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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들

빌립보서 2장 19~30절 설교(존귀히 여김 받는 자)

* 성경봉독 : 빌립보서 219-30

존귀히 여김 받는 자

 

오늘 말씀 속에서 세 사람이 나옵니다. 편지를 쓴 바울과 믿음의 아들 디모데와 바울의 형제된 에바브로디도입니다.

세 사람은 다 믿음 안에서 존귀히 여김받을 만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모습 속에서 하나님께 사랑 받고 사람에게도 존귀히 여김받는 사람의 특징에 대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자기의 일 보다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는 사람입니다. (21/ 30)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가장 우선시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눈여겨 보면 됩니다. 보면 가족들을 소중히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는 분이 셋째를 갖고자 해서 가족회의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가족 중에 누가 반대하는 거에요? 누굴까요? 엄마? 아뇨 첫째가 반대하더랍니다. 이미 둘째 낳을 때 부모의 사랑이 반토막 난 것을 경험한 것이죠.. 울면서 반대하더래요. 그래서 결국 셋째를 안 갖기로 했다고 합니다. 누가 어린 자녀의 말에 귀기울입니까?! 그만큼 자녀를 소중히 대하기 때문에 그 말에도 경청하는 것입니다.

또 보면, 일만 죽어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일 못하면 불안증세가 나타나고, 어쩔줄 몰라하는데.. 신기하게 일만 하면 눈이 반짝 반짝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집에 와서도 일 이야기, 일생각하면서 사는 사람입니다. 어디 놀러가서도 일 걱정하며 지냅니다. 밥먹는 시간도 아까워서 밥에 물을 말아서 마시듯이 먹고는 일하러 갑니다. 이런 사람이 꼭 자기 건강 안챙기고 일하다가 나중에 몸 다 망가지고 맙니다. 보통 집안을 보면 아버지 어머니가 그렇습니다. 자식들 챙기는 것 보다, 밤낮 일만하며 사십니다. 지금은 온 몸이 다 망가져서 허리, 손 마디 마디마다 안아프고 쑤시지 않은 곳이 없는 분들이 많습니다.

또 어떤 분들은 친구관계를 최우선으로 여겨서 전화 한통만 받으면 뛰쳐나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외로운 시대에 자기 마음 알아주는 친구가 최고로 보이는 것입니다. 함께 놀고, 함께 먹고, 함께 지내는 것 만으로 든든한 그런 친구가 있다는 것은 또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마음 툭 터놓고 무슨 이야기든지 할 수 있는 사람이 2명만 있어도 그 사람은 성공한 인생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지금이 그만큼 각박한 시대라는 반증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읽은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 바울은 예수의 일을 최고로 여기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최우선으로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 일을 위해서라면 체면도 없고, 자신의 시간과 재물, 가진 능력을 총동원해서 하는 사람들입니다. 밤낮 일하고 수고하는 이유는 그렇게 열심히 사는 이유는 딱 한 가지입니다. 주의 일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자기에 대한 안위는 안중에도 없습니다. 자기 일보다 그리스도 예수의 일이 더 먼저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일은 곧 교회의 일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교회가 바로 주님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몸을 섬기고 돌보는 일이 교회일인 것이죠. 그런데 어느 순간 교회에서 하던 봉사와 섬김이 일로 서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그냥 하나의 일로 다가올 때 참 서글퍼지는 것이죠.

사람은 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나만 고생한다고 생각하기 쉽고, 나만 군대에서 제일 고생한 것 같고 그렇습니다. 일이 일로서 다가올 때 그런 마음이 듭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쓰레기 비우고, 빨래 돌리고, 제습기 물도 비우고, 차량 때문에 전화오고, 신경쓸 일이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정신없이 일하며 살다가 주변을 돌아보면 내가 왜 이러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요. 주님의 몸된 교회의 일, 주의 일, 예수님이 원하시는 일이라고 생각해보십시오. 다른 누군가와 비교하지 말고, 주님이 나에게 맡겨주신 일이라면..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내가 사랑하는 주님이 나에게 맡겨 주신 일이라면 얼마나 특별한 일입니까?!

