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설교들

빌립보서 1장 1~11절 설교(기쁨의 서신)

* 성경봉독 : 빌립보서 11-11

기쁨의 서신

우리가 밤낮으로 일하고 수고하면서 살 때에 기쁨과 감사를 잃어버릴 때가 많이 있습니다. 늘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 가운데서 우리의 감정과 느낌대로 산다면 기뻐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는 일들과 상황들을 돌아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통계적으로 보면, 자기가 하는 일을 통해 기쁨을 느끼는 사람은 10명 중에 1~2명 정도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어쩔 수 없이 먹고 살기 위해 일하는 사람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정말 사명가지고, 기쁨으로 일하는 사람은 일하는 게 즐겁습니다. 워커홀릭, 일중독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일을 통해 기쁨과 보람을 느끼고, 정말 웃으면서 그 일을 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하는 일을 통해 기쁨을 얻는 사람이 그만큼 적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제 100세 시대가 되다보니까 은퇴하는 시기도 앞당겨지고, 노후를 걱정할 수 밖에 없는 시대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더 멀리 내다보며, 장기적으로 일할 수 있는 직업으로 옮기는 사람도 많이 보았습니다. 제가 아는 집사님도 교직에 있는데 은퇴 이후를 생각하면서 주택관리사 자격증을 따는 것을 보았습니다. 은퇴 이후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일하는 것에 있어서는 기쁨이 별로 없습니다.

우리 예수 믿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남들과는 다른 기쁨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얻게 된 구원의 기쁨입니다. 그 기쁨은 내가 무슨 일을 하느냐에 따라 오는 기쁨이 아닙니다. 내가 얼마나 가졌는지에 따라 찾아오는 기쁨도 아닙니다. 오직 나를 죄에서 건져주시고, 하나님의 자녀 삼아주신 그 구원의 기쁨에서 오는 것입니다.

우리 옆에 분들에게 밝게 웃으면서 미소로 인사했으면 좋겠습니다.

구원의 기쁨으로 삽시다!”

사도 바울이 쓴 옥중서신이 4개가 있습니다.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 그 중에 특별히 빌립보서를 가지고, 함께 하나님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빌립보서는 다른 말로 기쁨의 서신이라고도 합니다. 무슨 서신이라구요? 기쁨의 서신

빌립보서는 로마 감옥에서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쓴 편지입니다. 오히려 반대로 교회에 있는 사람이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에게 위로하면서 권면해야 될 말 같습니다. 하지만 감옥에 갇혀 있는 바울이 세상에서 자유롭게 살고 있는 성도들에게 기뻐하라고 명령하고 권면하는 편지입니다. 참 이해될 수 없는 일입니다. 바울은 4장으로 된 빌립보서에서 16번 이상 기쁨이란 말을 하고 있습니다.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이게 가능한 일일까요? 어떻게 바울은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아마 바울이 아니었다면 욕하고 비난할지 모르겠어요.

제가 정말 어렵고 힘들고 죽을 것 같은 상황에 놓인 성도님에게 이렇게 말한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집사님. 빚이 몇 억 있고, 건강에 어려움이 있고,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질 수밖에 없다 하더라도.. 심지어 감옥에 갇혀 있더라도... 주 안에서 기뻐하십시오.”

이렇게 말했다가는 시험 들어서 뺨맞을 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런 상황 가운데 놓인 집사님이 우리에게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십시오. 하고 권면한다면 저와 여러분의 심정이 어떻습니까? 아니 이건 누가 봐도 상황이 절망적인데... 그 지경인데도 주님 안에서 기뻐하라고 권면하다니... 하나님은 살아계시구나! 우리 주님은 위대하시구나! 우리 주님이 주시는 구원의 기쁨과 감격이 엄청나구나! 깨닫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이러한 구원의 감격과 기쁨을 가지고 살 수 있을까요?

누구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과 기쁨인가? (1 - 2)

1-2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한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이 말씀 뿐만이 아니라, 바울이 보낸 서신서들의 특징 중 하나는 처음 서두에 감사와 축복의 인사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 포인트는 그 은혜와 평강이 누구로부터 왔느냐에 주목해야 합니다.

2절에 뭐라고 나옵니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누구로부터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이것이 중요합니다. 바울이 기쁨의 서신을 쓸 수 있었던 근거와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바울의 기쁨의 근거는 자신에게 있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상황에 있지 않았습니다. 지금 자신의 처지와 하는 일에 있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통장과 돈과 직위에 있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기뻐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이유는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온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자신의 상황과 처지를 보지 마십시오. 얼마나 비참하고 초라합니까?! 소유와 물질로부터 오는 기쁨은 잠시 잠깐입니다. 하지만 우리 주 예수님으로부터 오는 기쁨은 얼마나 충만한지요. 죽음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죽음 앞에서도 웃을 수 있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구원의 감격과 기쁨이 죽음보다 더 크기 때문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도 이러한 기쁨을 이야기했습니다. 하박국 317-18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하박국 선지자는 정말 힘들고 어려운 환경 속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 때문에 즐거워했습니다. 구원의 하나님으로 인해 기뻐했습니다. 돈으로, 사람으로, 명예로 기뻐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잠시 잠깐이지만, 우리 주님으로부터 오는 기쁨은 영원한 줄 믿습니다. 영원의 기쁨을 사모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복음의 파트너쉽이 있다면 기뻐할 수 있다 (5)

바울이 기쁨으로 빌립보교인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이유는 5절 말씀에 나옵니다.

