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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들

갈라디아서 6장 1~10절 설교(그대로 거두리라)

* 성경봉독 : 갈라디아서 61-10

그대로 거두리라

<바다의 신음소리, 우리가 버린 플라스틱의 역습 유튜브 영상> 2015년 바다거북의 코에서 빨대를 제거하는 영상은 3천만번 이상 조회가되었습니다. 2011년 우리 나라 서해에서 죽은 바다거북과 고래류의 뱃속에서 다량의 플라스틱과 비닐이 나왔습니다. 20178월 서귀포시 앞바다에서 비닐봉지를 지느러미에 감고 헤엄치는 제주 남방큰돌고래의 모습이 발견되어 충격을 주었습니다.

해류를 따라 흘러간 커다란 플라스틱들은 태평양 한가운데 모여 한반도 7배에 달하는 크기의 거대한 쓰레기 섬을 만들었습니다. 조그만 플라스틱들이 부서지고 녹으면서 바다는 이제 플라스틱 스프처럼 변해가고 있습니다. 크릴새우가 그 스프를 먹고, 오징어와 물고기들이 그 크릴새우를 먹고, 결국에 우리의 식탁에 올라오는 해산물을 통해 우리가 플라스틱스프를 먹게되는 것입니다.

한국은 안타깝게도 이 플라스틱 소비량이 세계 최고입니다. 2015년 기준, 미국은 연간 93.8kg, 일본은 65.8kg, 우리나라는 132,7kg입니다. 필리핀 해변가에는 고래모양의 큰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는데 쓰러져있는 고래의 입 속에서 흘러나온 것은 엄청난 양의 플라스틱병들이 들어있다고 합니다. 인류의 경종을 울리는 이야기입니다. 우리 인류가 버린 플라스틱이 우리에게 다시 재앙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생명과도 직결된 것이기에 너무나 중요합니다.

반면교사 나 자신을 살펴보라 (1)

누군가의 실수와 허물을 알았을 때 우리는 단순히 비난하고 정죄하기 쉽습니다. 혀를 차면서 손가락질 하기가 쉬운 것이 바로 우리 인간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으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한 자를 바로 잡을 수 있는 방법은 온유한 심령을 가진 자 뿐입니다. 그 사람을 인정해주고, 다독여주고, 위로해주는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좋은 인격을 가져도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바로 잡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신령한 사람은 가능합니다. 그러한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가 주장하는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8장에 보면 예수님 앞에 간음하다 잡힌 여인이 끌려왔습니다. 그녀는 이제 죽은 목숨이나 다름 없습니다. 율법에 간음한 여인은 돌에 맞아 죽이라고 나와 있기 때문입니다. 다들 부정한 여인이라고 손가락질하고, 돌을 집어듭니다. 그리고 아우성칩니다. 자신은 바라보지 못하고 오직 잘못한 여인만 바라보면서 큰 소리를 치고 있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고 했는데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습니까?” 하고 묻습니다. 예수님을 시험하는 것이죠?

예수님은 그 때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무언가를 쓰십니다. 그러는 중에도 옆에는 계속 묻습니다. 어떻게 하실꺼냐고??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이 밀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님과 그 여자만 남았습니다. 예수님은 그 여자에게 말씀하십니다.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예수님은 여인을 자유하게 하소 새로운 삶을 살도록 바로 잡아 주십니다. 죽음의 위기 가운데 놓인 여자는 이제는 구원의 삶을 살며 예수를 증거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을 닮기를 원하십니까? 온유한 심령으로 실수하고 범죄한 자까지도 바로 잡아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시작은 온유한 심령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정죄하기 전에 나 자신의 죄악됨을 깨닫는 것입니다우리도 별반 다를 것 없는 죄인임을 아는 사람은 누군가를 정죄하는 대신 안아주고 다독여주고, 격려해줄 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그렇게 하셨습니다반면교사라는 사자 성어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나 사물의 부정적인 측면에서 가르침을 얻는다는 뜻입니다. 누군가의 잘못과 부정을 보았을 때 반면교사로 삼아 우리 자신을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바울은 오늘 우리에게 말합니다.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우리 자신을 살펴보고, 시험을 받지 않도록 깨어 있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서로 짐을 지라 (2)

오늘 2절 말씀을 같이 읽겠습니다.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좋은 교회는 서로 짐을 져주는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그 안에 그리스도의 법이 성취되는 것이고, 그 안에 그리스도의 사랑이 싹트는 것입니다.