우리 주님도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는 천한 일을 몸소 하셨습니다. 누가 시켜서 한 것도 아니고 본인이 스스로 하셨습니다. 종들이나 하는 일을 랍비로 여김받고 선지자로 여김받고, 그리스도라고 여김받는 예수님께서 하셨습니다.

아무리 천박한 일일지라도, 아무리 하기 싫은 일일지라도 예수님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한다면, 그 일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렌스 형제는 부엌일을 하고, 신발 수선하는 일을 하더라도 웃으며 찬송하며 하는 것입니다. 다른 수도사들이 뭐라하든지 그 일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이것이 주님을 위한 일이라는 믿음으로 한다면, 얼마나 귀한 일이 되는지 모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러한 마음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일을 한다면, 천국 일이 되고, 거룩한 일이 될 줄 믿습니다. 자기 일보다 예수의 일을 먼저 한다는 것은 주님이 베푸신 은혜와 사명으로 일하는 사람입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먼저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디모데의 연단(성품)을 갖는 사람이다 (22)

로마서 53-4절 말씀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여기서 연단은 성품을 뜻합니다. 우리는 연단을 철을 단련하는 것에 자주 빗대어 이야기 합니다. 뜨거운 불에 철을 달구었다가 망치로 두드립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차가운 물에 식힙니다. 이런 일을 수없이 반복할 때 철은 단련되고, 강해집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성품도 마찬가지입니다. 수많은 이 연단의 과정을 거치면서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그냥 한번 뜨거웠다가 차가웠다가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끝도 없이 반복됩니다. 인생의 냉탕 온탕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산 위에 오르는 것처럼 기쁨과 영광을 맛보았다가도 인생의 골짜기와 같은 험난한 여정을 지날 때도 있습니다. 칠흙같은 어두운 밤을 만날 때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과정을 수도 없이 반복하며 견디고 지나올 때 우리의 영혼은 연단 받아 하나님 닮는 성품을 갖게 된 것입니다. 디모데는 젊은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성품을 지녔습니다.

 바울과 함께 다니면서 얼마나 많은 일들을 겪었을까요? 새로운 도시, 새로운 사람들, 별의 별 일을 다 겪었을 것입니다. 사기도 당하고, 도망도 치고, 굶기를 밥먹듯이 하고, 길거리에서 잠잘 때도 많았을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높임받다가도 유대인들을 피해 도망다녀야 했습니다. 과연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산다는 것은 무엇인지 얼마나 많은 시간 단련받았을까요?! 루스드라 태생의 젊은 청년 디모데는 사람을 대할 때 진실하게 대하는 성품을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다른 이들은 다 자기의 일을 구할 때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디모데는 인내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인내할 줄 안다는 것은 성숙하다는 말입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1:4)

인내를 통해 우리는 온전하게 되고 성숙하게 되는 것입니다. 젊고 어릴수록 더 혈기왕성하고 당돌합니다. 말보다 행동이 앞섭니다. 그 때 필요한 성품이 인내입니다. 밥이 인내하지 못하면 설익은 밥이 되고 맙니다. 압력솥밥에 밥을 해보십시오. 그 엄청난 압력을 견디고 나니까 밥이 얼마나 부드럽고 맛있는지 모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그 사람을 쓰시려고 할 때 그 사람의 성품을 만지시고, 인내하게 하십니다. 베드로로 하여금 인내하게 만듭니다. 바울로 하여금 인내하게 만듭니다. 디모데도 인내하게 만듭니다. 인내없이 지도자는 탄생할 수 없고,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기는 불가능합니다. 바울은 사랑은 오래 참는 것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디모데가 믿음의 참 아들이 되고 빌립보 교인들에게도 존귀히 여김 받는 사람이 되기 까지는 이러한 인내와 연단의 시간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인내의 시간, 연단의 시간을 보내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이 여러분을 준비시키고 성숙하게 하는 시간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인내와 연단을 참고 견디고, 넘어설 때 여러분은 그 어떤 것이든 단 칼에 베어버리는 명검처럼 하나님의 검이 되어서 쓰임 받게 될 것입니다. 그 때를 위해 참읍시다. 견딥시다. 인내하고 오늘 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않는 희생과 헌신을 다하는 사람이다.(30)

세 번째로,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처럼 존귀히 여김받는 사람의 특징은 30절에 나옵니다.

