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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들

빌립보서 1장 12~18절 설교(무슨 방도로 하든지)

* 성경봉독 : 빌립보서 112-18

무슨 방도로 하든지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김난도교수가 쓴 책 중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스물 여덟 살에 아이와 단둘이 남은 이혼녀가 있었다. 정부에서 빈곤층 생활보조금을 받으며 근근이 살아갔다. 그런데 이 여인이 어느 날 작가가 되겠다며 유모차를 밀고 동네 카페에 나가 글을 쓰기 시작했다. 꿈은 가상하지만, 원고를 다 쓰고도 복사비가 없어서 8만 단어나 되는 글을 일일이 처음부터 다시 타자기로 입력해야 할 정도로 현실은 비참했다. 주위에 이렇게 막무가내인 사람이 있다면 계속 열심히 해보라고 격려해줄 수 있을까? 일단 최소한의 생활비라도 벌면서 생활을 먼저 수습하라고 충고하게 되지 않을까? 그러나 바로 이 여인이 훗날 <해리포터> 시리즈로 영국 여왕보다 더 큰 부자가 된 조앤 롤링이다. 하버드대 졸업식 축사에서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실패는 삶에서 불필요한 것들을 제거해준다. 나는 내게 가장 중요한 작업을 마치는 데에 온 힘을 쏟아 부었다. 그러한 견고한 바탕 위에서 나는 인생을 재건하기 시작했다. 스스로를 기만하는 일을 그만두고 정말 중요한 일을 시작하라

바닥까지 내려간 한 여인의 이야기입니다. 그 실패하고 비참한 바닥까지 내려갔을 때 그는 정말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 발견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1) 역설의 종교, 기독교

12절 말씀 속에서 우리가 먼저 생각해볼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 당한 일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되었다는 것을 빌립보교인들에게 알려주고자 했습니다. 여기서 바울이 당한 일이 무엇입니까? 그 일은 로마 감옥에 갇혀 있는 일입니다. 인생의 밑바닥까지 간 것입니다.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바울이 세상에서 성공한 것도 아니고, 높은 관직에 오른 것도 아닙니다. 그는 로마황제 앞에 나아가 재판받을 죄인에 불과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통해 복음이 전파되고 계속 진전되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이것은 바울의 고백이라서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복음 자체가 갖고 있는 복음의 역설때문입니다. 우리 기독교의 상징은 무엇입니까?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지금은 아름답게 보일지 모르지만, 그 당시에는 로마제국의 잔인한 처형도구였습니다. 이 처형도구 십자가를 아무리 미화하려해도 두려움과 고통과 죽음과 잔인함만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이 십자가에 한 사람이 달려 죽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이미 이전에 수많은 죄인들이 십자가에 달려 죽었습니다. 그런데 전혀 죄가 없으신 그 분이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달려죽으셨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22-24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의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 나타나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고난을 통해 부흥하고 성장한다는 것입니다. 죽음까지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에 죽음으로 믿음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초대교회 교인들은 고난당한 것을 오히려 자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교회 역사속에서 보면, 고난당할 때 오히려 믿음은 더 선명해지고, 교회는 부흥했습니다. 하지만 교회가 부요해지고, 권력을 잡을 때는 오히려 타락하고, 믿음이 불분명해졌습니다.

실제로 자신이 의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교회를 보면 경건의 모양은 있지만 경건의 능력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교회를 가면 은혜가 넘치고, 회개의 눈물이 있고, 경건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말씀 한 마디에도 큰 은혜를 받습니다.

바울이 당한 고난, 매임은 그리스도의 복음이 증거 되는 축복의 기회가 된 것입니다.

사실 사순절 기간에 우리가 주님을 위해 받은 고난이 무엇이 있습니까? 한 번 생각해봅시다! 예수님을 위해 굶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위해 모욕을 당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위해 인내하고 절제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다같이 주님 앞에 죄인일 뿐입니다. 엎드려 자복하고, 긍휼을 베풀어달라고 부르짖을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고난 속에 하루 하루 살아가는 분이 있습니까? 기뻐하십시오. 그 고난을 통해 더욱 주님을 붙잡게 되고, 주님 없이는 살 수 없다고 고백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아무런 문제없이 평안 가운데 있는 분이 있다면, 정신을 차리십시오. 그 날이 도적같이 우리 주님 다시 오실 때 우리를 몰라보실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2) 그리스도 전파가 우선이다.