너희가 첫 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

이것을 NIV 영어 성경에 보면 이렇게 나옵니다.

Because of your partnership / in the gospel / from the first day / until now.

직역하면 첫 날부터 지금까지 복음 안에서 당신들의 동료의식 때문에

바울이 빌립보교회를 세운 때는 2차 선교여행 때입니다. 루디아를 만나서 그녀의 집에서 모이기 시작한 것이 빌립보교회가 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바울이 4차 선교여행을 떠나 로마 감옥에 있기 까지 여러 차례 물질과 헌금으로 도와준 교회가 바로 빌립보교회였습니다. 몸은 서로 떠나 있지만 늘 복음 안에서 동역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과 한 지체처럼 파트너쉽 동역자 마인드를 갖고 있었던 교회가 빌립보교회였습니다. 그래서 빌립보 교회에 생기는 문제도 마치 자기 자신의 문제처럼 생각하고, 빌립보교회의 기도제목이 마치 나의 기도제목처럼 생각하며 바울은 기도한 것입니다.

동역자 의식이 있으면 서로의 마음을 나눌 수 있습니다. 서로의 아픔과 기쁨과 어려움까지도 나눌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함께 복음 전하는 일을 같이 할 때 그 안에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이 기쁨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믿음을 나누는 것입니다. 내가 가진 믿음, 즉 복음을 누군가에게 전하고 말하고, 나누는 것입니다. 동역자를 하나 하나 새롭게 세워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꼭 샘물과도 같습니다. 샘물은 고여 있으면 썩어버립니다. 물이 고이고 머문다면, 마치 이스라엘의 사해처럼 죽음의 바다가 될 뿐입니다. 거기에서는 물고기가 살 수 없습니다.

하지만 갈릴리 호수는 헬몬산에 있는 만년설이 녹으면서 그 물들이 갈릴리로 흘러옵니다. 그리고 요단강을 통해 사해로 흐릅니다. 늘 갈릴리는 새로운 물을 받고, 자신의 강물을 요단강으로 흘려 보냅니다. 갈릴리에는 그래서 물고기들이 많이 살고, 어부들도 고기를 잡을 수 있습니다. 생명의 호수가 된 것입니다. 우리 안에 생명의 기쁨이 가득하기 위해서는 믿음을 계속해서 나누고, 복음과 말씀을 흘려보내야 합니다.

바울은 또 7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됨이라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을 생각할 때 자신의 마음에 있다고 하면서 그 이유는 자신과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주님이 주신 은혜를 맛본 자들.. 그러한 이들은 복음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 복음이 주는 기쁨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알기 때문에 서로를 위해 중보기도하며, 서로의 쓸 것을 공급해주고, 어려울 때 돕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있기 마련인 구원의 감격과 기쁨을 가슴 깊이 체험한 적이 있습니까?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사랑하신 그 주님의 사랑 때문에 눈물 콧물 쏟으며 기뻐 찬양하던 그 경험 말입니다. 너무나 벅찬 감격과 기쁨 때문에 어찌할 수 없어서 말하고, 간증하고 고백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그러한 경험 말입니다.

언제 그러한 경험을 해보셨습니까? 이러한 경험이 없다면, 우리는 죽음의 바다 사해처럼 고인 물인지도 모릅니다. 복음의 능력을 경험해보지 못한 채 그냥 죽은 지식만으로 믿고 있는 사람인지 모릅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동역자 의식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가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 은혜가 얼마나 큰 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 은혜를 모르니까 감사할 줄도 모르고, 찬송할 줄도 모르고, 그냥 형식적으로 예배하고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주신 은혜에 참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은혜를 경험할 때 우리는 모두 바울처럼 빚진 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복음에 빚진 자입니다. 우리 예수 그리스도에게 빚진 자입니다.

나는 누군가에게 돈을 꾼적도 없고, 내 스스로 지금까지 당당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하는 분이 계실지 모릅니다. 아니올시다.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날 때 모든 어머니에게 빚진 자입니다. 생명을 빚졌습니다. 태어나서는 옷을 빚졌습니다. 먹을 것을 빚졌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태양과 맑은 공기를 빚졌습니다. 하루에 꼭 마셔야 되는 물을, 생수를 빚졌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을 때 우리는 모두 빚진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빚을 모두 탕감해주셨습니다. 거저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지요. 얼마나 감사하고 감격한지요.

 찬송가 463장을 보면 이런 가사의 찬송이 나옵니다.

신자되기 원합니다. 기쁨으로... 기쁨으로... 신자되기 원합니다. 기쁨으로..

기쁨으로... 기쁨으로... 신자되기 원합니다. 기쁨으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누가 시켜서 여러분보고 그리스도인이 되라고 했습니까?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겠지만, 여러분 자발적으로 여러분 발로 이 자리에 예배드리겠다고 나오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기쁨으로 드리십시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번 뿐인 인생 주 안에서 기뻐하고 기뻐하는 귀한 인생 되시길 바랍니다.

먼저는 기쁨의 근원되신 예수 그리스도, 주 안에 머무십시오.

그리고, 바울과 빌립보 성도들처럼 은혜 안에서 파트너십을 갖고 서로 중보해주고, 기도해주면서 복음의 길을 걷는다면,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기쁨, 그 영원한 구원의 감격과 기쁨이 우리 안에 충만할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