그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

새번역 그는 그리스도의 일로 거의 죽을 뻔하였고, 나를 위해서 여러분이 다하지 못한 봉사를 채우려고 자기 목숨을 아끼지 않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목숨을 아끼지 않고 주의 일을 하는 사람은 존귀히 여김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도 저도 안되는 사람을 보면, 특징이 대충 대충합니다. 뭘해도 적당히 합니다. 깊이가 얇습니다. 청소를 해도, 일을 해도, 공부를 해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죽을 각오로 하는 사람은 다릅니다. 자기 한 목숨 살려고 소심하게 하는 사람과 자기 목숨 버릴 각오로 사는 사람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누가 승리하겠습니까? 죽을 각오로 싸우는 사람이 이깁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 사실을 깨닫게 합니다. 약한 자 한 사람이 천을 이기고 강국을 이루는 것을 말합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을 통해 온 인류를 구원하신 이야기가 성경 속에 나옵니다. 세상의 큰 제국이 아니라 작고 작은 민족, 이스라엘을 택하셔서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이루시는 것을 성경은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큰 것이 아닌 겨자씩 한 알처럼 작고, 보잘것없은 누룩 같은 것을 통해서 일어난다고 성경은 이야기합니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라고 우리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은 천막 만드는 사람이고, 베드로는 물고기 잡는 어부였고, 아모스는 드고아에서 양치는 목자였습니다. 모세는 도망친 살인자 였고, 다윗은 목동 소년이었습니다. 요셉은 애굽에 종으로 팔린 소년이었습니다. 다니엘은 나라 잃고 바벨론 제국에 포로로 끌려간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우리 주님을 위해 죽을 각오로 믿음을 지키고, 복음을 전하고, 죽을 각오로 주의 사명을 감당할 때 수많은 사람이 주님께 돌아오고, 나라가 회복되고, 민족이 살아나고, 제국이 무너졌습니다. 새 예루살렘과 새 땅이 임하는 것을 보게 되고, 교회가 든든히 세워지게 되고, 사람이 완전히 새롭게 변화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밤에 누군가 단 한 사람이라도 우리 주님을 위해 죽을 각오로 살아가기로 작정한다면, 가정이 살고, 교회가 살고, 이 동네가 예수 마을 되고, 이 민족이 살아날 줄 믿습니다.

독일의 나치 치하의 고백교회 운동을 했던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님은 젊은 나이에 죽으면서도 이런 명언을 남겼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에는 와서 죽으라고 명령하시는 것이다

그는 그 명령에 순종해서 젊은 천재신학자로 불리고 미국에서 독일로 가지 말라고 그렇게 많은 사람이 말렸지만, 그는 독일로 갔습니다. 그리고 죽었습니다. 그는 그저 그런 독일 목사가 아니라 온 세계에 순교자로 불리고 존귀히 여김 받는 믿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미국 교회에서 예배 중에 갑자기 한 사람이 뛰어 들어와서 천장을 향해 총을 쏘며 외쳤습니다.

죽고 싶지 않으면 다 나가~” 그러자 그 많던 사람들이 살려고 다 도망가고,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는 사람과 소수의 사람만 남아 있었다고 합니다. 그 총을 쏜 사람이 강단에 있는 목사님께 걸어가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목사님! 이제 갈 사람은 다 간 거 같습니다! 계속 말씀 전하십시요

, 우리 그리스도인 형제들은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 있는 종으로서 그리스도와 그의 일을 위해 목숨까지 바칠 각오를 했던 바울과 디모데, 에바브로디도를 본받읍시다. 지금은 영적 전투가 치열한 때입니다. 세상이 정말 제대로 믿고자 하는 그리스도인들을 가만 두지 않습니다. 주저 앉히고, 의심이 들게 하고, 시험거리가 찾아오고, 사람들로 인해 상처를 줍니다. 그래도 진짜 존귀히 여김받는 이들은 범사에 예수의 일을 하고, 인내와 연단을 통과하고, 자기 목숨까지도 아끼지 않고 주를 위해 사는 사람인 줄 믿습니다. 우리 주님은 그런 이들을 존귀히 여기고, 주님의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저와 여러분이 그러한 도구 되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