사도 바울의 메시지의 중심이 잘 드러난 것이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 본문 속에서 바울의 상황이나 환경보다 우선시 되고 있는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가 전파되는 것입니다. 자신이 당한 일보다, 자신의 매임보다, 더 중요한 것은 복음이 전파되는 것이요. 그리스도가 전파되는 것입니다. 그 일에 비하면 자기가 당하는 일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어떻게 이러한 삶의 가치관이 바뀌는 혁신을 가져올 수 있을까요?

자기 눈 앞의 빵과 음식 보다 그리스도를 생각하며 사는 것, 자기 자식과 자기 인생의 성공보다 그리스도를 생각하며 사는 것을 더 최우선 순위에 두며 생활할 수 있을까요?

요즘 읽고 있는 책은 장공의 생활신앙 깊이 읽기라는 책입니다. 장공 김재준 선생님이 쓴 책을 김경재 교수님이 해설한 것인데요. 그 책에서 답으로 나온 구절이 있어 나누고자 합니다.

교회는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과 사람과의 정상관계를 수립하는 것으로 그 첫째 목적을 삼는 것이다. 교회가 선한 일이면 무엇이든지 모조리 다 하고 싶고 또 해야 하겠지만, 무엇보다도 먼저 해야할 것은 그리스도의 속죄로 인하여 하나님이 죄인과 화목하시는 복음을 전달하며 이 길을 명시하여야 한다

김경재 교수님은 이것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혈육적인 옛 사람이 거듭남을 얻어 새 사람으로 태어나는 인간혁명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인간혁명.. 우리 한 사람의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나는 새 사람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사도 바울입니다.

그 바울이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고 박해하고 잡아가두는 사람이었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완전히 변화되어 새사람되는 인간혁명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자기를 생각하는 옛 사람은 죽고, 이제는 그리스도를 전파하기 위해 일생을 삽니다. 물론 자신이 예전에 하던 천막짓는 일도 합니다. 하지만 그 일을 하는 이유가 달라졌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우리가 갖고 있는 생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전에는 우리의 혈육을 위해 그 일을 했지만, 예수를 믿게 된 이후에는 주님을 위해 그 생업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짓고, 자녀를 키우고, 회사에 나가고, 아무리 남루하고 사소한 일을 하더라도 그 일을 우리 주님을 위해 하는 일이라면... 그 일은 거룩한 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 일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전파되고, 예수 그리스도가 영광을 받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삶의 우선순위는 무엇입니까? 한 번 뿐인 인생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습니까? 자신의 인생을 걸만한 위대한 일은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입니다.

무슨 방도로 하든지...

표준새번역 18절 후반부

어떤 식으로 하든지 결국 그리스도가 전해지는 것입니다. 나는 그것을 기뻐합니다. 앞으로도 또한 기뻐할 것입니다

잘하든지 못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기뻐하는 것입니다. 투기와 분쟁으로 하든지 착한 뜻으로 하든지 그리스도가 전파된다면 바울은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것은 매우 위험한 생각일 수 있습니다. 과정보다 결과만을 중요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돈만 잘 벌면 됐지 사기를 치든, 도둑질을 하든 무슨 상관이냐 하는 주의와 비슷해보입니다. 원리만 따지고 보면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의 생명과 직결되었을 때는 다릅니다.

한 사람의 환자가 구급차에 실려왔습니다. 그 환자를 살리려면 일분일초가 급한데 서류접수하고, 순서지켜야되고, 병실에 자리가 없다고 다른 병원가라고 하면.. 그 환자를 살릴 수 있겠습니까? 없는 자리라도 마련해서 수술하고 살려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러한 생명과도 같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생명을 위해서는 수단 방법가리지 말아야 합니다. 생명을 위해서는 때와 장소를 가릴 것이 없습니다.

무슨 방도로 하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