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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들

엎질러진 물 유다(마태복음 27장)

엎질러진 물 유다

마태복음 271~ 10

 

이번 주간이 고난주간입니다. 마태복음에 나온 십자가 사건과 이야기를 가지고 한 주간동안 주님의 사랑을 나누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말씀은 가룟 유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사실 유다 앞에서 베드로는 세발의 피입니다.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는 격이죠. 베드로의 부인은 예수님을 은 삼십에 팔았던 가룟 유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오늘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서, 유다의 삶은 엎질러진 물과 같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한 번 엎질러진 물은 주워담을 수가 없습니다. 한번 내뱉은 말은 주워담을 수가 없습니다. 그 모든 행동과 말에 대한 책임은 우리 스스로에게 돌아오는 것입니다. 가룟 유다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오늘 말씀을 읽기 전에는 가룟 유다가 정말 부정적인 이미지였는데, 약간 측은하고 불쌍한 마음도 들게 됩니다.

어떻게 보면 유다는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의 음모에 철저히 이용당했습니다. 예수님을 심문하고,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준 때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 때가 새벽이었습니다. 271절 말씀에 이렇게 나옵니다.

새벽에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함께 의논하고 결박하여 끌고 가서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주니라

그 새벽에 모든 음모를 다 꾸미고, 결정지어서 총독에게 넘겨준 것입니다. 떳떳하게 대낮에 하지 않은 것은 예수님을 따르던 무리들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새벽에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한 것입니다. 범죄가 많이 일어나는 길목에 가로등 하나만 세워둬도 범죄가 줄어든다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그 어둠의 시간을 이용해 예수님을 체포하고, 빌라도에게 넘겼습니다.

그 저주의 대명사 가룟 유다가 왜 측은하게 생각하는 지는 오늘 말씀 3~5절에 나와 있습니다.

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주며 / 가로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 저희가 가로되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네가 당하라 하거늘 /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유다는 그 새벽에 예수님의 정죄됨을 보았습니다. 보았다는 것은 베드로처럼 그 집 안은 아닐지라도 그 근처에서 예수님이 어떻게 되는 지를 보았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얼굴에 침뱉고, 주먹으로 치고, 손바닥을 때리는 모습, 총독 빌라도에게 끌려가는 그 모습을 보고 유다는 스스로 뉘우칩니다. 그리고 은 삼십을 도로 갖다줍니다.

4절에서 유다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뉘우친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돌이킬 수 없습니다. 오늘 말씀제목처럼 엎질러진 물이 된 것입니다. 유다는 예수님의 정죄됨을 보고, 자괴감에 시달려 결국은 자살을 택합니다.

유다의 인생을 돌아보면, 모든 중심이 스스로 한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스스로 뉘우쳤고, 스스로 목매어 자살하고, 스스로 예수님을 은 삼십에 팔아버립니다. 유다의 삶은 철저히 자기 중심적인 인생이었습니다. 자기 스스로 살아간다고 생각할 때 인간은 자만심과 이기심에 빠지게 됩니다.

기독교는 자력종교가 아니라 타력종교입니다. 내가 스스로 의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하나님을 의지함을 통해서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 힘쓰고 노력해서 성불이 되거나, 정결케 되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예수님을 통해서 구원을 받고, 새롭게 되는 종교입니다.

가룟 유다는 자력으로 스스로 사는 인생을 살았고, 그 인생의 끝은 엎질러진 물과 같았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심히 통곡했고, 주님의 사도된 인생을 살았습니다.

정말 어렵고 힘든 일, 내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일을 당할 때, 그 때야 말로 베드로처럼 예수의 말씀을 의지해야 합니다.

유다의 인생은 엎질러진 물이었습니다. 자기 스스로가 중심이 되어 살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주인이 되시고, 우리의 중심에 예수님이 계실 때 우리는 거룩한 인생을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나폴레옹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불행은 우리가 언젠가 소홀히 보낸 어느 시간들의 보복이다.”

유다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예수님을 팔아 버린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그 보복으로 엎질러진 물과 같은 인생이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미 그 결과에 직면했을 때는 늦은 것이죠.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하루를 소홀히 보내고, 잘못 보낸다면, 언젠가 그 시간의 보복으로 우리에게 씻을 수 없는 불행이 닥칠 것입니다.

한 집사님이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버지와 언니가 영문학을 전공하고 영어를 너무 잘해서 자신은 영어공부를 하기가 싫었답니다. 비교 되니까요. 하지만 이제 어쩔 수 없이 영어를 써야할 시기가 오니까, 예전에 영어공부를 더 잘 해둘 걸 하는 마음이 들더라는 거에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하루를 소중히 여기셔서 말씀 안에서 승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일분 일초를 소홀히 보낸다면, 엎질러진 물이 되어버린 유다처럼 불행이 우리의 발목을 잡을 지도 모릅니다.

세 번째로 유다에게 예수님은 은 삼십의 가치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1절에서 10절까지 이 은 삼십에 대한 단어가 4번이나 나옵니다.

에서가 장자권을 경홀히 여겨서 팥죽 한 그릇에 야곱에게 팔아버립니다. 그래서 야곱의 인생이 바뀝니다. 유다는 예수님을 은 삼십에 팔아버립니다. 그의 인생은 엎질러진 물, 저주의 대명사가 되어 버렸습니다. 유다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은 삼십의 가치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얼마의 가치, 어떠한 존재입니까?

은 삽심에 불과합니까? 세상에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사랑과 정의, 평화와 비전이 그렇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예수님이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분입니다. 소중한 것을 소중하게 볼 줄 아는 눈이 있을 때 세상은 살맛나게 됩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소망이 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사랑입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하나님은 또한 우리에게 사랑하는 가족들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가족 때문에 참 상처받을 때가 많습니다. 말과 행동 때문이기도 하지만, 돈 문제로 인해서 시험들 때가 많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 가족의 가치가 돈으로 환산할 수 있습니까? 신앙은 계산으로, 머리로, 수치로, 돈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엎질러진 물과 같은 유다를 보고, 믿음의 경종을 울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의 포인트는 세가지입니다.

첫째는 자기중심적인 인생이 아닌 철저히 예수님 중심, 말씀 중심의 삶을 살자!

둘째는 유다의 불행은 언젠가 잘못 보낸 시간의 보복이라는 것입니다.

셋째는 예수님의 값은 유다에게 은 삼십이었는데 우리에게는 얼마나 하느냐? 생각해보라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를 소중히 여겨 유다처럼 엎질러진 물이 아닌 생명을 살리는 물, 한 알의 밀알이 되는 귀한 인생을 사시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