시편 5522절 말씀에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마태복음 1128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우리의 짐을 여호와께 맡기고 나아갈 때 우리 가운데 주의 평강이 임하는 것입니다. 맡겨보지 않는 사람은 그 축복을 모릅니다. 예수님은 말로만 우리의 짐을 지겠다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우리의 모든 죄와 짐을 지시고, 달려 죽으셨습니다. 대속의 은혜, 구원을 베푸셨습니다. 그렇기에 예수 믿는 우리는 당연히 서로의 짐을 져주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짐을 먼저 우리 주님께 맡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때.. 우리 주님이 우리를 붙드십니다.

우리의 짐을 지고 우리 예수님께 나아갈 때 우리는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쉼을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은혜를 맛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대로 거두리라(7)

7절 말씀을 마지막으로 같이 읽겠습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이것은 물질적 도덕적인 모든 생명에 새겨진 질서와 일관성의 원리입니다. 첫째로 농업을 생각해보십시오. 심음과 거둠, 농부가 수확을 원한다면 자기 밭에 씨를 심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당연히 수확을 거두기는 어렵습니다. 우리 나라 속담에도 그런 말이 있죠? “콩심은데 콩나고, 팥심은데 판난다!” 할렐루야~ 아멘!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자기 썪어질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가 아닌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가 되라고 권면합니다.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성령을 위하여 심는 삶을 살았습니다. 바울이 자기를 위해서 였다면, 성공한 그 자리에 머물렀을 것입니다. 인기 있고, 자신을 높여주고, 먹고살기 편한 곳에 머물렀을 것입니다. 어쩌면 자신을 재정적으로 많이 후원해줬던 빌립보나 에베소 교회에 머물렀을지 모릅니다.

자기 육체의 편함을 위해서라면 그것이 당연한 선택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 곳에 멈춰서지 않았습니다. 그는 성령을 위하여 심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칭찬이 은근히 교만이 되고, 자만이 되고, 복음을 향한 열정을 꺼뜨려버리지 않을까 늘 깨어있으려고 몸부림쳤을 것입니다. 바울은 늘 가던 그 곳 보다 더 먼 곳, 더 넓은 곳,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자 했습니다. 성령께서 그러한 삶을 살도록 이끄셨기 때문입니다. 그가 사역할 때는 어떻게 했느냐? 눈물과 겸손으로 사역했습니다. 에베소 교회 장로들을 만나서 해후할 때 나오는 그의 고백입니다. 자기 육체를 위해 심는 사람은 이기적입니다. 교만합니다. 정죄합니다.

하지만 성령을 위해 심는 사람은 자신의 일 가운데 눈물이 있습니다. 기도가운데 눈물이 있습니다. 사람을 대할 때 눈물이 있습니다. 눈물은 진실이요, 마음의 깊은 곳, 사랑의 샘에서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겸손합니다. 늘 성령님의 음성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을 온유함과 따스함으로 대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말씀 앞에 자신을 들여다봅시다. 우리의 신앙생활 가운데 주님을 향한 눈물이 있습니까? 겸손이 있습니까? 이웃을 향한 온유한 마음이 있습니까? 자신을 돌아보며, 오늘 이후에라도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시편기자도 고백하기를 시편 1265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지금 우리에게 이 눈물을 흘리는 수고와 고통이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결국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두고, 영생의 열매를 거두는 것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것을 믿고 낙심하지 말고 기회 있는 대로 성령을 위하여 심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벽을 깨워 기도의 씨를 심읍시다. 눈물로 기도합시다. 주의 성전을 위해 헌금의 씨를 심읍시다. 성전을 위해 봉사의 수고를 합시다. 교사들이여, 부모들이여, 자녀들을 향해 믿음의 씨, 말씀의 씨를 심읍시다. 장성한 믿음의 분량에 이르도록 하나님의 말씀의 꼴을 먹입시다.

분당우리교회 이찬수목사님이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기도응답 안받는 것도 축복인줄 알라"는 이야기였습니다. 뭔소린가 했더니 기도의 통장에 쌓인 것들을 당대에 다 찾아 먹으면, 다음의 우리 자녀들은 뭐먹고 사냐는 말이었습니다.

이찬수목사님 아버지가 개척교회하시고, 기도원에서 금식기도하시다가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는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기도하시던 것이 자신의 대에 결실을 맺었다고 말합니다. 자신은 별볼일 없는데 생각지도 못한 은혜를 누리게 되었다는 것이죠.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이 없습니까? 축복인줄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 후대에 쏟아지는 그 축복, 그 영생의 축복이 있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대로 거두리라! 오늘 자신을 보십시오. 내가 하루 살면서 무엇을 심고 있었는지.. 그리고 무엇을 거두며 살아가고 있는지.. 하나님 말씀 앞에 깨달으시고, 성령을 위하여 심고, 영생을 거두는 축복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