도 있고, 뭐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눈물을 하도 울어서 눈물도 안나오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많이 힘드시죠.. 혼자 감당하시고, 지지도 못할 그 무거운 짐을 혼자 지고 계시는데 안힘드는게 이상한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기도의 자리에 나와서 우리 하나님 앞에 눈물뿌리며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기도의 눈물병에 애통하는 눈물을 담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그러한 눈물을 보실 때 그 눈물을 닦아주시고, 위로해주실 줄 믿습니다.

그리고 사실 눈물에는 치유의 힘이 있습니다. 어떠한 상황과 시험이 닥쳤을 때 우는 사람은 그래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울지도 못하고 마음에 담아두는 사람은 육신에 병이 생기고 도저히 일어설 수가 없다고 합니다.

오늘 이 시간이 하나님 앞에 눈물로 나아가는 시간 되기를 바랍니다.나는 잘못 하나도 없고, 너만 사과해라 이래서는 절대 관계의 회복이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도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 스스로 교만했던 것도 내려놓아야 합니다. 가정을 위해 울어야 합니다. 민족을 위해 울어야 합니다. 이 나라를 위해 울어야 합니다. 이 지역 생명을 놓고 울어야 합니다. 나 자신의 처지와 상황 때문에 울기보다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뜻을 놓고 울어야 합니다. 그래야 치유가 일어나고 회복이 일어납니다. 예수님도 예루살렘을 보고 우셨습니다. 민족의 아픔과 엄청난 시련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사도 요한도 오늘 자기의 구원이 아닌 이스라엘 민족, 또 교회를 위해 울고 있습니다. 그냥 눈물 조금 흘리는 것이 아니라 크게 울었다고 나와 있습니다. 우리 교회도 눈물로 기도하며 나아갈 때 회복이 일어나고 치유가 일어나고 주님의 참된 사랑으로 충만하게 될 줄 믿습니다.

오늘 말씀 요한계시록 5장에서는 이제 어린 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습니다. 중심에 서서 찬송을 받습니다. 이십사 장로들과 네 생물이 엎드려 새 노래를 부릅니다.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밖에는 없습니다. 우리 주님을 생각하며 기도의 향을 올려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우시고, 눈물흘리며 애통하셨던 것을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도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 울고, 죽어가는 이 지역의 영혼들을 위해 울고, 고아와 같이 버림받은 것 같은 다음 세대를 위해 울 수 있는 믿음의 성도들 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설교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천사와 작은 책(계 10장)  (0) 2020.09.04
일곱째 봉인과 금 향로(계 8장)  (2) 2020.08.12
하늘예배(계 4장)  (0) 2020.08.08
사데교회(계 3장)  (0) 2020.08.08
소아시아 일곱교회(계 2장)  (1) 2020.0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