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설교들

발람의 예언 시리즈(민 23장)

발람의 예언 시리즈

민수기 231 ~ 30

민수기 21장에 보면 이스라엘이 아모리왕 시혼과 바산왕 옥을 쳐부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뒤이어 모압 땅에 들어서는 이스라엘 민족 앞에 민수기 22장부터 모압 왕 발락과 선지자 발람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메소포타미아 복술가들은 7층 제단을(11:4) 쌓고 사술에 의하여 접신을 한다고 합니다. 발람도 동일한 방법으로 여호와 하나님과 접신을 두 번씩이나 시도하였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셔서 그들을 영원히 보호하신다는 사실을 직접 하나님께 듣고도 어떻게 해서든지 그 뜻을 변경시켜 자신의 이익에 맞게 저주의 말을 얻어 내려고 시도하였습니다. 이것은 무당들이 자기들이 섬기는 신을 제문을 구실로 구슬려서 자신들이 원하는 복을 주게 만든다는 소위 주술신앙적 행동입니다. 따라서 한글 성경만을 보고 발람이 여호와 하나님을 알고 있었다고 하여 그가 하나님의 선지자라고 잘못 생각하는 분들이 많이 있지만, 그것은 잘못된 것이며, 발람은 단지 하나님을 주술 신앙의 대상인 잡신들의 하나로서 간주한 것임을 분명히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조심해야 할 것이 이러한 기복신앙입니다. 나 자신의 축복을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발람 선지자 같은 믿음을 가진 이들을 심판하십니다. 22장에서 말 못하는 나귀를 통해 말하게 하셔서 기적처럼 발람의 눈을 밝혀줍니다. 만약 여호와의 사자를 못 보았다면, 발람은 모압왕 발락이 원하는 말 그대로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호와의 사자를 만나자 발람은 자신의 뜻과는 반대로 오히려 자신의 입으로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예언을 행하게 됩니다. 231-12절은 발람의 첫 번째 예언, 13-30절은 두 번째 예언의 내용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방식으로 드려야 합니다.

구약 레위기에 보면 제사법이 나옵니다. 번제, 화제, 소제, 전제 등 다양한 방법이 나옵니다.

발람이 한 제사법은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방 민족의 샤머니즘 적인 제사법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가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예배할 때 말씀 앞에 우리 자신을 정직하게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예배하고 기도하는 것이 나를 위한 것인지, 하나님을 위한 것인지를 생각해보라는 것입니다. 내가 하고자 하는 기도제목이 나의 유익을 위한 것인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기도제목인지를 말씀 앞에 생각해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욕하는 그 사람을 축복하길 원하십니다.

한 목사님의 신앙칼럼을 읽어보면, 자신을 너무나 힘들게 하는 장로님 한분이 있었다고 합니다. 얼마나 힘들게 했는지 주의 제단 앞에 엎드려, 저 사람을 데려가 달라고 하는 기도까지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 사람을 위해 예수님이 대신 죽으셨다는 말, 이 복음을 듣자, 저 사람이 아닌, 내가 죽는 별세를 경험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자기가 죽고, 예수님의 눈으로 그 사람을 보자, 눈에 힘이 풀리고, 부드러운 눈빛으로 대하고, 무장해제를 하니까 그 사람도 무장해제를 하고, 서로 은혜 가운데 잘 지내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 앞에 자기 체면과 자존심, 아니 자기 전 존재를 내려놓으면, 나는 내 것이 아닌 주님의 것인 줄 믿습니다. 내가 죽어야 그리스도가 사는 그 놀라운 은혜를 체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배는 거래가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어떠한 행위나 헌신, 행동, 헌금을 이야기하다보면, 마치 Give & Take처럼 주는 것이 있으면 받는 것이 있어야 된다.

하나님과 거래하듯이 신앙생활하는 경향이 없지않아 있습니다. 기도 많이 하고, 헌금 많이 하고, 봉사 많이 하면 하나님이 복 주실 거라는 기대감이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오늘 발람 선지자가 드리는 예배는 어찌보면 거래하는 것과 같습니다. 제물로 신을 어르고 달래서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하는 것입니다.

모압왕 발락은 그러한 의도로 이스라엘을 저주해달라는 목표를 확실히 발람에게 말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예배하고, 그렇게 기도하라고 요구합니다. 그 결과를 꼭 이루어 달라는 것이죠.

이것만 놓고 봤을 때 우리의 기도하는 모습과도 같지 않습니까? 안그런가요?

이미 우리의 목표와 목적은 정해놓고는 하나님께 구하는 것입니다.

성숙한 신앙은... 그리 아니하실지라도의 신앙입니다. 이것은 우리 주님의 기도와도 일치합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신 예수님의 기도를 생각해보십시오.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26:42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 엎드려 죽음 앞에서 똑같은 말씀으로 세 번이나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나님 뜻대로 하옵소서. 우리도 하나님께 온전히 우리의 삶을 내어 맡길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은 온전히 인도해주실 줄 믿습니다. 그 때 저주받을 인생이 변화되어 축복받는 인생이 될 줄 믿습니다. 발람에게 저주의 말이 아닌 축복의 말을 하게 하신 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임할 저주가 끊어지고 축복을 부어주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 중심의 예배를 회복하자! 예배가 회복되면, 예배에서 성공하면, 인생에서 성공하게 된다. 하나님이 이끄시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를 드리자! 하나님 중심의 예배를 드리자!

예배는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설교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나안 땅 분배(수 13장)  (0) 2020.09.11
발람의 마지막 예언  (0) 2020.09.10
사람은 변하지 않습니다(민 20장)  (0) 2020.09.10
레위지파 임무(민 4장)  (0) 2020.09.10
아이를 낳은 여인에 대한 규례(레 12장)  (0) 2020.09.10