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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들

빈들에서(눅 3장)

빈들에서

누가복음 31~38

하나님의 말씀이 빈들에서 (1~2)

요한복음은 네 개의 복음서 중에서 가장 나중에 쓰여진 책입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앞 서 쓰인 마태 마가 누가복음서를 공관복음서라고 하고, 요한복음만 따로 구별해서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서 가장 오래 살고 나이 많은 요한,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제자 였던 요한,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자기의 어머니처럼 모셨던 요한이 쓴 복음서입니다.

오늘 본문 3장 서두에 보면, 요한이 얼마나 그 시기를 정확하게 기록해놓았는지 모릅니다. 31-2절 같이 읽겠습니다.

디베료 황제가 통치한 지 열다섯 해 곧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으로, 헤롯이 갈릴리의 분봉왕으로, 그 동생 빌립이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의 분봉왕으로, 루사니아가 아빌레네의 분봉왕으로,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빈 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

로마가 통치하는 유대 시기의 통치자들이 다 적혀 있습니다. 갈릴리 분봉왕은 세례 요한을 처형했던 헤롯 안티파스를 말합니다. 대제사장도 안나스와 가야바였다고 나옵니다. 가야바는 대제사장 안나스의 사위였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는데 그 이름있고, 힘있고,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에게 임한 것이 아니라 빈들에 있는 요한에게 임했다고 나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빈 들에 있는 요한에게 임했습니다. 세상과는 동 떨어진 그 곳, 황량해서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그 곳, 정말 외롭고 삭막한 그 곳 빈 들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요한에게 임했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 주어가 참 중요합니다. 요한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고 기록되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요한에게 임했다고 나와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사로잡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인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힌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그 말씀은 높은 자리에 있을 때, 즐거운 자리에 있을 때, 명예와 부가 보장되는 자리에 있을 때 임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나 홀로 독대하는 그 자리에서 임합니다. 때로는 황량하기까지한 그 자리에서 임합니다. 광야와 같은 그 빈 들에서 하나님을 가장 가까이 만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업이 한창 잘 될 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지는 않습니다. 몸이 건강할 때는 하나님의 말씀이 잘 들어오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에 고난이 찾아오고, 내 스스로 어찌할 수 없을 때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심령을 파고 들고, 우리 가운데 임하는 것입니다.

<빙점>을 쓴 미우라 아야코의 유명한 글이 있습니다.

병들지 않고서는 드리지 못할 기도가 따로 있습니다.

병들지 않고서는 믿을 수 없는 기적이 따로 있습니다.

병들지 않고서는 들을 수 없는 말씀이 따로 있습니다.

병들지 않고서는 가까이 갈 수 없는 성소가 따로 있습니다.

병들지 않고서는 우러러볼 수 없는 얼굴이 따로 있습니다.

, 병들지 않고서는 나는 인간이 될 수조차도 없습니다.

 

병들었을 때 드리는 기도가 있고, 병들었을때에야 믿을 수 있는 기적이 있고, 병들었을 때에 들리는 말씀이 있고, 병들었을 때에 성소에 가까이 갈 수 있고, 병들었을 때에 우러러 볼 수 있는 얼굴이 있고, 병들었을 때에야 나는 비로소 한없이 나약한 인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빈 들은 우리가 한 없이 작다는 것을 깨닫는 귀한 자리입니다. 이 자리가 빈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과 내가 만나는 귀한 자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 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귀한 은혜와 순종이 우리의 삶 가운데 가득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